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에필로그

▲ 제주목축전통은 방앳불 놓기와 윤환방목, 낙인, 백중제, 상산 방목, 바령밭, 번쉐, 멤쉐, 밭 고르치기, 말 모는 소리, 잣성 등이 있다. 사진은①은 곰돌을 끄는 밭고리치기. 사진②는 장전백중제. 사진③은 하잣성 일부. 사진④는 광령공동목장에 남아있는 테우리막이 있던 터.
방앳불·상산방목·말모는소리 등 대부분 소멸 위기
백중제 등 일부 전승…'개발 열풍'으로 매각 추세도
위기 방치는 전통 포기…사회·문화 가치 조명 필요
 
1000년이 넘는 오랜 원형을 간직한 '제주 목축문화'는 제주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중산간에서는 밭농업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근간이 돼 왔다. 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 등 국내 축산업 시장 개방 이후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사양화의 길을 걸으면서 관련된 문화도 함께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제주목축문화를 재조명하고 보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사라지는 제주목축문화
 
지난 2년간의 도내 마을공동목장을 살펴본 결과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에서는 '테우리'들을 중심으로 목축을 위한 다양한 전통이 있어왔음이 확인됐다. 비록 산업화와 농기계의 등장으로 대부분 사라지거나 변형됐지만 고령의 테우리들은 옛 목축전통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지니고 있었다.
 
공동목장에서 이뤄진 대표적인 제주 목축전통은 방앳불 놓기와 윤환방목, 낙인, 백중제, 상산 방목, 바령밭, 번쉐, 멤쉐, 밭 고르치기, 말 모는 소리, 잣성 등이 있다.
 
봄의 일정시기를 정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목장에 불을 놓는 '방앳불 놓기'는 현재는 볼 수 없는 대표적인 목축전통이다. '화입'이라고도 불린 이 전통은 목장내 진드기들을 구제하고, 소들에게도 새로 자란 연한 풀을 먹을 수 있도록 한, 제주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의미있는 축산 전통이지만 1970년대 정부의 산림보호 정책으로 단절된 상태다. 매년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들불축제가 방앳불 놓기의 재현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차이가 있어 다른 목장에서의 제한적 허용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여름철 공동목장의 진드기와 더위를 피해 소와 말을 백록담 근처까지 올렸던 '상산 방목'도 마찬가지로 사라진 전통이 됐다. 
 
'상산'(上山)은 해발 1400m 이상의 한라산 백록담 남사면 고산 초원지대를 가리키는 말로, 물과 풀이 풍부하고 진드기가 거의 없어 방목지로 적당해 일찍부터 애월읍 광령리·유수암리, 서귀포시 하원동·도순동·상효동·하효동 등 백록담이 보이는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상산으로 우마를 올려 방목했다.
 
"어허 어으 어로로로로 어으~" 노랫소리에 어디선가 풀을 뜯던 말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광경도 앞으로 역사 속,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주의 풍습이 됐다. '마지막 말테우리'로 불리며 조명받아온 최고령 말테우리 고태오 할아버지(88·제주시 구좌읍 하도리)가 말테우리 생업을 떠나면서다.
 
별다른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소들을 목장 한켠 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몰아넣어 분뇨를 모아 거름으로 썼던 '바령밭'이나 다른 사람이 이를 맡아 키워주며 송아지의 반을 갖는 '멤쉐', 소를 기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당번을 정해 소를 먹이러 다니던 '번쉐' 등의 풍습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목장에 소를 올리면서 우마의 번성을 빌었던 '백중제'의 경우 장전목장을 비롯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고, 말의 조상인 방성에게 바쳐오던 제사인 '마조제'는 장덕지 ㈔제주마문화연구소장의 노력으로 105년만에 부활해 들불축제장 한켠에서 치러지고 있다.
 
위기속 대안을 고민해야
 
제주 목축문화의 소멸 위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제주지역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마을공동목장이 매각되는 사례도 점차 일반화 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목축업이 가장 번성했던 지역의 하나인 한림읍의 공동목장이 현재 단 2곳만 남은 상태다.
 
매각되는 마을목장에는 대부분 골프장이나 리조트 등 대규모 관광시설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태양열·풍력 등 전력생산시설도 들어서는 추세다.
 
현재 남아 있는 60곳 가량의 목장도 대다수 공동목장 조합원이 목축이 아닌 다른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목축업은 소수 조합원이나 기업목장에 임대하는 형식으로 근근히 유지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조합원들이 타지역에 사는 경우도 많아 공동목장은 특별한 사명감이 없는 한 '유지' 자체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희귀성'도 다른 전통산업에 비해 보전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마을을 막론하고 집집마다 소 한두마리씩은 키워왔다고는 하지만 목장에서 전문적으로 우마를 키워온 테우리(목감)는 의외로 소수로 한정된다. 그마저 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10~20년만 지나면 전통적인 목축문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시대 변화'를 이유로 이러한 목축업·목축문화의 소멸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곧 축산업의 포기인 동시에 제주사의 중심이었던 중요 '전통'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껏 유지됐던 초지관리시스템이 붕괴되리라는 것도 뻔한 사실이다.
 
사라지는 공동목장수에 비례해 사회·문화·역사적 관점에서 공동목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역사회에 알리는 작업의 시급성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가장 시급한 테우리들의 목축생활사 조사를 시작으로 체계적인 연구와 재조명을 우선 추진하고, 이후 어떻게하면 목축문화를 지키며 마을에도 도움이 되는 활용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최근 장전리공동목장이나 가시리공동목장, 의귀리공동목장 등 마을과 조합 차원에서 활발히 시도되고 있는 관광산업과의 연계사업도 참고할 만 하다.
 
또 테우리들의 목축문화를 체험하고, 이들의 목축기술을 전수할 '테우리 학교' 프로그램 운영과 함께 백중의례, 말 모는 소리, 조랑말 경주 등 테우리 축제 개최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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