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공감제주 감동제주' 꿈꾸는 청년이 제주를 바꾼다 3. 나는 '딴따라'다

열정페이 수준의 열악한 보수…한정된 취업 시장으로 '구직' 한계
실험적 도전 지원·지속 가능한 정책 확보로 '살기 좋은 제주' 기대
제주 이주 열풍의 배경인 '인생 2막'은 은퇴의 다른 말이 아니다. '제주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경험담이 쌓이면서 새로운 도전을 뜻하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현실은 아직 이런 이상을 쫓아가는데 급급한 실정이지만 변화의 조짐은 분명 나타나고 있다.
# 모험 시작한 청년, 시선은 여전
제주지역 문화예술 '판'은 사실 둔감하다. 서울 등 수도권의 그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불모지다. 익숙한 음악·미술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렇다고 '힘드냐'면 '해볼 만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제 시작 단계이니 힘들 수 있지만 실험적 도전에 대한 지원과 지속 가능성만 확보한다면 청년이어서 살기 좋은 제주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최근 진행된 두 차례 청년문화 토론회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지난 18일 제주청년네트워크(상임대표 유서영)의 '우리는 문화예술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난장토론회와 지난 20일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모임 제주문화관광포럼(대표 이선화 의원) 주최로 열린 '제주에서 지속가능한 청년문화'정책간담회다.
이날 쏟아진 의견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로 정리된다.
박경호 위즈돔제주 총괄매니저의 경험을 살펴보면 '문화콘텐츠 기획자'를 목표로 직접 기획이나 스태프 참여 등 백방으로 뛰었지만 직업으로 선택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현실감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열정페이'수준의 열악한 보수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고, 한정된 시장 안에서 정기적으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한계가 됐다. 문화지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갖춰야 할 자격이나 서류양식이 사회 초년병에게는 말그대로 '벽'이 됐다.
결국은 만들어진 사회의 틀에 맞춰 들어가는 것으로 스스로 '패잔병'임을 자인하는, 아픈 청년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 청년문화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물러서기에는 청년의 자존심은 아직 뜨겁다. 여러 통로로 목소리를 내고 또 들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주도하는 움직임은 미약하지만 뛰고 있다.
강보배 제주청년협동조합 운영위원장은 "제주에 청년 전담팀이 꾸려진 것도 최근의 일이고, 특히 문화기획에 있어서는 각종 제한과 부정적인 시선이 상존하는 게 현실"이라며 "가장 필요한 것은 청년들이 판을 주도하는 자존감이며,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데 기성세대들도 함께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문화 기획자로 공동 창작공간인 플레이스 일로와 제주를 설립한 이금재 대표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청년들이 숱하지만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는 청년들은 극히 일부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제주도가 청년원탁회의를 꾸리고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범위가 제한적인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들이 뭔가 하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금전적 지원만이 아니"라며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청년의 특권을 지원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의 진단은 이런 흐름이 필요한 이유로 연결된다.
전 센터장은 "예전에는 감귤 덕분에 육지서 공부하는 것이 '청년문화'를 대표했다면 지금은 제주에 모인 가능성 있는 청년들이 문화를 만들고 있다"며 "고착되기 쉬운 섬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일하는 공간을 마련해 독립하고 아이템을 고민해 창업까지 하는 모습들은 신선하고 또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문화판 '신진대사' 필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실은 누구에게나 냉정하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은 청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패에 따른 파장이 다르고, 성공 가능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경험에서 온다.
예를 들어 문화지원 프로그램에서 청년이라고 더 많은 서류양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준에 있어서는 밀릴 수 있다. 그렇다면 신인과 기성 등 접근 방식의 세분화를 주문하면 된다.
정보에 있어 보다 발 빠른 접근도 필요하다. '의욕이 충만한 것'과 '지원 가능성'이 동일선상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에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제값을 받고 팔아야 보물이 된다.
문제는 아직까지 문화행정시스템이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데 있다. 비재정적 지원에 대한 인식도 모자라다.
이선화 제주문화관광포럼 대표는 "밖에서 본 제주의 가능성을 제주 청년들도 인식하고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을 제주도의 예산과 행정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며 "각종 문화행사나 프로그램 기획 등에 있어 청년그룹을 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공동대표의 '신진대사'충고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신진대사의 말뜻은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을 교체한다'다.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고 개선 가능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새로운 것을 채워 넣으면 활력이 된다. 이것이 청년들이 꿈꾸는 '딴따라'다.


[선배에게 듣는다] 양윤호 영화감독
"실패가 끝 아니…가능성 찾으면 돼"
"'딴따라'라는 말은 성공을 전제로한 말이 아니라 '도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모두가 1등이고 성공하면 무슨 재미가 있나"
제주 출신으로 영화 '리베라 메' '바람의 파이터' '유리' 등과 드라마 '아이리스' 등을 연출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양윤호 영화감독(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다른 분야와 달리 문화예술에는 거장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성공한 사람이 아닌 많은 도전과 경험을 인정하는 의미"라며 "그런 각오 쯤은 있어야 '딴따라'"라고 말했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갖기까지 도전 일색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예회 연극 주연도, 경찰대학 합격통지서를 받고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한 것도, 첫 작품으로 독립영화를 택한 것도 다 도전이었다.
양 감독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감독으로 데뷔해 성공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잘해봐야 0.5% 정도"라며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한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현실은 냉엄하다. B급이나 C급이 되어도 행복할 수 있는지가 선택의 이유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라서'라는 청년들의 불만에 양 감독은 "절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논리라면 한재림(더킹·관상), 부지영(카트), 강현철(써니), 오멸(지슬) 같은 젊은 감독들은 뭐가 되냐"며 "제주에서 공부 잘하면 판·검사같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취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서 활약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자신감을 북돋웠다.
양 감독은 특히 '경험'이란 단어에 힘을 실었다. "내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영화감독을 지지해준 선배가 있었고, '오발탄'으로 유명한 류현목 감독 등 좋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났고 1세대 감독으로 많은 것을 해봤다"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에 제주출신엔터테이너모임 회장 시절부터 7년째 도내 청소년들을 위한 대중문화캠프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또 안되면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