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변해야 한다

   
 
  ▲ 1%의 변방에서 동북아 중심축으로 비상하는 제주의 꿈은 우리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사진은 제주의 혁신을 꿈꾸며 새벽까지 불밝힌 첨단과학기술단지 전경.  
 
출륙금지령 등 끊임없는 수탈로 인적손실 초래
선거로 공동체 분열·남을 헐뜯는 '제주병' 심화
주민 정책결정 적극 참여·인재 양성 풍토 필요
 
제주는 개방성과 폐쇄성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섬이다. 출륙금지령 등 끊임없는 침략과 수탈로 고통을 겪었고 민선자치시대 이후, 각종 선거로 지역 공동체가 분열됐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등 내성적 발전에 한계를 드러냈다. 앞으로 제주는 더 극심한 변화를 겪을 것이고 이 변화와 도전에 대처하는 방식이 제주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21세기 제주 미래는 제주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혁신의 정도에 달려있다.
 
중앙에 의한 수탈과 극복
 
380여전, 제주에 역사의 굴레가 씌워졌다. 조선 인조는 1629년, 도민들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을 내렸다. 
 
관리의 수탈과 왜구의 노략질 등으로 제주인들은 기회만 되면 뭍으로 나갔고 그 수효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제주 인구는 줄어들자 특산물 진상, 군액 축소 등의 문제점이 초래돼 출륙금지령이 실시됐다. 
 
이후 출륙금지령이 풀린 1850년까지, 200년이상 제주인들은 고통과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출륙금지령은 고려시대부터 유명했던 제주인들의 조선 기술과 항해술을 퇴보시켰고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등 인적개발의 기회를 차단시켰다.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 사건도 엄청난 인적 손실을 가져왔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회에서 인명피해를 2만5000명∼3만명으로 추정했고 해방이후, 일본·러시아 등에서 온 6만명중 상당수는 선진 기술을 습득, 지역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화를 당했다. 4·3 사건에서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연좌제 사슬에 묶여 고위 공무원은 물론 법조계, 교육계, 정부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는 도민들이 허다했다. 사실상 중앙 인맥과 단절됐다. 
 
민선자치 분열의 시대
 
이같은 역사적 굴레에도, 높은 교육열과 교육 투자로 인적자원의 한계를 극복해왔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고 특히 70∼80년대 감귤산업의 발전으로 축적된 부가 자녀의 교육투자로 연결됐다. 또 생활력과 독립성이 강한 특징 등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진학률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995년 풀뿌리 민주주의가 출범했으나 제주사회는 분열의 시대를 맞으면서 인적 자원 손실, 공동체 훼손 등이 심각했다.
 
4년마다 이어진 선거는 공직사회를 비롯해 공기업, 유관기관, 각종 단체와 기업 등 제주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여기에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제주병'이 가세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혈연·학연·지연 등 연고주의가 두드러지면서 자신과 연고가 없으면 도외시하거나 배타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좀처럼 남을 존중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며 인재가 크기도 전에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등 뒤에서 끌어내리는 풍토가 만연하다.
 
지역 주민, 정책 결정의 책임자 역할해야
 
제주는 바다에 의해 세계로 연결됐다는 개방성, '바다에 의해 막혀있다'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 1%의 변방에서 동북아 중심축으로 비상하고 도민 모두가 행복한 꿈도 갖고 있다. 이는  제주인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냐, '혁신의 정도'에 달려있다. 
 
민선시대 20년이 지나고 있으나 주민 민원에 대해 일부 공무원들은 "돈이 없다" "권한이 없다"는 말부터 하고 지역 개발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마을발전기금을 내라" "시설을 해달라"는 요구부터 시작하는 등 주민과 공무원들의 의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 자원이 없다는 불만·불평보다는 지역의 자원을 찾아 길러내는 능력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이 끊임없이 학습하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또 제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도출된 결과를 받아들여 지역발전의 정책으로 설정하는 등 정책 결정의 방관자가 아닌 능동적인 책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마인드, 남을 헐뜯으며 특정세력에 '줄'을 서는 행태 등 지긋지긋한 제주의 '고질병'을 뿌리뽑아야 한다.  
 
대안을 갖고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시민단체 활성화가 요구되고 제주도·교육청·대학 등 기관별로 분산돼있는 인적자원 개발 정책을 통합, 효율적인 시스템 마련 등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성장 동력이 인적자원에 결정되는 현 시대, 그리고 미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해 인재 양성에 대한 사회적 풍토, 글로벌 제주인대회 등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이 요구된다. 이창민 기자

"제주사회가 계속해서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면 제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제주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제주 발전을 이끌 인재를 제주사회 스스로 키우지 못한 대표적인 이유로 조선시대 200년간 이어졌던 출륙금지령과 제주4·3사건으로 인한 인적 손실, 민선시대 부활 이후 '정치적 연좌제'와 '편가르기' 등을 꼽았다.

이 이사장은 "조선시대 출륙금지령으로 제주민들의 활동범위가 축소됐고, 이로 인해 지식·기술 습득의 기회도 박탈당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해방 후 중국·러시아 등에서 귀향한 6만여명은 제주발전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4·3사건으로 대부분 희생당했다"고 말했다.

또 "4·3사건은 인적손실과 함께 공동체를 와해시켰다"며 "민선 시대 이후에는 상대방을 지지했던 인물은 능력이 있어도 발탁하지 않는 '정치적 연좌제'가 지역발전을 가로막았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제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제주공동체 회복과 시민의식 개혁, 언론의 역할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변화를 주도하는 10%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제주사회도 능력 있는 인재와 진정한 지도자(리더)가 나타나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지금의 불신과 의심의 제주사회를 신뢰와 배려의 공동체로 회복시켜야 한다"며 "도민 스스로도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생각으로 파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민의식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공직의 변화도 중요하다"며 "인사에 공정성을 기하고, 능력 위주로 선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이사장은 "인재를 키우는 방법은 이미 도민사회가 알고 있다"며 "결국 실천을 위해서는 언론이 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승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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