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방위각' 나로우주센터 대비 2배…산업 인프라 구축 등 과제 산적
지난 5월 25일 오후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가 주변을 압도하는 굉음과 함께 힘차게 하늘로 치솟았다. 이번 발사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1t급 위성을 쏘아 올린 국가가 됐다. 국가 주도의 우주산업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순간이지만, 민간 주도 우주산업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가 민간주도 우주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우주산업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선 정부 단위의 투자가 필연적이었지만,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민간 기업도 담대한 기술적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기획기사를 통해 제주도의 구체적인 계획과 과제를 짚어본다.
국내 최고의 지형적 입지 조건 충족
제주도는 우주센터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 센터는 발사체를 발사하는 과정에서 잔해물을 안전하게 낙하시켜야 하기 때문에 바다와 맞닿아 있어야 하고, 발사 궤적에 민가와 다른 나라 영토가 위치해서는 안된다. 제주도는 이러한 공역 제한이 적다는 강점을 가졌다.
전라남도 고흥에 나로우주센터라는 발사장이 있지만, 발사가 가능한 각도를 뜻하는 '발사 방위각'이 15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발사 방위각을 자랑한다. 무려 고흥의 두배 수준인 30도에 달한다. 방위각이 클수록 발사 성공률이 높아지고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지형적 입지는 매우 중요하다.
발사는 위도가 낮고 적도에 가까울수록 효율적이다. 위도가 낮을수록 동쪽으로 회전하는 지구의 자전 속도를 추가로 얻어 발사체가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적도 부근에서 발사하는 발사체는 1666㎞의 속도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적은 연료로도 목표한 속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저위도 지역에서 동쪽을 향해 발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시아 같은 위도가 아주 높은 나라 외 대부분의 나라들은 남쪽에 우주센터를 만들어 놓고 활용한다.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도는 적도와 가장 가까워 발사궤적 확보에 유리한 지리적 장점을 지녔다.
또한, 제주는 큰 산과 고층 건물이 없어 위성 신호를 방해하는 전파가 적기 때문에 도내 소재의 국가위성센터 등 우주 지상국을 운영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
위성 운영·정보 활용 산업육성 박차
지난 2월 1일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우주산업 육성 기본방향'을 발표하며, △위성데이터 활용 △지상국 서비스 △친환경 민간 소형 발사체 △우주 체험 △소형·큐브위성 개발을 '5대 제주형 우주경제 가치사슬'로 제시했다.
연구기관, 기업, 대학, 민간협의체가 참여하는 위성 운영·정보를 활용한 산업육성에 박차를 가해, 우주산업 생태계 선순환구조를 창출하고 기업·인재 육성을 견인한다는 방침이다.
위성정보 교육센터 건립도 추진한다. 학점 이수 프로그램(PBL)과 산학연 연계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해 위성 개발부터 운용 등 우주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과 취업·창업 연계를 실시한다. 또한, 민간 주도 우주체험관인 (가칭)스페이스 센터의 설립을 유치, 우주체험 관광의 산업화를 도모한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우주개발진흥법'에 따라 고흥, 대전, 사천 등 3곳을 '우주산업 핵심 클러스터'로 선정했다. 나로우주센터가 위치한 고흥은 '발사체 특화지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자리잡은 대전은 '연구.인재개발 특화지구', 한국형 NASA인 우주항공청 부지로 잠정 결정된 사천은 '위성제조 특화지구'다. 제주도 역시 위성데이터를 수신·처리하기 유리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위성 특화 단지 조성 기반 마련에 집중한다.
민간 기업 유치.저궤도 상용위성 주력
국가가 주도하는 나로우주센터는 민간기업이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상 국내에서 민간 우주 발사가 가능한 곳은 제주뿐이다. 제주도는 민간 기업들을 제주로 유치해 친환경·소형 발사체 개발, 실험 등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위성 지상국 서비스 기업의 코스닥 상장도 추진한다.
특히, 제주도는 각종 국가위성을 총괄 관리하는 국가위성운영센터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우주추적소 등 도내 우주 인프라를 바탕으로 '저궤도 상용위성' 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저궤도 위성통신'이란 지상으로부터 700~2000km의 궤도에 다수의 위성을 배치해 지상에서 휴대단말기로 통신시, 세계 어디서나 이동통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GMPCS(범세계 위성휴대통신서비스)시스템을 일컫는다.
국내에서 발사한 '천리안'과 같이 3만6000km 상공에 떠 있는 정지위성은 지상과 위성간의 전송거리가 매우 길어 시간 지연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궤도 위성은 낮은 고도에 있어 통화 지연이 발생하지 않아 지상망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세대 통신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 인력 양성 등 과제도 많아
전세계적으로 소형 위성 산업의 시장 규모는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이와 동시에 전국적인 유치경쟁 속, 제주도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위성정보를 활용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도내 소재의 국가위성운영센터와 각 산학연이 연계된 사업 발굴, 장기적인 계획 마련이 요구된다. 전문적인 교육 기관 유치 등 실질적인 인재를 양성해 각 산업체에 적기에 배치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도내에서 제주대학교 등 일부 기관이 위성 관련 연구를 하고 있지만, 시작 단계에 있는 산업을 활성화 시키려면 전문적으로 학문연구를 수행할 시설과 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초, 나로우주센터 후보지는 발사 방위각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제주도가 1위를 차지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와 같이 도민사회에서 전자파 우려 등 문제가 언제든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주민수용성 확보를 위한 대비도 중요하다.
김단형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팀장은 "본사는 발사체 제작 기업이다. 해상에서 로켓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액체형태의 LNG연료가 필요한데 제주에서 공급 가능한 기관은 한 곳 뿐이었고, 기관에 공급을 요청했지만 규정이 없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라며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타 민간기업들이 겪을 수 있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산업 인프라 구축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제주도와 규제 보완 등을 위한 협의를 진행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는 우주 기업 특성상 제조 및 시설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상황을 감안, 시설투자비용을 상향하는 방향의 조례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이와 같이 인센티브 제도가 잘 구축될 수록 민간 기업 유치에 용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도내에서 우주산업 기술을 활용해 직접 발사체와 위성을 개발하는 민간업체는 손에 꼽는다"라며 "제주도는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행정력을 집중해준다면 민간 우주 산업이 획기적인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위성운영센터는 정부가 국가 저궤도 인공위성을 통합운영하기 위해 구축한 시설로, 국내 위성 활용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는 왜 국내 우주산업의 중심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공연) 대전 본원을 두고 제주를 새로운 부지로 선정하게 됐을까. 국가위성운영센터에서 위성 운영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명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운영부장으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왜 제주로 오게 되었나
201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대전 본원에서 이뤄지던 국가 위성 관리 업무 운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저궤도 국가 위성을 통합 운영하기 위해 찾은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이에, 제주도는 가능 여부 의사를 타진해왔고,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구좌읍을 부지로 최종 선정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센터의 안테나 송.수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안전성을 문제로 제기했고,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도 해당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등 시작 단계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항공연과 제주도는 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전자파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된 연구결과, 논문 등을 통해 수차례 증명하는 자리를 마련, 그 결과 큰 마찰없이 센터 설립을 확정짓고 2022년 문을 열 수 있었다.
센터와 민간 기업 업무
국가위성운영센터는 국가 위성을 통합 운영.관리하며 위성정보 각 활용기관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제주도는 페리지 에어로 스페이스, 컨텍, SIIS, 아이옵스 등 우주 스타트업 4곳과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국가위성센터와 직접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은 컨텍, SIIS, 아이옵스 3곳이다.
컨텍은 대전과 제주 지상국 인근에 위치한 국가위성운영센터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중이다. SIIS와 아이옵스는 국가위성운영센터내 사무소를 두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대전에 있는 본사를 제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컨텍은 우주 위성정보를 수신·처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SIIS는 초고해상도 위성 영상을 수출 및 공급하고 있으며, 아이옵스는 위성관제 및 위성 영상처리, 위성 테스트 업무 등을 수행중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2021년 12월 민간 로켓 ‘블루웨일0.1호’를 발사한 경험을 토대로, 내년 말 해상발사를 시도하기 위해 제주도와 발사절차를 내부적으로 논의중이다. 발사 성공시 내년에는 상하단을 모두 합친 로켓으로 개발해 발사할 계획이다.
도내 민간우주산업 전망
국가위성운영센터는 제주대학교 공학혁신교육센터와 작년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며, 이미 제주대학교 물리교육전공 출신 인재 등을 아이옵스로 채용한 적이 있다. 지속해서 전문인력을 양성해 센터와 기업 등으로 배치, 도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전망이다.
페리지 같은 발사체 제작 기업이 실험을 하려면, 부품 제조부터 발사까지 참여해야 하는 위성제조기업들이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기업들을 유치, 민간 우주 산업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국내에서 발사하는 소형발사체도 2010~2020년에 비해 2020~2030년은 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제4차 국가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저궤도위성은 현재 4기에서 2030년 70여기까지 늘어나게 된다. 제주도가 민관 등과 협업 체계를 구축하면 위성특화지구에 선정될 가능성도 높아지며, 우주산업 생태계 선순환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