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이 피었다고, 빨리 와서 사진 찍으라고, 일요일 아침 일찍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침 일찍 전화가 온다는 건, 대체로 심부름시킬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팠을 때다. 그런데 꽃이 피었으니 빨리 와서 사진을 찍으란다. 바람불어 꽃 떨어지기 전에. 전화를 끊고, 한참을 어리둥절한 채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치매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서둘러 가보니 정말 장미꽃이 만개하여 느닷없는 갈마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꽃이 유난히도 붉다. 마당에 장미를 심은 10여 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붉게 피어난 꽃송이를 본 기억이 없다. 철마다 수시로 어머니집을 드나들었던 건 분명하고, 그때마다 장미꽃은 피어났을텐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어쩌면 꽃 피고 지는 것을 눈여겨 볼만큼의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니면 꽃피고 지는 것보다 더 급박하고 절실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기억보다 망각을 선택할 만큼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되던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정호승 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부분

 

 지난 한 주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끝내 길을 돌아 추모행사에 가지 않았다. 마주보고 싶지 않은 미증유의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동생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 기억을 다시 불러세우며 알 수 없는 바다의 끝으로 나를 이끈다. 마치 소금인형이 바다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차라리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싶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람소리마저 두렵고, 고양이 울음소리 하나에도 두 귀를 바짝 세우게 된다. 내가 이럴진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어떨까 싶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에 원망감이 들 터인데,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밤 12시 41분에
"자냐 아들?" 하고 문자를 보냈을 때
답장을 못한 게 아직도 제일 마음에 걸려요
4월이 가고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는데
엄마에게 답장을 보낼 수 없어 죄송해요.
(...)
저를 많이 사랑한 엄마
늘 이렇게 나를 사랑한 엄마
나도 정말 엄마를 사랑해요.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엄마 나야」 중에서

 

▲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기자랑>(2023) 중 한 장면

 모처럼 유쾌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나온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엄마들이 심리치유를 위한 연극반을 결성해 공연을 하러 다닌다는 소식은 이미 접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그들 연극팀이 선보이고자 연습하고 있는 '장기자랑'의 내용과 더불어 연습과정에서 생기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덤으로 얻은 게 있다면, 연습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꿈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 사라져버린 아이를 대신해 엄마가 그 꿈을 대신 이루는 듯한 다큐멘터리라고 평해도 좋을 듯하다. 
 자신의 아픔은 너무 오래 기억하려 하고, 타인의 아픔은 너무 빨리 잊어버려 사회적 공감대가 평행선을 걷게 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숱한 '나'들이 서로 붙잡을 수 없는 허공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헐벗은 영혼들은 비록 춥고 어두운 바위 틈에서 만났지만 내 아이보다 춥고 배고프랴 하는 심정으로 연극준비를 하다보니 유쾌함을 회복했다. 그들이 못다 이룬 꿈을 내가 이루게 되어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이미 오래 전에 편지는 왔으나 차마,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을 터이기도 하다. "아들아, 미안해. 조금 더 안아줄 걸 하는 후회를 많이 했어. 그 덕분에 평생 열일곱의 너를 사랑하게 될 줄이야.", "딸아 고마워. 니가 준 생일 선물 늦게서야 뜯어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고맙다고 하지 못한 게 제일 미안해. 노란 꽃무늬 스카프 이쁘더라. 이젠 그 스카프로 리본을 만들었어. 너를 기억할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내가 구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 무한 연대책임 지는 수밖에. 다같이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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