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13. 궤기 올레
여섯번째 올레 종류 추가
돌 때문에 그물 대신 낚기로
해방감보여주는 해저풍경도
올레란 토착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기억이자 향수일 것이다. 올레가 주는 의미와 어감은 금방 고향집의 이미지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연재 7회차에 제주올레 다섯 가지를, 집올레·바당올레·산담올레·당올레·용궁올레라고 했는데 이번에 다시 올레를 하나 더 추가하여, '궤기올레'를 여섯 번 째로 말하고자 한다.
△물고기가 다니는 올레
궤기는 괴기, 즉 고기의 제주어이다. 궤기에는 육상 동물인 돼지 궤기, 쉐궤기, 말궤기(몰퀘기) 등이 있고, 바다 동물에는 바릇(바다)궤기가 있다. 바닷궤기로는 매우 대중적인 물고기로 우럭, 다금바리, 갈치, 고등어, 방어, 벵어돔, 돌돔, 옥돔 등 무수히 많다. 궤기술은 낚시줄, 궤깃배는 어선을 말한다. 궤깃반은 잔치집이나 장례집의 돼지고기가 있는 쟁반의 음식 세트이다.
올레의 종류 여섯 번째 궤기올레는 말그대로 물고기가 자주 다니는 올레를 말한다. 궤기올레는 도두봉 서북쪽 해안에 여들이 많은데 매부리 닯은 바위가 있어서 '매부리여'라고 하고 그 여 안쪽에 있다. 응회암과 현무암 사이 혼재돼 있는 연안이 그곳이다. 원로 잠녀들은 그곳이 '소(沼)'인데 수심 3~4m 정도 바닥에 우묵하면서 평평한 여가 있고, 용암이 육지로부터 바닷쪽으로 흐르면서 호로갱(壕路坑) 같이 우묵하게 패인 골이 길게 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 사이가 수심이 더 깊어 고기들이 서식하기가 좋은 여건이어서 항상 물고기들이 집 골목처럼 왔다갔다하므로, 일명'궤기올레'라고 부른다고 했다. 1945년생(79세) 한 원로잠녀는 옛날에 거기에 물고기가 한꺼번에 몰려 들자 많이 잡은 적이 있다고 하여, 궤기올레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궤기올레는 지금도 여전히 소문난 낚시터가 되고 있다.
바다와 만나는 도두봉 밑의 해안가는 자연스럽게 파랑에 의한 파식이 일어나면서 해안이 깊어지고 물결이 수평으로 오름에 부딪치면, 화산쇄설물이나 응회암에는 크고 작은 노치(notch, 해식와)가 생기면서 오름 허리를 파고 들어간다.
궤기올레는 사실, 현무암 돌과 돌 사이, 용암터널, 클링커가 생기면서 만들어낸 용암 제방 이 바다 속 지형에 틈 구멍, 계곡, 바다절벽 등이 생기기도 하고, 또 편평한 여 가운데 골이 생겨서 수심도 깊고 주변에 바위들도 첩첩이 쌓인 곳이 되기도 한다. 궤기올레는 바위와 바위 사이가 어두우면서도 해초의 생장이 좋은 곳이 물고기들이 쉽게 오가는 길목이 되며, 사람이 오가는 올레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궤기올레는 돌 많은 제주의 해저지형에는 무수히 많다.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을 뿐이다.
△옛날의 바릇궤기들
물산(物産)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생산된다.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회에서는 생산력도 적게 나타나고 그만큼 생산물의 종류도 다양하지가 않다. 주로 자연에 기대어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식량이 늘 부족하여 기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고기잡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생존기술로 세대를 전승하며 이어져온 것에 원담 고기잡이와 고망낚시 방법이 있다.
중종 때 형조판서를 지내다 기묘사화를 당해, 금산에서 이배된 제주 유배인 충암 김정(金淨,1486~1521)은 사약 받기 전 약 14개월 동안 「제주풍토록」을 지었는데 출타가 제한된 귀양살이 처지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초 제주의 습속에 대해 매우 인상 깊은 기록을 남겼다. 이 풍토록에 바다에 대한 기록으로 해채(海菜:해조류)가 있는데 '미역, 우무, 청각' 만 있다 했고, 해족(海族:어패류)으로는 '생복(生鰒;활전복), 오징어, 옥돔, 갈치, 고등어' 등이 있다고 하였는데 생각보다 바다 생물이 적게 기록된 것은 유배인 신분이라는 활동의 제약 때문이었다.
돌 많은 환경은 바닷속의 생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산, 바다, 들 모두 돌밭이어서 그물을 쓸 수가 없다. 1653년 간행된 역사 지리지 「탐라지(耽羅志)」 에 "그물을 쓰지 않는다:산과 바다가 험하여 그물을 쓸 수 없으니 고기는 낚고, 짐승은 쏘아 잡는다."라고 기록됐다.
이 책에는 물고기를 포함, 바다 생물로는 전복, 황합(黃蛤:모시조개), 옥두어(玉頭魚:옥돔), 은구어(銀口魚:은어), 교어(鮫魚:상어), 도어(刀魚:갈치), 고도어(古刀魚:고등어), 행어(行魚:멸치), 문어(文魚), 망어(望魚), 생어(生魚)가 있다.
또, 1704년 이형상이 펴낸 「남환박물(南宦博物)」 에 물고기가 나오는데 "바다 밑은 모두가 돌이다. 또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갯가(개펄)가 없다. 어장(漁場)과 어망(魚網) 모두 보급된 바가 없다." 고 하고, 다만 낚시로 잡는 물고기에 대해서는 '상어, 고래(鯨魚), 문어, 망어, 멸치, 생어, 옥돔, 날치, 은, 숭어, 오징어 방어' 등이 있고, 다른 바다 생물로는 '전복(매우 크고 매우 많다), 해삼, 홍합, 빈주(진주), 대모(玳瑁:바다거북이), 조개, 앵무조개, 게, 백합(白蛤), 굴, 해달(海獺:바다수달), 가지(加之:모양은 수달과 같다)'가 있으며, 해조류로는 '미역, 청각, 황각(黃角), 우미(牛毛:천초)' 등이 있다. 이 바다생물 또한 이형상의 실재 제주에 있던 기간(부임:1702년 3월~출륙:1703년 6월)인 18개월 동안 기록된 것이다.
「남환박물」은 제주도 생활사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풍속 지리지이다. 16세기 중반 목사 이원진이 쓴 「탐라지(耽羅志)」가 제주 지리지의 처음이라면, 17세기 초 이형상이 쓴 「남환박물(南宦博物)」은 두 번 째에 해당한다. 이 풍속 지리지는 병와 이형상의 조카사위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가 편지에서 말하기를, "탐라 고적(古蹟)이 어떠한 지 그곳의 기이한 견문을 넓히고자 한다"는 이유 때문에, 병와는 공재에게 「남환박물」 1만3850여언을 지어 편지로 부쳐 주었다.
공재 윤두서는 이형상의 형 이형징(李衡徵, 1651~17150의 사위로, 병와에게는 조카사위가 된다. 조선 후기 선비화가로 서예, 회화, 천문, 지리, 금석학, 병가서(兵家書)에 해박했다. 조선 후기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과 더불어 3대 화가로 불린다. 공재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고,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다. 유품으로는 「고씨역대명화보」 등이 있고, 대표작품으로는 국보 제240호 '자화상', 보물 제481호 '백마도', 풍속화 '나물 캐는 여인' 등 다수가 전한다.
△제주해저풍경(濟州海底風景)을 그린 궤기올레도
민화에 물고기를 그린 그림으로 어해도(魚蟹圖)가 있다. 길상(吉祥)의 의미로 본다면, 집안을 건사하기 위한 다산, 다복의 의미가 들어있다. 또 물고기가 자유롭게 한가히 헤엄치는 모습에서 자아 해방의 기운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육지 어해도(魚蟹圖)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출세를 상징하여 강에서 뛰어오르는 잉어, 붕어 등이 있고, 부부 금슬을 나타내는 희어도(戱魚圖)의 두 마리 숭어, 관리의 청렴을 상징하는 게(蟹) 등 다양한 상징세계의 발랄함을 보여준다.
한편, 제주도 물고기 그림은 특별하다. 해저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부르길, 일명 '궤기올레도'라고 했는데 수묵 담채로 그려진 바다 속 물고기 풍경이다. 바다 속에 8자 모양의 아아용암(aa lava)이 기반암으로 솟아나 두 개의 구멍으로 누군가 망원경을 들여다보듯 그 너머에는 돔, 숭어 등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상하좌우로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몸(모자반)은 수목처럼 일어서서 나풀거리고, 떨어진 모자반 조각이 떠돌고 있다. 이 그림은 고요한 해저 풍경의 평화로운 시간을 머금고 있다. 어쩌면 토착민들이 궤기올레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