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스스로 생활보조금 대상자임을 밝힌 것은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최 시인은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는 글을 올렸다. 1994년 출간된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현재까지 무려 52쇄를 찍어 시집으로서는 보기드문 베스트셀러다. 지난해에는 21년만에 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그런 최 시인의 사정이 이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어떨까.

사실 문화예술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1년 30대 초반의 촉망받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자신의 월세방에서 굶주림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당시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달라'며 최씨가 이웃집 대문에 남긴 쪽지는 빈곤에 시달리는 예술인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최씨의 죽음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돕는 예술인복지법(최고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배우 정아율과 김수진, 우봉식, 가수 김지훈씨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달리 했다. 지난해에도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고시원에서 죽은지 5일만에 발견되는가 하면 바로 하루 뒤에는 독립영화 배우 판영진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현실은 그리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는 제주 문화예술인들의 삶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예술인들의 평균수입은 연 826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특히 59%는 예술활동으로 얻는 수입이 아예 없었으며,  500만원 미만도 11.9%로 도내 예술인 70% 이상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용형태 역시 프리랜서가 82%에 달했으며, 정규직은 4.4%에 불과했다. 더욱이 예술시장이 좁고 한정된 지역 특성상 제주에서 예술만 하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많은 예술인들이 생계를 위한 부업을 갖거나 더한 경우에는 예술을 포기하고 아예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한다. 

20여년전 제주도미술대전의 심사를 맡았던 한 원로 미술인은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창작에 대한 젊은 예술인들의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만 앞으로 이들이 예술활동을 하면서 생계 문제로 고민하고 좌절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그리고 지금 강산이 두번 변할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 예술인들의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가는 배고프고, 가난한 직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처럼 문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생계와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예술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인들의 삶은 그와 정 반대인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평범한 집의 부모들은 아이가 문학이나 예술에 소질을 보이면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정말로 특출한 몇몇을 제외하면 '이 세계에서 밥 벌어 먹고 살기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가 경쟁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주체인 문화예술인들의 삶이 이처럼 팍팍해서야 말이 안된다.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가치와 대가를 정당하게 인정받아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문화예술인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그 작품들이 합당한 대가를 받고 문화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인이 자신들의 작품을 어려움 없이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공연장, 미술관 등 다양하고 충분한 공간 조성도 필요하다. 또한 예술활동 역시 노동이며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를 향유하려는 문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예술이 없는 삶을 한번 상상해보자.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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