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법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사무의 양태를 일컬어 흔히 일도양단이라 이른다.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정의의 여신상이 한 손에 저울을,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속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 번 칼로 내리쳐서 나눠 버린 사물은 다시 붙지 않는다. 확정된 판결은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누구도 이에 대해 논란을 재점화해 공식적인 분쟁거리로 삼을 수 없다. 판결의 이러한 효력을 기판력이라고 부른다.
 
기판력은 비단 확정된 판결뿐만 아니라 소송 도중에 쌍방이 서로 양보해 일정한 내용의 합의를 한 데에 따라 법원이 그 합의사항을 기재한 조서인 화해조서에도 동일하게 미친다. 확정된 조정조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판결 주문은 법관이 이를 작성하는 데 공을 들여서 향후 이에 따른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만들어 문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화해조서나 조정조서의 조항은 분쟁 당사자 간에 합의된 바를 비교적 덜 엄격한 방식으로 문서화한 것이다 보니, 막상 이것을 가지고 강제집행을 하려다 보면 집행불능 사태에 직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벌어진다.
 
예를 들어 '피고는 원고로부터 ○○○까지 XXX에 대한 하자보수를 완성 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금 650만원을 지급한다'는 화해조항이 기재된 화해조서가 확정되면 원고가 피고로부터 650만원을 지급받기 위해 강제집행을 하려면 반대급부 의무인 'XXX에 대한 하자보수를 완성' 했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 점은 그 자체로 불확정한 개념으로서 증명할 수 없으므로, 강제집행은 불가능하다.
 
판례는 이러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그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동일한 청구를 제기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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