
△여성 직장인은 증가…성불평등 여전
비정규직 여성 박모씨(33)는 서비스직 직군에서 근무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지만, 아직까지 '사회 정착'을 못하고 있다.
그는 "여성 고학력자가 다닐 수 있는 직군의 한계가 있다"며 "구직란을 보면 단순 노무를 요구하는 사무직·서비스직이 대부분"이라며 취업의 한계를 토로했다. 특히 "면접을 가면 능력을 묻기 보다 결혼 여부를 더 궁금해 한다. 유학을 다녀온 후 나이가 많아 '취업 커트라인'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며 "남자였다면 이런 질문을 들었을까 생각이 든다.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중"이라고 밝혔다.
제주는 직업여성이 많은 지역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전국 16개 시·도의 인구의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15~64세 인구)를 기준으로 고용률을 조사한 결과 제주지역 고용률은 70.8%로 전국 1위였다.
이는 직업 여성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주 여성 고용률은 59.5%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박씨의 경우처럼 '성 불평등'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성 직업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여성은 '눈치 전쟁'…성희롱에도 참아야
전문직 여성 배우리씨(33). 오는 9월이면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지만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회사에서도 눈치가 이만저만 아니다.
몸이 무거워 외근을 미루거나, 병원 검사 때문에 반차를 쓰는 일도 많아졌다.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스스로가 조직에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죄의식 마저 느껴진다.
배씨는 "그동안 여성에 대한 불편함을 못느끼고 살아왔지만, 출산으로 인해 성 불평등은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8년차 여성 직장인 김경옥씨(35)는 성희롱은 일상이라고 고백했다. 구직 알선 업무를 맞은 탓에 항상 '을'의 입장으로, 남성 직장인을 만나는 일이 잦다.
'예쁘다'라는 말 정도는 웃도 넘어가지만, '허리가 잘록하다' '밖에서 따로 만나자' 등 수위가 높은 발언은 맘이 상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업무상 '남성'은 계속 만나야 한다. 참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런 대우 받으며 어떻게 직장을 다니냐 할 수 있냐 하겠지만, 직업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 전문직 여성이라는 자긍심으로 버티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여성을 얕잡아 보는 남성들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택시기사 허인영씨(53)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뭐하길래 이런 일을 하냐'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만나자' 등의 수위높은 발언을 하는 남성 손님들을 친절히 응대해야 할 때가 많다.
그는 "연세 있는 남성 손님들이 매너없는 경우가 더 많다"며 "사회 분위기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감내해야 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여성 피해의식 극복해야…정책적 도움도 필요
'여성 처우'에 대한 문제는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이 주로 많은 직군에 종사하는 류모씨(36)는 "정부의 정책적 도움과 회사 임원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류씨는 최근 여성 상사의 출산휴가 문제로 큰 다툼을 겪었다. 대체근무를 두고 감정이 상한 것이다.
그는 "왜 출간휴가를 두고 직원들끼리 신경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회사 임원들이 직접 나서서 남은 동료들의 근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미리 근무 조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여성 직장인의 여건도 좋아지고 주변에서도 '축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의 이선화 제주도의원은 "제주여성가족연구원과 보건복지여성국이 여성처우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 도의원은 "여성의 가치는 미래"라며 "연구원과 여성국이 연대해 기존과 다른 여성 정책과 인권,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리천장'에 대한 문제점도 꼬집었다. 이 도의원은 "정책결정자 배출에 대한 젠더가 필요하다"며 "고위직에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정책 보완이 되면 창의적인 접근으로 여성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진 기자

제주 여성사는 그야말로 '강인함'이었다.
'유리천장'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깨고 '최초'의 사회적 지위를 기록한 제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최초의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 최초의 여성 교장, 최초의 여성 교육감 등의 다양한 수식어를 기록한 최정숙은 '제주여성 정신'을 대표한다.
근·현대를 살면서 온몸으로 고향과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각여성으로 '제주 여성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제주 출신 최초의 여성 순경·경찰간부는 김중규였다. '김주임'으로 통하던 그는 경찰의 권력이 막강했던 미군정기에 경찰이 돼 4·3사건과 6·25를 거치며 1960년대까지 경관을 지냈다.
남편을 잃고 3남2녀를 홀로 키우며 억척스럽게 경찰직을 수행하고, 1963년에 제주시 삼도동에 애육탁아소를 설립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최초의 여성 면의원은 김명숙은 여성운동가로서 문맹퇴치와 기독교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서왔다. 여성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장점으로 한 리더십으로 의정활동을 이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제주 여성 최초'를 기록하는 이들은 스님에 안봉려관, 수녀에 강말다, 교사에 강평국, 의사에 김신자, 제주도청국장 김복희, 교도관에 함정순, 해양경찰에 부혜경, 가수에 박난아, 아나운서에 문경협, 기자에 김계실, 탤런트에 고두심, 에베레스트 등반에 임희재, 의사에 고수선, 간호사에 강복순, 산파에 한려택, 해녀항쟁독립유공자에 부춘화·김옥련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제주 여성 최초의 판사·변호사·장관에 강금실, 여성 전투기 조종사에 성민아, 여성 시장에 현을생, 여성 농촌지도자 수상자에 김화선, 여성지방병무청장에 최은순, 지역구 여성 의원에 이선화·현정화 등이 '1호' 기록을 잇고 있다. 제주 출신은 아니지만 '제주 최초'의 수식어를 단 조희진 제주지방검찰청장과 김혜경 한국산업인력공단 제주지사장 등도 주목받고 있다. 이소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