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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신년창간특집호 2015 창간호
근·현대사 굴곡 속 '제주 정체성'으로 남다■ '제주잠녀'로 갈무리하는 광복70년
고 미 기자
입력 2015-06-01 (월) 17:09:21 | 승인 2015-06-01 (월) 20:26:08 | 최종수정 2015-06-02 (월) 09:44:25
   
 
  ▲ 해녀 항쟁 주역들이 다녔던 하도강습소 제1회 졸업기념 사진  
 
일제강점·사회혼란·급속성장 등 변화속에서 섬 지켜
문화 체험 선구자·개척자, 기술·민속 지식 전파 역할
특유 여성 리더십 '삶 통해 형성' 된 공통감각 인정돼
 
국권회복 70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세기 역사적 아픔을 딛고 민주주의 달성과 경제 성장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제주는 그런 흐름들에서 변방이 아닌 중심에 있었다.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제주의 정체성을 찾고 우리에 맞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일은 단순한 과제 이상이다. 정체성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삶을 통해 형성'된 공통감각이다.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에서부터 무력 수탈에 항거하고 적극적인 해외 개척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제주잠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본다.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다
 
밖에서 본 제주 잠녀는 쉽게 '가장 원시적인 방식(물질)을 고집하는 특이한 집단'으로 정리된다.
 
온몸을 가린 고무옷과 테왁에 의지해 바다 작업을 하는 모습들을 주목한다. 그뿐일까. 기술문명이 발달했는데도 도구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력에 의지하려는 노력이나 역사적 굴곡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켜온 것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더디다.
 
근·현대사만 놓고 보더라도 국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항일운동 과정에서 '경제적 수탈'에 항거해 집단행동을 했던 여성들은 제주잠녀가 유일하다.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제주시 구좌읍·성산읍·우도면 일대에서 펼쳐진 '제주 해녀 항일항쟁(이하 잠녀항쟁)'은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참여, 무려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전개한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여성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난 대물림 막기 위한 자기 희생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은 '국제시장' 속 아버지 세대보다 제주잠녀가 수 세기는 더 앞섰다. 그 험난했던 여로는 곧잘 제주인들의 끈질긴 삶과 비유된다.
 
'15세기 후반 무렵 흉년과 재해, 부역과 공물의 가중, 왜구의 출몰 등을 피해 출륙'했던 기록에서 시작해 1900년대 초 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던 첫 지역 사례도 잠녀를 통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전역과 중국의 웨이하이·칭다오·다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서 물질을 했다.
 
식민지 시대가 암울했던 것은 지식인들만은 아니었다. 잠녀들 역시 '원정(동원)물질'을 강요받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착취나 차별에 맞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22년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잇는 정기연락선 '기미가요마루'(君代丸) 취항은 자발적 바깥물질의 창구를 텄다. 
 
잠녀들의 바깥 물질은 전문적 기술 집단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차별화된다. 잠녀들은 뿌리를 내린 곳 어디에서나 몸에 익힌 민속지식으로 지역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문화유산, 새로운 시대 코드로
 
제주 잠녀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정부수립(1948년 8월)과 제주 4·3사건(1948년 4월), 한국전쟁(1950년 6월)과 휴전(1953년 7월), 그 뒤로 이어지는 5·16 군사정변(1961년 5월) 등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에서도 가장의 빈자리를 채우고 바다를 통해 가정을 그리고 제주를 지켰다.
 
장편 다큐 '해녀 양씨'의 드라마틱한 삶은 논픽션이다. 가난에 밀려 도쿄 물질에 동원됐던 작은 어촌 마을의 애기 잠수는 공습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4·3의 혼란을 피해 다시 밀항선을 탄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가족을 건사하던 어머니는 북송선을 탄 자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국적자 신분('조선적')을 택한다. 일본과 갈등 중인 독도 영유권 문제에 있어서도 '실효 지배적 의의'를 들어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존재가 다름 아닌 '잠녀'다.
 
시대가 바뀌고 고령화와 현대화 등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잠녀의 가치는 '문화적 접근'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제주잠녀·잠녀문화는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여성 중심의 해양 공동체'로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자격을 얻었다. 제주를 상징하는 근면함과 수눌음, 게석문화 등에 있어 제주잠녀가 지니는 의미를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고 미 기자

"잠녀는 민족자긍 주체...재조명해야"

   
 
     
 
인터뷰 / 박상미 광복70주년기념사업추진단 위원

"제주에서 잠녀는 문화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다. '광복 70주년'이란 의미에서 볼 때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중요하게 조명 받아야 할 그룹이기도 하다"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교수(문화인류학 전공,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광복70주년기념사업추진단 민족자긍분과 위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제주잠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역사관의 이면에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체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며 "잠녀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은 제주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확인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주목한 제주잠녀의 강점은 '공동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바탕에는 주위를 배려하는 공동체의 정신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전쟁과 가난, 분단의 절박한 조건을 극복하며 압축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약해졌다"며 "제주잠녀의 공동체 문화는  지속가능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한 좋은 예"라고 꼽았다.

이어 박 교수는 "제주잠녀의 가치를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어느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제주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라고 광복 70주년과 연계한 문화정체성 확립 작업에 대한 지자체의 적극적 관심을 주문했다.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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