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드러내라

장위동 도시재생.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이었는가. 사업 주체가 원했던 것인가. 사업이 제대로 안되면 마을공동체가 취약한 것인가".

지난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저층주거지 집수리 지원방안과 과제'정책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는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추진했던 도시재생과 유사 사업들에 있어 분명한 문제를 찾으라는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계 등 전문가 그룹과 주거환경개선 등 현장 활동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꺼낸 대답은 '지금의 제도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드러내라'는 주문이었다.

△유기적 복합체 특성 인정
서울은 하나의 정책과 지원 또는 방향으로는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이 복잡하다. 도시에 유기체라는 성격을 부합했을 때 어디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런 특성들로 서울은 효과적인 도시재생을 위해 지역에 맞춘 '재생'에 주목해왔다. 인구주거·산업경제·지역자산·도시재생 여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석하고 이를 '신경제 광역 중심 육성' '쇠퇴·낙후 지역 경제활성화' '자연·역사·문화 정체성 강화' '노후쇠퇴주거지역 활성화'로 유형화했다.

여기에 올해 도시재생의 단위를 '면'에서 '선'으로 확대, 골목길 개선에도 손을 댄다. 골목을 단순한 통로 이상으로 해석한 결과다.

도심 내 열악하고 낙후한 골목길을 일·삶·놀이가 어우러진 곳으로 되살리는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이다. 일정 구역을 살리는 기존 도시재생의 범위를 허물고 골목길을 따라 1㎞ 이내 현장 밀착형 소규모 선(線) 단위 재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2년차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불거진 현장 주문과 맞물리는 결과로 눈길을 끈다. 사업 계획을 '구역'에 맞추면서 기형적 사업 추진이 불가피해지는 문제를 골목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도시재생의 목적을 삶의 질 개선에 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골목길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낙후한 환경을 개선하며, 공동체를 되살린다는 거창한 목표를 걷어내고 보면 어둡고 위험한 골목길을 밝고 안전하게 바꾸고 폐가를 사람이 드나드는 카페나 식당으로 만드는 일이다. 담장을 낮추거나 마당을 공유하고 '내 집'을 고치는 일은 도시재생의 가장 작은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한 발 앞선 사업 추진에 있어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주민 역할과 사후관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고 외형적 결과에 치중하면서 반대로 지역 균열을 야기한다는 비판도 있다.

윤전우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부족한 것을 쫒아가는 것은 책임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실행과정에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타이밍·특화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성수동 서울숲.

△'주민'이 있는가
서울이 던진 질문은 그래서 더 심오하다. 도시 재생의 출발에 있어 '주민'이 있는가를 묻는다. 지속성을 위해서는 오래 살 주민이 있어야 하고, 그들이 오래살 마음을 내고 오래 살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도모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의 모델로 우선 살피는 성수동의 특별함에는 이런 '과정'이 반영됐다.

성수동에는 지난 몇 년 사이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2012년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이듬해 서울그린트러스트, 다음해는 사회적 기업 더페어스토리가 차례로 입주했다. 낡은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을 사무실로 썼다. 반지하 주차장 공간이 농촌생산품 직거래 매장이 되고, '열린 정원'이 만들어졌다.

지역에 모인 사회적기업들이 동네축제도 열었다. '이웃이니까'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섞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그 중심에는 2005년 조성한 서울숲이 있다.

강남·동대문과 가까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았던 특성이 비영리단체와 사회적 기업을 끌어모았고, 도시를 움직이는 힘으로 연결됐다. 이 곳 역시 최근 개발 바람으로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허물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동구가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과 지속가능 발전 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만들고 대형건축물을 지을 때 안심상가를 기부채납 받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 기대해볼 부분이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각종 주택 사업이 총집결된 성북구 장위동의 사례도 살펴볼 만하다. 한 때 서울 최대 규모의 뉴타운으로 지정됐던 이 곳은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침체 일로를 걸었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을 추진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위원회 출범 후 첫 심의를 거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까지는 일단 행정 차원의 접근이다. 내부에서는 꾸준히 도시재생의 방향을 찾고 있다. 현장활동가가 센터장으로 배치된 첫 사례기도 하다. 처음에는 행정 주도로 여러 사업이 추진됐다. 노후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유치했지만 분양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를 맞춤형 사업으로 연결했다.

서울숲 인근에 조성된 상가.

그 결과 동네 곳곳에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추진하는 청년쉐어, 청년·신혼부부 주택 등은 물론이고 민간협동조합의 사회적 주택, 사회적기업의 토지임대부주택 등이 가동되고 있다. 공공주택의 빈 주차장을 공유주차장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구상중이다. 디자인경관 사업과 태양광·빗물을 활용하는 에너지자립사업 등을 유도해 주거 개선과 접목하고 있기도 하다. 담장을 낮추거나 없애는 것으로 골목공간을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박학용 장위도시재생센터장은 "이 곳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했던 데 따른 학습효과가 큰 지역이다. 주민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진행하기 어렵다"며 "지역에 필요한 것을 찾아 활용하자는 것이 접목했을 뿐 아직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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