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 세계가 달린다<4>덴마크 헬레럽 스쿨

헬레렙 스쿨 학생들이 목공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교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개방형 공간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형성…교사·학생 소통 효과적
교과서 공부는 학교에서만…숙제·시험 대신 가족과 책읽기 강조

덴마크의 학교교육은 높은 자율성이 특징이다.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자유학교 (free school)를 포함해 누구나 학교를 세우고 뜻대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공간의 혁신을 통해 교육 혁신을 꾀하는 '개방형' 학교도 늘어나는 추세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공립 기초학교인 헬레럽 스쿨(Hellerup skole)을 찾아 덴마크 학교교육의 흐름을 살폈다.

△교실문 없는 개방형 학교

지난달 6일 방문한 헬레럽 스쿨은 독특한 내부구조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학교건물에 들어서면 어느 곳을 둘러봐도 사방이 막힌 교실이 없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인 1~9학년 학생들은 곳곳에 놓여 있는 원형 소파나 시청각실·강당·목공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3개 학급이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학년의 수업은 90분으로 긴 편이지만 수업시간 중간에 변화를 주면서 지루하지 않도록 했다. 수업 이후 쉬는 시간은 30분이다.

교실이 폐쇄되지 않고 모든 게 다 보이다 보니 헬레럽 만의 특별한 장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학생들간 관계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일례로 저학년 학생들간 다툼이 생기면 고학년 학생들이 달려가서 중재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또 학생들간 스킨십도 활발해졌다는 평가다.

교사 입장에서도 다른 교사의 수업장면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교수방법을 참고하거나 좋은 교수방법을 토론하는 등 교사간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됐다. 교사들은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면서 학생과의 관계 등 혼자 하기에 어려운 일들을 공동으로 모색하며 함께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도 개방형 공간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집중하려고 하는 학생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학교는 이런 학생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집중할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둔 작은 박스형 공간을 마련했다.

이같은 헬레럽 스쿨의 새로운 공간 실험은 15년 전 '새로운 교육에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기치 아래 건축가·교사·학부모가 학교 만들기에 참여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덴마크 전체적으로도 신축하는 학교 건물은 헬레럽 스쿨처럼 개방형으로 설계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기존 학교들 사이에서도 공간 재배치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다.

학교 2층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전교생과 교사가 모여 20분 정도 노래와 연주, 공연 등 작은 축제를 연다.

△숙제·시험보다 관심 유도

헬레럽 스쿨은 덴마크 학교답게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 바탕에는 협동심과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키운다는 덴마크의 교육목표가 뚜렸하게 배어 있다.

교과서는 1층에 두기 때문에 집에 가져갈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숙제 없는 학교'는 덴마크 교육개혁의 목표이기도 하다. 오전 8시에 학교에 와서 오후 2시까지 공부하고 그 이후는 가족들과 지내는게 제대로된 삶이라는 교육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업은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생활스킬, 즉 목공이나 요리 등을 강조하며, 학년통합수업도 흔하다.

또 1~9학년중 7학년까지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도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치열한 입시경쟁이 없는 학생들은 시험과 숙제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대신 공부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과목별로 프로젝트 형태의 '~데이(day)'를 6개월에 10회 가량 개최한다. 9월 11일부터 1주일간 전교생이 수학과목을 집중 탐구하는 매스데이가 진행된 것을 비롯해 사이언스데이, 잉글리쉬데이 등이 펼쳐진다. 기간은 1~4주로 다양하다.

프로젝트 기간에는 학년 융합수업이 펼쳐진다. 3학년이지만 잘 하면 6학년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반대로 고학년이 저학년과 함께 수업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툭 터놓고 공부해보자'는 것이다.

또 헬레럽 스쿨은 과학에 특화된 특별교육과정을 갖추고 있어 이 분야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일부러 전학을 오는 경우도 많다.

학교 2층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전교생과 교사가 모여 20분 정도 노래와 연주, 공연 등 작은 축제를 연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자문관은 "덴마크에서는 '교육을 받는 것은 의무(compulsory education)이지만 학교에 가는 것이 의무(compulsory schooling)는 아니다'는 말처럼 전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며 "다양성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목표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공간과 분위기 혁신교육 큰 도움"

(기획 인터뷰) 애나 그릿 피터슨 교사

"학생들의 지식을 시험으로 평가한다는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이 학생이 오늘은 모르지만 내일은 알 수 있는게 지식 아닌가"

헬레럽 스쿨에서 7년간 국어과목을 맡아온 애나 그릿 피터슨(Anna Gritt Petersen) 교사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시험'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보였다.

그는 "7학년이 되기 전에는 전혀 시험을 보게 하지 않는다. 대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또 국어교사로서 학부모에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달라고 당부할 뿐, 숙제는 절대 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애나 교사는 이어 "덴마크에는 '공부하라'는 말 자체가 없고, '읽어라'라는 말만 있다"며 "모든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학교에서만 보도록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등·하교 할 필요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변화된 학교 공간에 대해서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수업공간이 펼쳐져 있다보니 처음에는 소음으로 힘들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져 지금은 조용한 분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애나 교사는 "특히 각 수업공간마다 한 켠에 자리잡은 공간도 인기가 높다"며 "작은 공간에 모여 하루를 시작하는데, 좁은 만큼 가까이 앉아 책을 읽거나 어깨동무 등 친밀감을 키울 수 있다. 스킨십을 통해 서로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학교들 사이에서 교실을 자유롭게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열린 공간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연한 공간 설계가 혁신교육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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