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교(전 4·3평화재단 이사장·전 언론인)

이문교(전 4·3평화재단 이사장·전 언론인)

<Ⅰ>
삭풍이 휘몰아치는 설한의 계절, 사옥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78일 동안 '5공 청산'을 절규했던 '제주참언론동지회'. 그들의 '참 언론'에 대한 열정을 잊을 수 없다. 참언론동지회는 제민일보의 모태이다. 전신 제주신문에 몸담았던 회원 113명은 과거의 언론 행태를 참회하며 자성으로부터 새로운 민주언론의 출범을 선언했다(1990.1.29).

"우리는 지켜야 할 윤리의 기본을 '진실에 대한 충성'으로 확인하고, ...언론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거나 개인 명예를 내세우기만 하는 사이비 언론에 굴종하기보다 진실한 언론을 위해 신명을 바치기를 선택한다"(창립 선언문).

이 선언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가 언론에 요구하는 불문률의 정신이다. 당시 제민 창간에는 열화같은 국민적인 호응이 있었고, 공개 주주 모집에 2천 753명이 참여하여 민주언론의 출범을 성원했다. 

제민은 창간 의지를 살려 신선한 기획과 탐사보도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반 세기 동안 제주민들에게 빨갱이 형틀을 씌웠던 4·3의 진상을 밝혀낸 '4·3을 말한다'의 보도(456회)는 정부가 발행한 ≪4·3진상보고서≫의 실증 자료가 되었다.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군사 독재정부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언론인들의 '자유언론 실천 선언'(1974). '언론제작 거부 투쟁'(1980), '보도지침 폭로'(1985)로 이어진 자유언론 정신은 제민 창간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Ⅱ>
이제 30년의 변곡점이다. 창간 정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의 본분을 잊고 스스로 권력화하거나 기득권과 결탁해 여론을 호도한 참 언론 정신의 배신은 없었는지. 민중의 아픔을 살피는 시각 확장을 외면한 채 자사 이익을 위한 관변 홍보나 왜곡 보도는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1997년 영국의 지방 신문인 '컨트리 라이프'는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여 1897년 1월 8일자 창간호 신문의 사본을 독자들에게 다시 배부했다. 창간 정신을 재확인하고 독자들에게 창간 정신의 전승을 확인시키기 위한 자기 검증이었다. '컨트리 라이프'는 또 하나의 창간 기념 사업으로 ≪2097년의 국가의 미래상≫을 출판했다. 창간 이후 200년에 걸친 과거·현재·미래를 배합한 이 출판은 언론의 창의적인 아젠다를 설정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해외의 한 지방신문이 유용한 의제 설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지나칠 수 없는 본보기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신문기사 이용률은 57%이다(≪신문기사 이용자 특성 분석 보고서≫ 2019). 이 조사 결과에서 유념할 것은 기사의 이용을 종이신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용한다는 응답자가 77%에 이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조사는 신문사의 경영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로 참고할 만하다. 

<Ⅲ>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분명 변화할 것이다. 

그 변화를 제민이 읽어내야 한다. 특히 지역경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우선 100세 시대다. 정년퇴직 후 80세까지 20년간 무엇을 할 것인지 언론이 고민해야 한다. 이 시기에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면 활기찬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친환경친화적인 건강경제나 여행, 사회교육 등 삶에 투자하는 시간경제의 해법도 시대의 과제이다. 

또 하나,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제민공동체'는 언론의 본령인 '진실에의 충성'을 항상 가슴에 품고 지키기를 바란다. 미국 백악관을 40년 동안 출입한 UPI의 8순 여기자 헬렌 토머스는 언론인들에게 "진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권한다. "어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우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기자들에게 가능하면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와 국익에 봉사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2000).

헬렌의 충고처럼 언론인이라는 신분에 대한 자만심 대신에 겸허한 태도로 진실에 접근하는 다짐이 창간 30주년의 기념사가 되었으면 한다. 제민 창간 30주년,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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