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끊긴 그곳에는 산비둘기가 가끔 찾아오고 꿩 발자국이 간혹 흩어져 있을 뿐,주변의 잡목들도 칼바람 때문에 언 땅에 제 몸을 낮출대로 낮춰 엎드려 있다.
고개를 조금 세우기라도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봉두난발 같은 그 바람은 여지없이 달려와 베어 버린다.
명도암물은 동네 개구장이들이 이곳에서 물장구를 치고 붕어를 잡던 여름날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시 봉개동은 본래 ‘명도암’‘봉아오름’‘새미’‘가는새’‘웃무드내’ 등 5개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다.
이후 봉아오름·명도암은 봉개리로,새미·가는새는 회천리로,웃무드내는 용강리로 각각 개편된데 이어 55년 9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지금의 봉개동으로 편입된다.
▲명도암물
동부산업도로를 타고 봉개마을의 중심지를 지나 명도암 관광목장으로 방향을 튼 뒤 250m가량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에 ‘안새미’와 ‘밖새미’라는 두 개의 오름을 만날 수 있다.
또 이 두 오름을 합쳐 형제오름 또는 형제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도암물은 한때 식수로 이용됐던 용수구와 빨래터·큰 연못(제1연못)·작은 연못(제2연못) 등 4단계의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용수구와 빨래터의 경우 철문과 함께 주변 돌담이 잘 정돈돼 있다. 그러나 이 물은 현재 식수로 이용할수 없다.
제주시 상하수도사업소가 99년 제4분기에 수질을 검사한 결과 일반세균(기준치 100CFU/mℓ)이 133CFU/mℓ나 검출됐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와관련 “주변에 축사가 잇따라 들어섬에 따라 이곳에서 배출되는 가축 분뇨 등이 지하로 스며들어 수질이 오염되고 생태환경이 바뀌고 있는 게 아니냐”며 우려한다.
물론 수질보호를 위해 연꽃을 없애고 붕어 등 어류를 잡아들이기도 했다. 이 마을 김대식씨(64)는 “80년대 중반에는 일부러 이 일대의 연꽃을 없애고 붕어잡이에 나서는 등 수질보호를 위해 갖은 방안을 써봤지만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300평방m가량의 큰 연못과 150평방m가량의 작은 연못 주변에는 습지식물인 ‘고마리’가 많다.고마리는 약간 덩굴성이며 줄기는 능선을 따라 밑으로 향한 가시가 달리고 털이 없는 게 특징이다.8∼9월에 흰 바탕에 붉은 점이 있거나 백색 또는 연한 홍색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가 익는다.어린 순은 민간요법으로 요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습지조사단은 지난 97년 이 일대에 대한 조사를 통해 드렁허리·붕어 등의 어류와 참개구리·물달팽이 등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여름 장마철이면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던 이곳에는 풀벌레 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취재=좌승훈·좌용철기자>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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