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제주서부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최근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림이 있냐'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교통사고 장면이 찍혀있는 CC(폐쇄회로)TV 영상을 보여줬다. CCTV 영상을 보는 순간 집에 있는 딸아이가 생각났다. 며칠 전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아이가 불과 50여m 떨어진 합기도장까지 혼자서 걸어갈 수 있다면서 차에서 내려달라고 떼를 썼다. 필자는 목적지도 가깝고 해서 허락했지만 왕복 2차로의 차도를 횡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다. 역시나 아이는  지나가는 차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한 여학생이 횡단보도를 건너와 아이가 건널 수 있게 인도를 해줬다. 그런데 필자가 딸아이를 통해 봤던, 횡단보도 앞에서 지나가는 차 때문에 망설이던 바로 그 모습을 CCTV를 통해 다시 보게 된 것이다.

CCTV에 나온 교통사고 피해자가 공교롭게도 딸아이와 동갑인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였다. 왕복 4차로에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망설이던 아이가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횡단보도를 중간쯤 지날 때 맞은편 1차로를 운행하던 승용차 한대가 횡단보도 앞에서 정차했다. 아이가 양보해주는 차 앞을 잘 지났는데 2차로에서 1t 트럭이 상황을 모르고 그대로 직진, 아이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차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운전자가 제동을 재빨리 해서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CCTV 속 아이는 분명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가해자는 1차 조사 당시 아이가 무단횡단을 했다고 주장하고 아이가 차에 뛰어들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사고 후 차는 분명히 횡단보도 위에 멈춰있었고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어른의 양심이 필자를 부끄럽게 했다.

모든 운전자에게 '진실은 꼭 밝혀지는 법'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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