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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록 세계유산 등재 평화실현 주춧돌■ 제주4·3을 '세계유산'으로 -프롤로그
고 미 기자
입력 2015-06-01 (월) 17:12:02 | 승인 2015-06-01 (월) 21:15:17 | 최종수정 2015-06-02 (월) 09:45:36
"기억하지 않는 역사 반복…공동체 다시 파괴"
근·현대사 비극에서 화해·상생·평화 콘텐츠로
'집합기억'상징성 이어 '보편적 가치' 정립 시급
 
진실을 억눌렀던 잘못된 역사는 아픔을 경험한 생존자·희생자들의 기억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오랫동안 묻어뒀던 기억은 유적을 찾아냈고, 땅속에 갇혔던 유물들을 땅위로 올려 놓았다. 생존자의 기억으로 찾아낸 기록과 유적은 당시의 진실을 말하면서 평화·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세계속으로 알리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침묵에서 찾은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할 때 온전한 역사가 된다. 뿌리가 튼튼해야 올곧게 자리잡을 있기에 제주4·3의 기록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등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을 찾을 때다. 
 
세계평화 허브 만드는 이음줄
 
제주4·3의 기억은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2000년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특별법'을 제정한데 이어 대통령 공식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이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제주4·3은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역사로 휘둘리고 있다. 화해와 상생 콘텐츠로 제주4.3 평화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4·3에 대한 왜곡은 여전하다. 극우·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 진상보고서 조작 의혹과 '폭도'폄훼, 평화상 철회 요구 등 끊임없는 4.3 흔들기는 지난 상처를 덧내고 있다. 
 
보수단체의 소모적 이념논쟁은 제주·국가발전을 위한 도민·국민통합까지 저해하기에 바로잡아야 한다. 모두가 피해자라는 공통분모속에서 화해·상생의 공동체 정신을 공유하며 평화·인권의 미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제주4·3의 기록을 세계 공동의 유산으로 등재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인류의 '양심'으로 각인
 
기억을 '기록'으로, 다시 '역사'로 각인시키는 작업은 이미 오래전 시작됐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현대사 최초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하 5·18 기록물)이다. 
 
유네스코는 5·18이 동아시아 국가의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과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국가 폭력에 대한 민중의 숭고한 저항을 담은 기록을 인류가 보존하고 후세에 교육해야 한다는 등재 신청 동기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민주화 과정에서 실시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대상 보상 사례도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피해 보상' '기념사업'의 5대 원칙이 모두 관철된 예로 봤다.
 
1992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992년 20세기 일어났던 세계 중요 100대 사건의 하나로 제주4·3을 선정했다. 제주라는 좁은 공간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점, 이런 중대한 사건이 한국 안에서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금기시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은 대만 2.28양민학살이나 일본 오키나와 3·26전쟁 양민피해 등 근현대사 속 유사한 상처의 연대로 '인류의 양심과 기억 일부분으로 영원히 남아있어야 할'이유가 분명하다.
 
   
 
  ▲ 제주시 4·3평화공원내 4·3위령탑,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제주도민의 화합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평화의지의 영원함과 완전함을 상징한다. 김대생 기자  
 
증언 축적·등록문화재 등 진행
 
제주4·3은 아직 '기억'의 범주에 더 가까이 놓여있다. 준비가 늦은 탓이다. 5·18기록물은 공공기관 문서에서부터 진상규명 작업과 관련한 자료를 아우른다. 그 안에는 당시 단체들이 작성한 문건은 물론이고 개인이 작성한 일기와 기자들이 작성한 취재수첩도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구술 증언 테이프 등도 포함된다.
 
'기록'이란 이름의 콘텐츠는 침묵을 강요받았던 것들을 지상에 꺼내놓는 작업이다. 그 결과물은 '존재 한다'는 이유로 다시 역사가 된다.
 
'누구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 풍문으로 떠돌던 것들은 1988년 '4·3 취재반'을 구성하며 활자로 남길 기회(4·3의 증언)를 얻었고, 이후 제민일보를 통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과거 자료들을 들춰 역사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과 이후 진행된 정부의 공식 사과와 희생자 명예회복까지 더듬어 기록(4·3은 말한다)됐다. 
 
앞서 1960년 '4·3 사건 및 6·25 당시 양민학살 진항 규명 신고서'가 접수되기도 했고, 제주4·3연구소 등을 통한 증언 축적과 학술적 논의의 바탕도 다져진 터다. 
 
제주4·3과 관련한 주요 현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는 4·3유적 597곳 중 복구되지 않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등 46곳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 근거 마련을 위해 학술용역을 발주했다. 
 
제주4·3의 기록을 '지속가능한' 역사 유산으로 등재할 때 '평화·인권의 아이콘'이 뿌리를 내리고, '세계 평화의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다. 고 미 기자

"인류의 공존과 협력 유네스코 목적 일치"

   
 
     
 
인터뷰 / 홍세현 5·18아카이브추진위 사무처장

첫 현대사 기록유산 등재 산증인
"자료 등 추적·수집작업 진행해야"

"우리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홍세현 ㈔5·18아카이브설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전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추진기획단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5·18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과정이 떠올랐던 때문이다.

국가가 아닌 광주시민들이 나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관심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했다. 등재 최종 심사를 앞두고 반대 의견이 비등하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유네스코는 '인류의 공존과 협력'이라는 설립 목적 실현을 들어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정리한 기록을 '유산'으로 인정했다.

홍 사무처장은 "사단법인을 통한 작업이어서 등재 가능성을 희박하게 본 사람들이 더 많았다"며 "유네스코의 성격과 세계기록유산 등재 취지에 맞춰 착실하게 준비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제주4.3의 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기대는 조언으로 이어졌다. 5·18기록물에 이어 새마을운동기록물이 기록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 이산가족찾기운동기록물이 등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밖에도 4·19혁명기록물(서울), 위안부기록물(여성가족부), 국채보상운동기록물(대구), 동학혁명기록물(전북)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홍 사무처장은 "제주4·3의 기록유산 등재 의의는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본기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라며 "등재와 관계없이 제주도 차원에서 관련 기록물의 소재를 파악하고 내용과 목록을 정리하는 외에도 그동안 제주4·3을 올바르게 알리려는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수집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사무처장은 또 "기록물의 내용을 인류가 함께 공유한다는 세계 기록유산 등재의 취지는 제주4·3의 올바른 이해와 명예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들 과정에 자치단체의 적극적 관심과 예산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미 기자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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