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화창한 봄 날씨를 만끽하며 미술관 옆 숲속을 거닐다 기괴한 형상을 마주하곤 질겁을 한다. 헐벗은 사람의 형상들이 피를 흘리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조각상들이다. 대부분이 고개를 숙인 채 등과 가슴, 다리에 폐기물과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이승수 작가의 작품들이다. "제주현대미술관이 처음 기획한 장기 프로젝트로 미술관 주변 숲속을 무대로 예술작품과 자연이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새로운 전시형식이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2025 년까지 전시된다고 하니 전시물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본 첫 느낌은 섬뜩함이다. 포크레인이 나무의 뿌리를 긁어댈 때 나무는 이런 심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충격이 가해졌을 때의 무기력한 균열, 틈새 사이로 들어와 터전을 잡는 곤충들, 그 위로 생명력을 뻗어 나가는 이끼들. 이것이 생명 있는 것들의 생존방식이다. 숲은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균열이 생기고 있다. 나무의 터전이 좁아지고, 인위적인 설치물이 들어서고, 시시때때로 파헤쳐지고 있다. 그 틈새로 풀과 나무는 끊임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신을 짓밟고 있는 형상 위로 손을 뻗으며 오히려 헐벗은 영혼을 위무하고 있다. 으름덩굴꽃이 유독 푸르다.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손택수 시, 「나무의 수사학」 전문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덕분에 꽃이 피었다는 시적 논리에 무릎을 치게 된다.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은 도시가 나무에게 가르친 반어법이란다. 매일 땅이 들썩이는 불안의 시대에 나무는 불면의 날들을 참고 있으려니 치욕만 쌓일 뿐이다. 그래서 나무는 허구한 날 치욕으로 푸르다. 이렇게 지독한 환란의 시대에 어떻게 꽃이 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치욕을 넘어선 진정한 승리의 미학이다. 말이 승리이지 살아내는 건 숱한 죽음의 굴레를 뚫고 일어서는 일이다. 마치 영화 '파워 오브 더 원'의 서막에 울려 퍼지던 '레인메이커'의 구슬픈 선율과도 같다.
▲ 존 아빌드센 감독의 영화 <파워 오브 원>(1992) 한 장면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은 한 소년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의 악랄함과 아동과 흑인 인권, 음악과 자연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년 PK(사이몬 페톤 역)는 영국출신의 아프리카너인 아버지를 여의고 기숙학교에 보내진다. 그곳에서 독일인계 학생들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는다. 키가 큰 아이들은 PK에게 침을 뱉고, 머리에 오줌을 눈다. 학교폭력의 공포에 시달리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이때 유모는 줄루족 무당에게 부탁해 두려움을 없애는 의식을 치른다. 아버지를 죽게 한 코끼리마저 이젠 두렵지 않게 된다.
조그만 아이가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있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몇 명의 스승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유모를 비롯해 자연과 음악, 당나귀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준 독일인 교수 닥(아르민 뮈러 슈탈 역)과 권투를 가르쳐 준 흑인 기엘 피트(모건 프리먼 역)이다. 그들은 두려움을 없애는 영혼과 육체의 힘에 대해 가르쳐 준 이들이다. 닥 교수가 해준 말은 기억할 만하다.
"학교에서는 자료를 얻고 자연에서는 생각을 배워라. 질문을 하면 자연은 모든 해답을 준다. 그 다음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더불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두 사람에게서 배운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인종과 종교, 성을 차별하는 '분리주의'는 PK로 하여금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민권운동에 뛰어들기로 한다. 그는 우선, 흑인 민권운동이 성공하려면 흑인들 스스로 자기 상황에 대한 자각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육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닥 교수가 그에게 그랬듯이 그도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며 소중한 깨달음 하나를 더 얻는다. 의식의 깨어있음과 더불어 연대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자각이다. 그것은 어렸을 때 흑인들로부터 들은 '레인메이커' 노래의 교훈이기도 했다. 흑인들은 간절히 비를 기원하며 '레인메이커'를 불렀다. 바람이 간절하고 절박하면 순수한 열정이 샘솟는다고 그들은 믿었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도 든다. 하지만 논리가 현실을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레인메이커와 같은 절박한 순수성이 아닐는지. 물방울 하나 하나가 모이면 바윗덩어리 수천 개보다 힘이 셀 수 있다고 믿는 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4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