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기획연재 사유의 인문학 詩네마 토크
누구나 한편의 詩가 되기를 꿈꾸는 삶사유의 인문학 詩네마 토크 (2) 영화 <네루다>를 읽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8-02-05 (월) 11:50:47 | 승인 2018-02-05 (월) 17:26:41 | 최종수정 2018-02-05 (월) 17:45:23
영화 <네루다>.

주연·조연 등 애매모호하게 하는 불분명성 영화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 시인의 존재 이유 등 설명


어렸을 때 위인전을 많이 보며 자랐다. 이순신, 세종대왕, 링커, 헬렌컬러, 간디…, 등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위대하고 초인적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의심이 생겼다.내가 알고 있는 위인들은 어쩌면 위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것은 역사적 지식이 조금 생기고 나름대로 비판적 안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의문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위인은 없거나 모두가 위인이 될 수 있다'이다. 어떤 시대냐에 따라, 또한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위인이 될 수도 있고 역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라 팔아먹은 오적을 위인으로 인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것은 시대, 관점 불문하고 명백한 악이니까. 

영화 <네루다>(파블로 라라인, 2016년)를 보면서 몇가지 선명해진 생각이 있다. 첫째, 세상의 주연과 조연은 따로 없다. 둘째, 시인의 죽음 운운하는 시대일수록 시인이 확실히 필요하다. 셋째, '무엇이 인간적인가?' 하는 질문에 '완벽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영화 <네루다>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2016년 작품이다. 파블로 라라인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를 다룬 전기영화 <재키>의 감독이다. <네루다>역시 전기영화다. 누구나 알다시피 네루다는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네루다와 관련된 영화는 이미 개봉된 바 있다. 1994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봉했던 '일 포스티노'가 그것이다.

파블로 네루다(1904~ 1973)의 본명은 네프달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스알토. 13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 신문에 시를 발표했다가 아버지로부터 구박당하자 파블로 네루다로 필명을 지었다고 한다. 네루다에게 따라붙는 이름은 수없이 많다. 시인이자 정치가, 외교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네루디스모(nerudismo)' 시 기법 창시자 등. 그가 칠레 국민시인임이 증명된 사건이 있다. 2010년 칠레 북부의 산호세 광산이 무너졌을 때 지하 700m에 갇힌 광부 33명은 네루다의 시를 암송하며 69일을 이겨냈다고 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영화 <네루다>는 국회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네루다를 향해 "칼리굴라 황제님." "소련이라면 죽고 못 사는 공산주의자."라며 야유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네루다를 행해 야유를 하는 이유는 네루다가 대통령을 모욕했기 때문이다. 1948년 네루다는 「나는 고발한다」는 연설문을 통해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판함으로써 국가원수죄로 체포 위기에 처한다. 곤살레스가 공산당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한 것에 격분해 신랄한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네루다(루이 그네코 역)는 비밀경찰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역)의 추격을 받는다. 물론 오스카는 감독이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다. 네루다는 공산당원의 도움을 받으며 비밀경찰의 추격을 따돌린다. 반면, 오스카는 추격하는 곳마다 간발의 차이로 네루다를 놓치고 그때마다 네루다가 남긴 책을 발견한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와 함께 일어나 다시 태어나라. 경찰형제. -네루다"라고. 오스카는 네루다가 남긴 시집을 읽으며 네루다의 시, 그리고 네루다라는 인간에 매혹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으며 꼭 네루다를 잡아 영웅이 되겠다는 신념을 불태우기도 한다. 결국은 안데스산맥을 넘는 눈밭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신세가 되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네루다의 영웅성이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별볼일 없어 보이고, 거만하고 감정적이고 때로는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유일하게 네루다를 인간적이게 하는 건 수없이 인용되는 네루다의 시다. 시꿘스를 달리 할 때마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시가 흐른다. 주인공에 대한 시선은 다층적이다. 주인공은 네루다가 아니라 오스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스카가 내레이션을 하며 끝없이 네루다의 인간 면모를 흠잡는다. 노동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인텔리적 브르주아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며, 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놀아났으며, 거기에다 윤락가를 드나들고, 술주정뱅이에다 여자를 좋아하는 놈팽이라는 식이다. 오스카에 대한 감독의 관점도 특이다. 비밀경찰인 오스카는 이상하게도 감상적인데가 많다. 네루다가 남겨논 시집을 읽으며 그에 대해 상상하고, 쫓는자라기 보다는 네루다의 발걸음을 좇는자처럼 그려진다. 마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는 인물을 체포하겠다고 뒤쫓는데, 어쩌면 오스카가 네루다 자아의 그림자가 아닐까 착각하게 한다. 

네루다와 오스카는 많은 부분 닮았다. 네루다의 "누가 나를 죽일 건데?" 라며 거들먹거리는 영웅적 심리는 오스카에게서도 볼 수 있다. "나는 훌륭한 경찰이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도 될 수 있다."고 오스카는 독백한다. 그는 창녀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그의 의식은 올리비에 페룰쇼노라는 전설적인 경찰청장의 아들로 각인되어 있다. 단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대를 이어 영웅이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영웅적 심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쫓고 쫓기는 게임의 주연과 조연이 누구인지를 모호하게 한다. 애매모호함, 경계의 불분명성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와 환상의 넘나듦, 독선과 연민의 교차, 하얀눈과 붉은 피…, 이렇듯 수없이 교차되고교란되는 조명과 카메라의 시선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종착한다.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에 생각이 머물게 한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난 이제 그녀가 곁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녀를 잃었다는 생각에 잠긴다/ 밤바람은 높은 저곳을 빙빙 돌며 노래한다/ 그 시는 영혼에 떨어진다."(이 시의 제목은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것이다'이며, 네루다 초기시집  『스무 개의 사랑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시』 에 실렸다) 영화 전반에 내레이션으로, 노래로 흐르는 이 시는 거침없는 성격의 네루다의 한쪽 가슴을 들여다보게 한다. 혼자 걷는 길을 생각하게 한다. 네루다는 흠이 많은 인간이었지만 한편 마음이 따뜻하고 정의로운 신심을 엿볼 수 있다. 취객들에게 무시당하는 여장남자 가수에게 같은 '예술인'으로 정중히 존중하는 모습이나 절망한 여성 당원에게 평등의 원리와 미래를 약속하는 등의 모습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자신을 뒤쫓던 오스카가 총에 맞은 것을 보고 그를 향해 걸어가 무릎을 끓는 모습에서 죽음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볼 수 있다. 비록 자신을 죽이러 쫓아오던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죽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을, 오스카 또한 그가 사랑하는 민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오스카의 입을 빌려 시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네루다는 민중을 위해 시를 쓴 거다. 인생이 고달플 때 시를 읊으라고, 권력에 짓밟힐 때 시를 인용하라고. 사랑의 시는 기억하지 못해도 분노의 시는 기억하니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 그의 예술이 나에게 생명을 준거다." 라고. 

오스카는 하얀 눈밭에 피로 물들인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는 죽어가면서 "곤살레스 대통령의 똥같은 나 잘 했어. 잘 버텼어."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네루다를 쫓아가다보니 비로소 자신도 시인이 된 것처럼 "백색의 선명한 선혈 위에서 음악이 되고 동물과 시가 된다."라며 읊조린다. 네루다를 통해 자신은 시가 되어 영웅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이 완성되었다고 고백한다. 삶의 이유가 존재감의 확인이라는 듯이 오스카는 네루다의 입을 통해 '오스카 페룰쇼노'라는 이름을 스타카토로 분명히 발음한다. 영원히 잊지말라는 듯이. 평생 조연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오스카는 이제 한편의 시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주연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게 된 것이다. 시는 존재를 평등하게 한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