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2 <1> 프롤로그

4·3 발생 70년째...후세에 대물림하기 위한 기록 작업 요구
도, 사진·영상 등 2936점 확인...지방공휴일·특별법 후속과제

올해로 섬을 붉게 물들였던 제주4·3이 발생한지 70년째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통해 빛을 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누구도 완전한 해결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역경을 딛고 '기억'하는 단계에 이른 제주4·3의 가치를 오롯이 후세에 대물림하기 위해 '기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을 계승하고 '완전한 해결'이라는 도민 모두의 바람을 이뤄내야 한다.

△ 기록유산의 가치

유네스코(UNESCO)는 기록유산의 보존에 대한 위협과 이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세계 각국의 기록유산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기록유산은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된다. 또는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다.

△ 끝나지 않은 '제주4·3'

제주4·3은 그동안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정과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제주4·3평화재단 출범, 제주도민과 희생자 유족에 대한 대통령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 아직도 일부 보수단체 인사들은 4·3특별법과 일부 희생자 결정에 대한 위헌 및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과 망언으로 끊임없이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첫 국가추념일인 66주기(2014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묻는 작업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2016년 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제주4.3을 현대사 속에 짧은 언급한 것도 모자라 이마저도 희석 왜곡 서술, 4.3 희생자와 유족은 물론 도민들의 공분을 샀다가 폐지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또 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고 제주4·3희생자추념일을 제주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는 조례는 정부의 재의 요구로 표류하고 있다.

△ 세계화로 전국화 장벽 넘는다

70년 전 평화롭던 제주 섬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던 비극은 살아남은 이들과 학자, 언론 등의 노력으로 기억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를 제대로 활용,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는 것을 막고 또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제주4·3의 가치를 확인, 지금도 계속되는 '4·3흔들기'의 명분을 상쇄할 수 있다. 또 제주도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지역사회 역사 발전을 위한 전기 마련도 기대된다. 특히 제주4·3 기록물을 전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인증 받음으로서 세계화에 성공한다면 아직은 요원한 전국화의 장벽도 손쉽게 넘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아직은 미완으로 남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 기록유산 등재로 '평화의 섬' 각인

제주4·3을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세계섬학회와 제주대 세계환경과섬연구소,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은 2016년 11월 대만을 방문해 대만국립중앙대학 역사연구소와 대만 2·28재단과 함께 제주4·3의 발단이 된 1947년 3·1시위와 3·10 총파업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은 328명의 재판 기록을 대만 2·28 관련 자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연구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4·3 유족 등은 기록유산 등재 작업을 건의한 상태다.

제주4·3평화재단도 지난해 2월 시무식에서 4·3의 미래방향을 설정하고 평화 정신의 숭고한 가치를 국제사회에 확산하기 위해 4·3자료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14일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 최종보고회를 갖고 총 사업비 148억원을 투입해 117개의 사업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사업은 △4·3희생자 및 유족 추가 신고 △행방불명인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 △과거사 피해자 배·보상 추진 △4·3희생자 추념식 △전국 분향소 설치 등 추모 위령 사업 등이다.

특히 도는 2000년 4·3특별법 제정과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4·3기록물의 국제적인 공인을 통해 갈등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등재 신청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2019년 5월 문화재청에 등재를 신청하고 2020년 3월 세계기록유산 사무국에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기록물은 문서류 1196점과 사진류 63점, 영상.녹음기록물 1677점 등 모두 2936점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고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말로 제주4·3을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미룰 수 없다.

어둠의 역사로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제주4·3은 1988년 제민일보 4·3취재반의 노력으로 지면을 통해 빛을 보낸 데까지는 성공했다. 어렵게 양지로 나온 4·3이 단순한 제주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아 화해와 상생의 제주4·3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제주가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인터뷰> 양윤경 제주4·3유족회장

"제주4·3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미국의 책임을 묻는 작업에 기여할 겁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국제적으로 인증된 기구인 유네스코를 통해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제주4·3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같이 밝혔다.

양 회장은 "제주4·3을 단순히 제주에서 일어난 일로 보면 안 된다"며 "미군정 하에서 미군정의 묵인 아래 벌어진 양민에 대한 대학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제주4·3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제주4·3의 과제인 전국화.세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회장은 "최근 일부 보수인사들이 제주4.3을 공산주의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반대하는 등 4·3흔들기를 지속하고 있다"며 "제주4·3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장도 힘을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주지역 100여개의 사회단체 및 인사들이 참여하는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제주4·3 7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며 "4·3추념식에 대통령도 참석 의사를 밝힌 만큼 모든 도민이 같이 참여하는 70주년 4·3추념식이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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