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남봉을 끼고 도는 안개는 금방이라도 마을을 덮칠 것 같다. 잘린 종려나무인 것 같은 형상이 파란 지붕 너머를 감시하고 있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듯한 누군가의 돌랭이밭이다. 그 안에는 수박, 호박, 가지, 고추가 자라고 있다. 나비 두 마리가 우주 전체를 비행하는 듯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라디오에서 나비와 나방의 차이를 설명하는 걸 들으며 온 터라 나비의 움직임을 한참이나 관찰해본다. "내려앉을 때는 날개를 접고, 날아오를 때는 날개를 편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설명이 처음 듣는 말처럼 신기했다. 흰 나비 두 마리는 서로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날기와 내려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잠깐 비가 멈춘 터라 나비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카메라를 들이댔으나 쉽게 잡히지 않는다.
낮은 파란 지붕이 너무 예뻐 마당을 기웃거리는데 담요를 뒤집어 쓴 경운기 한 대가 딱 버티고 있다. 마당 안에는 참깨, 고추, 콩이 자라고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자라는 고추는 대나무 가지가 받쳐주고 있다. 유독 고춧잎이 푸르고, 고추가 실하다. 집 주인의 부지런하고 알뜰한 성정이 느껴지는 마당이다. 누구네집 마당을 들어설 때 마다 느끼는 이 작은 떨림은 무엇일까? 집 없이 떠돌던 어린 시절, 내 말을 잘 들어주던 친구의 집 마당을 들어설 때도 이랬다. 고양이 걸음처럼 두려움을 가득 실은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으며 동정을 살핀다. "삼춘 무시거 햄수과?". 개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정일근 시, 「어머니의 못」 부분)
무심코 들어선 마당에서 만난 노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90년 인생 드라마 예고편을 다 들려주었다. "딸은 공일 돼사 와. 아덜은 조끄띠 살아.". 이집이나 저집이나 제주 할머니들의 사연은 비슷하다. 어디를 가나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을 가진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다. 시대의 대못에 여러 번 찔리고, 자식이라는 작은 못에 수십 번 찔리고, "이제는 데려갈 만도 한데 마음대로 죽지 못하고 살고 있다"신다.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 찾아오는 밥차와 버스 타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있어 다행이란다. 가장 그리운 건 젊었을 때 같이 살았던 '벗'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처음 듣는 말처럼 들리는 게 참 신기하다. 우중산책의 기운은 모든 언어에 낯섦을 선물한다.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은 노인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마무리를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병과 사회적 단절은 단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를 내면화하게 한다. 이때야말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면서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립다'와 '귀찮다'는 상반된 의미로 들리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딱 붙어있는 개념이다. 자신을 귀한 존재로 기억하고 있는 이가 보고 싶을면 '그립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 반대로 자신의 처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힘들게만 할 때는 귀찮다고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은심(나문희 역)과 금순(김영옥 역)은 오랜만에 만나 고향을 찾는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는 친구들, 오래된 추억 속에서 젊음을 잠시나마 만끽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사랑이 있었고,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고, 감정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늙어가는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이다. 거부할 수도 없다.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듯이 마무리도 아름답게 하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은 '소풍'처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빚진 채 전전긍긍하는 아들과 장애를 가진 채 평생 살아가야 하는 자식을 위해 재산도 정리하기로 한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훌훌 떠나기를 마음먹게 되니 한결 가벼워지는 이들의 발걸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영화는 한 편의 시처럼 마무리 된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귓가에 흐르는 듯하다. 귀가 시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