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新 제주 패러다임이 뜬다]

이전 기업 정착 후 '체격' 아닌 '체질' 중심 변화
사람·기술
·아이디어·상품 연결 가능성 현실로
지역 위주 사고 전환...마케팅
·사회공헌 등 눈길

제주의 기업 패러다임이 달리지고 있다. 규모화를 얘기하면서 '체격'이 아닌 '체질'을 앞세우는 환경이 됐고, 기술과 상품, 인력을 중개하는 '플랫폼'역할에도 유연해졌다. 제주 이전기업이 늘어나며 안팎으로 열린 네트워크 시대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전통'을 벗은 자리에 '제주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 한계 허무는 동반성장

2004년 수도권 기업 최초로 제주반도체가 본사를 제주로 이전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59개 기업이 제주로 주소를 옮겼다. 

이중에는 회사 명칭을 '제주'화(제주반도체)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주도(카카오) 지역 거점 기업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반도체'가 제주 수출시장에서 1차 산업 고전을 만회하는 것은 물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가 하면 지난해 네오플의 '제주 이전'으로 제주지역 부가가치가 2014년에 비해 109.4%나 증가했다(한국은행 제주본부)는 분석도 나왔다.

이들이 유도한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한 시장 확대는 그동안 '영세성'에 밀렸던 제주 업체들에는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현재 제주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카카오 트랙이 가동되고 있다. 제주대 기초교육원에서도 업체 맞춤형 입사과정 운영으로 안정적 인력 수급을 하고 있다. 지역 전체 산업을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전략적 성장 우위를 확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신재승 피앤아이 대표는 "한번도 '이전기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며 "고객사나 협력업체에 제주 업체들을 소개하는 것은 당연했고, 이후 사업 확장은 각각의 역량을 발휘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구조적 취약성을 경쟁력으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제주혁신센터) 역시 제주 기업 패러다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제주혁신센터는 기술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보다 조직유연성이 탁월한 가술집약형 기업들이 태동하고 자랄 수 있게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많은 부분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성상 산업에 있어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업화하는 장치의 역할은 제주 산업 생태계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이후 기존 도민과 문화·예술·IT이주민, 기존 산업과 신산업을 연결해 체류형 창업, 문화융합스타트업 창업, 관광산업 고부가가치화를 이끄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더크레비티사람도서관(인적교류), 체류지원(제주 외 지역 스타트업 종사자 대상) '디지털 노마드 밋업 in 제주' '크래비티데이'와 같은 행사들을 통해 국내외 인재와 제주도를 잇는 가교를 세우고 지역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세계가 제주의 경제영토

지역 위주의 사고가 전환된 것 역시 기업 패러다임 변화의 대표적 예다. 제주 시장에 한정됐던 도내 기업들의 마케팅이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확대되고 있는가 하면 사회공헌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 내 한국 소주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라산소주(대표이사 현재웅)는 자본력의 한계를 넘어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현지 스포츠 행사를 후원했고 중국 전역에 판매망을 구축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 대학생 서포터즈 '한라산이랑'을 조직해 '주류'로 대표되던 기업 이미지 개선과 더불어 지역 인력 활용 방법을 확장했다.

스마트관광 플랫폼서비스 기업인 ㈜제주비앤에프 제주패스(대표 윤형준)는 대학생서포터즈'제주패셔니스트(jejupassionist)'를 통해 홍보와 시장 조사 등 이전과 다른 움직임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카카오가 '인터넷하는 돌하르방'을 통해 지역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NXC가 넥슨 컴퓨터박물관 설립을 통해 지역 IT교육 활성화를 지원했다. 

네오플의 학교밖청소년과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문화카페 '생느행'과 네오 제주프로젝트, 온코퍼레이션이 협업한 저소득층 환아 치료비 지원 등 사회공헌의 방식을 다양화 한 것이 제주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며 상생 모델로 가능성을 키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영채 제주애기업협의회장

"제주 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전기업 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전'보다는 제주 기업이 된 만큼 상생에 대한 고민이 커졌고 그것이 제주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것이 맞다"

김영채 제주애기업협의회장은 "제주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수익보다는 성취감이나 행복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환경적 변화에 '이전 기업'이 자극을 줬다는 얘기다.

제주라는 한정된 시장 안에서 경쟁을 했다면 힘들었을 얘기지만 이전기업이 전체 시장 규모를 키우고, 인력 양성이나 창업에 대한 기본 가치관을 바꿨다는 점도 동의했다.

김 회장은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역 또는 기술적 제휴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대기업 중심 또는 연구·자본집약적인 기존 기업 생태계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 지역 내 변화 욕구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들은 호흡이 길고 또 제주의 산업구조적 취약성을 바꾸는 데 체감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기존과 다른 경영 방식이나 '1인기업' '탄력근무제' 등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저항이 큰 지역 특성까지 보태지며 해석이 분분한 상태기도 하다.

김 회장은 "기업들의 제주 이전 메리트가 점점 낮아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제주에 정착한 기업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며 "제주애기업협의회 역시 초기에는 각종 규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우선순위에 뒀지만 지금은 지역과 네트워킹이나 파트너십 강화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고 말했다.

또 "구조적 한계를 바꾸는 것 보다는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보다 효과가 있다"며 "현재 제주가 느끼고 있는 변화가 그런 것들을 집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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