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공감제주 감동제주' 꿈꾸는 청년이 제주를 바꾼다 8. 스스로 길을 열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인근 '알뜨르 농부시장'에 모여 그동안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김봉철 기자

폐교된 무릉분교에 작년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둥지
전국·해외 청년 12명 의기투합…농사·전문분야 활동 펼쳐
농부시장·워킹홀리데이 등 진행…"현재 즐거움에 만족해"

'아플 수 있어' 청년인 이들에게 답은 없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버는 것이 제 몫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맞춤형 대신 스스로 길을 내는 청년들이 제주의 한 축을 만들고 있다. 섬과 넥타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가능성의 발판을 만든 이들도 그 중 한 무리다.

# "우리는 청년농부"

"목표는 '농부'입니다. 전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을 어르신들에게 농사일을 배우고 있어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마을에서 하고 있죠"

1994년 무릉분교가 문을 닫으며 빠르게 나이를 먹은 대정읍 상모리에 요즘 트로트 대신 종종 힙합이나 재즈가 울린다. 제법 익숙해진 어르신들이 중독성 강한 아이돌 그룹의 후크송을 흥얼거린다. 5년 전부터 마을을 들락거리다 지난해 아예 주소를 옮겨 주민이 된 20대 청년들이 만들어낸 변화다.

그들이 뭉쳐 만든 것이 로컬(제주)과 글로벌을 버무린 청년문화를 목표로 한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사장 안창근)이다. 대구와 인천 등 제주가 고향이 아닌 청년 12명이 힘을 합쳤다.

비공식 멤버로 미국, 덴마크, 필리핀 등 외국 출신도 있다.

어느날 불쑥하고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벌써 1년 넘게 마을과 호흡을 맞춰왔다. 마을에서 청년들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친분을 쌓아왔다. 옛 무릉분교 자리에 들어선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에 '대한민국 워킹홀리데이 캠프'를 설치하고 다양한 청년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제주와 세계, 청년을 하나로

이들이 '제주'와 '글로벌', '청년다움'으로 뭉칠 수 있던 배경에는 '하고 싶은 일'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제주에서 살고 싶다, 뭔가 하고 싶다는 동기에 각자의 강점이 촉매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이성빈 조합 이사(34)는 대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었고, 박진석 연구원(26)은 길거리 운동인 '스트리트 워크아웃'을 개척한 경력이 있다.

뭉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했다. 첫 작업으로 워킹홀리데이 캠프에 3인실부터 10인실까지 숙소를 꾸미고 캠프파이어, 바베큐시설, 운동장, 움집, 식당, 휴게실 등을 갖춰 육지와 각국 청년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캠프에서는 '워홀족'들을 위해 체류프로그램을 갖추고 청년들이 농가 일손을 도우며 제주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저녁시간이면 캠프 시설을 이용한 글로벌 이색 파티가, 주말에는 캠프에서 만난 여행친구들끼리 제주 곳곳을 여행하는 제주투어가 진행된다. 

또 각국 청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 다른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Language Exchange', 여행자들이 필요 물품을 저렴하게 사고파는 글로벌 플리마켓도 수시로 개설돼 서로의 필요를 채운다.

지난해 11월에는 송악산 입구에 '알뜨르 농부시장'을 열고 마을에서 생산한 고구마, 마늘, 백하수오, 만감류, 감귤칩 등 건강한 먹을거리와 재미난 청년 문화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농부시장이라고 흔한 파머스마켓과는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홍보문구를 배치하고 인디밴드 등 버스킹 공연, 송악산 힐링투어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주변 관광지를 안내하는 정보센터 역할도 하면서 판매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 12개의 꿈, 제주서 펼친다

한국공정여행문화협동조합을 통해 제주와 인연을 맺은 이성빈 조합 이사는 "제주에 올 때마다 제주가 갖고 있는 매력을 제대로 즐기고 가는 청년들이 적다는 점이 아쉬웠다"며 "청년들이 장기간 머물며 제주 곳곳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꾸리다 보니 아예 정착한 청년들을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배우는 자세도 늘 열려있다.

전역 1개월만에 제주로 터전을 옮긴 인천 출신 문재민 조합원(23)은 마을 음식점에서 요식업을 배우고 있다. 책 대로가 아닌 동네 사장님의 노하우를 습득하는 '청년 장사꾼'을 자처한다.

이런 과정들은 마을의 일원이 되는 것과 맞물린다.

이 이사는 "정말로 농촌 생활과 마을 봉사에 대한 의지가 있는 청년들로 조합을 구성했고, 대부분 실제 주소지도 옮겼다"며 "우리의 꿈과 활동이 마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는게 첫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조합은 제주시농협·한국농업경영인단체·제주대와 협약해 워킹홀리데이 참여자를 활용한 농번기 일손 돕기 프로그램을 꾸리는가 하면 공부방 등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이런 노력들로 마을에서 공공재인 마을회관을 청년들에게 잠시 내주게 됐다. '젊게 한 번 해보라'며 농산물 직판장 운영도 맡겼다.

이 이사는 "더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이 즐겁다"며 "우리로 인해 마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이뤄진다면 그 보다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청년기행 프로젝트 준비하는 고용희씨

효돈천 트레킹 등 생태관광 명소로 떠오른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이곳은 청년 생태문화여행 기획자인 고용희씨(㈜제주생태관광 공동대표·28·사진)의 활동무대다.

고씨는 최근 다음 스토리펀딩에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한 여행 프로그램 '내일, 그대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젝트는 '요즘 청년들에게 내일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청년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다보니 꿈꾸는 '내일'이 없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고민할 여유가 없으니 '내 일'을 찾지 못한다. 

고씨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20~30대 청춘들을 모아 여행할 계획이다. 여행은 곧 청년들이 꿈을 꾸고, 꿈을 찾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시간이다.

그는 "언제부터 꿈이 사라진 걸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난 불량품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적이 있다"며 "고향인 강정마을에서 구럼비 발파를 앞두고 한 달 반 기행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 덕분에 여행의 힘을 깨닫고 '불량이 아니라 조금 다른 모양의 삶을 사는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평범한 취업준비생이던 그는 25세에 생태관광에 뛰어들어 여행 기획자·해설사로 변신,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 지역주민을 행복하게하는 따뜻한 여행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특히 생태관광이 작은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마을을 더욱 사랑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광경을 목격하며 그의 꿈은 막연한 목표가 아닌,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청년기행 프로젝트도 마련한 것도 자신처럼 길을 찾지 못하던 청년들이 여행을 통해 꿈에 다가설 수 있도록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다.

고씨는 "앞으로 제주 안에서 꿈꾸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연재할 계획"이라며 "아직 꿈을 찾지 못했거나, 그저 공감해줄 친구가 필요한 청춘들이 이곳 제주를 함께 걷는다면 정말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번 스토리펀딩은 여행비용 300만원 마련을 목표로 5월24일까지 70일간 후원 모집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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