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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밝힌 '사회적 공기'로 제주를 키워라■ 제민일보가 걸어온 길
윤주형 기자
입력 2015-06-01 (월) 21:30:36 | 승인 2015-06-01 (월) 21:32:17 | 최종수정 2015-06-02 (월) 09:46:52
   
 
  ▲ 1990년 6월2일 350여 도민주로 탄생한 제민일보가 창간25주년을 맞았다. '인간중시 정론구현'을 사시로 내건 제민일보는 4반세기 동안 심층취재를 통해 제주 4.3 진실규명, 곶자왈 보전, 잠녀의 가치 재확인, 도민 대총합 등에 힘써왔다. 또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바탕으로 대규모 대회 및 행사를 개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부터 새벽녘까지 제주의 관문을 비추는 제주시 사라봉의 산지동대처럼 한결같은 사명감으로 '제주의 길'을 밝히는 '희망의 등대'로서 도민 곁을 지키는 참 언론인이 될 것을 다짐한다. 김용현 기자  
 

'참 언론 구현' 염원 태동…안정적 성장기반 구축

4반세기 4·3, 곶자왈, 잠녀 등 도민 목소리 대변
 
1990년 6월2일 3500여 도민주로 탄생한 제민일보가 올해로 창간 25주년을 맞았다. '인간중시 정론구현'을 사시로 내건 제민일보는 4반세기 동안 각종 기획보도와 심층취재를 통해 제주4·3 진실규명, 곶자왈 보전, 제주 해녀의 가치 재확인, 도민 대통합 등에 힘써왔다. 또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바탕으로 대규모 대회 및 행사를 개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제주도민의 정의감이 이룬 쾌거 
 
제민일보는 창간 때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1990년 6월 2일 제민일보의 탄생은 이 땅에 참언론의 횃불을 밝히려는 110명의 해직 언론종사자들이 거둔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제주에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야겠다는 제주도민의 정의감과 자존심 그리고 애향심이 이룩한 쾌거였다. 
 
제민일보는 자본금도 특이한 방법으로 모았다. 먼저 창간사원들이 창간기금을 투자했고, 곧 이어 주식공모에 들어가 3500여명의 주주가 참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는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현역 언론인 900명도 참여했다. 
 
제민일보 창간과정은 한국언론사에 획기적인 일로, 언론계에서는 제민일보의 창간을 높이 평가해 한국언론의 자긍으로 삼고 있다. 특히 한국기자협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신문창간 공로로 '한국기자상'을 제민일보에 수여하기도 했다. 
 
제민일보의 탄생은 올곧은 언론을 열망하는 도민의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제민일보는 25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가장 큰 정통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제민일보만 해낼 수 있는 기획 
 
은폐된 역사를 정면으로 파헤친 대하기획물 「4·3은 말한다」는 제민일보의 역작중의 역작이다. 
 
한국언론사상 한 사건의 심층보도를 위해 10년간 취재반을 가동하는 것도 초유의 일로 기록되고 있다. 
 
4·3취재반을 구성, 창간일인 1990년 6월2일부터 1999년 8월28일까지 456회에 걸친 기획보도를 통해 4·3희생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1948년 4·3의 배경과 4·3발발 후 6년6개월간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 등 국내·외 비밀외교문서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주민증언을 사실대로 기록, 4·3진상규명의 토대를 마련했다. 
 
제민일보 기획 '4·3은 말한다'는 1993년 7월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민일보의 이 같은 노력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공포, 4·3평화공원 조성, 4·3희생자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4·3 국가기념일 지정 등으로 이어지게 됐다.
 
제민일보는 기획보도를 통해 잠녀(제주 해녀) 등 제주 문화유산을 집중 조명하며, 그 가치를 알리는데도 노력해왔다.
 
제민일보는 지난 2005년부터 지역 정체성 확립과 문화콘텐츠 활성화를 목적으로 '제주 잠녀'기획에 천착해 왔다. 
 
그동안 특이한 지역 문화 정도로 인식돼 오던 '제주잠녀'에 '해양 중심의 여성 공동체'란 정의를 내리고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온 전통과 민속지식을 '문화'로 해석했다. 
 
이들 노력은 제주 해녀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지며 제주해녀전증보전조례와 제주해녀문화세계화 정책 수립,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추진 등 제주잠녀의 가치 재발견을 이끌었다. 
 
특히 제민일보가 지난 2013년부터 도민 대통합 실현 등을 위해 연중 캠페인으로 추진하는 'WeLove(We♥)'프로젝트는 제주사회에 만연했던 반목과 갈등을 칭찬과 화합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밖에도 '경관이 미래다' '사람이 자원이다' '우리도 제주인'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단비' '다시 뛰는 4060' '제주어 전설' '제주마을 유래를 찾아서' 등 수많은 기획물을 쏟아내며 도민의 권익 향상과 제주의 가치 찾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신문
 
제민일보는 창간과 함께 크고 작은 대회와 행사를 꾸준히 개최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1990년 제민기 배구대회에 이어 1991년 제민기 제주도 고교축구대회, 2004년 제주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 도민 화합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제민기 제주도 고교축구대회는 1993년 백록기 전국 고교축구대회로 발전, 수많은 축구스타를 배출하는 대회로 발전했으며 지역상권에도 활력소가 되고 있다.
 
또 1994년 제민일보배 대상 경주, 1997년 미스제주 선발대회, 2000년 제주중소기업대상 제정·시상, 2000년 한·일 고교친선 축구대회, 2005년 전국 동문 골프대회, 2006년 제주관광대상 관광홍보사절 선발, 2009년 한·중 축구 교류전 등 각종 행사를 발굴, 제주의 이미지를 국내·외에 각인시켰다. 
 
이와 함께 제주도내 청소년들의 학교신문, 학교교지, 동아리지 등의 우수 미디어를 선정해 시상하는 전도 학교미디어 컨테스트가 지난 1999년부터 추진, 청소년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잇다.
 
이외에도 도내 각계각층의 도민들이 현장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는 청소년·도민기자를 운영, 청소년과 도민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제주사회를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안정적 경영기반 구축
 
제민일보는 지방신문의 역경 속에서도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민일보는 1990년 6월2일 제주시 이도2동 임시사옥에서 창간호 32면을 발행했으며, 1992년 5월 새롭게 준공된 연동 사옥으로 이전했다. 
 
1995년 12월 전산제작시스템 도입에 이어 1997년 2월에는 제민일보 일본어판인 코리아뉴스를 창간,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일본어 신문을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2000년 12월에는 제민일보 제2사옥인 도두사옥을 준공하고 초고속 윤전기를 도입, 가동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본사를 도두사옥으로 이전했다가 2013년 삼도2동 천마타워를 거쳐 지금의 애월읍 광령사옥에 터를 잡게 됐다.
 
현재 제민일보는 서울지사와 서귀포지사 등을 운영하는 등 도내 최대 규모의 네트워크를 강화,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신속하게 전하고 있으며, 수익구조 다변화 등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주형 기자 

윤주형 기자  21je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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