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14. 반혼대
우리의 몸과 우주의 원소 동일
영혼도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
고향언덕에 세운 슬픈 기념비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나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번은 없다'중에서)
△모두가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시간 앞에 무력하다. 우리의 삶이 어제의 일 같은데 벌써 머리에 서리가 내렸으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시간이 점점 과거가 돼가고, 기억이 가물거리다가 세대가 바뀌면 단단한 돌도 바스러져 영원히 잊힌다. 자신의 이름이 백 년을 가랴, 천년, 만년을 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면, 이미 존재했던 것은 다시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원은 없다. 만물은 서로 낳기도 하고, 서로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세상에 왔으니 누구나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망이 오래 살고 많이 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 그런가? 어떤 이의 죽음은 바위처럼 무겁고, 또 어떤 이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것을 만날까?
세상은 태초부터 변해왔다. 우리는 별에 살고 있으며 별을 보면서 동경한다. 우리 자신이 별이었고, 또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의 생성과 죽음을 알고 있다. 그 별에는 우리 몸에 있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다. 별이 죽으면 부서지는 잔해들이 우주 전체에 흩뿌려진다. 그렇게 우주 여기저기 흩어진 별의 먼지들이 매년 지구에 떨어지는 양이 4만 톤에 달한다. 하늘에서 온 것들이 땅을 만나 만물이 생장한다. 세상에 무엇인가 돼서 가고 오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땅, 그리고 별들까지 우주의 모든 것들은 여러 가지 원소들로 이루어졌다. 우주의 탄생과 함께 수소와 헬륨이 탄생했고, 태어난 별들 속에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가 만들어졌는데, 흥미롭게도 몸, 땅, 바닷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조성이 비슷하다. 특히 바닷물에는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탄소, 질소, 인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수소, 산소, 칼슘, 황, 소듐, 칼륨, 염소, 마그네슘은 우리 몸과 같이 포함되어 있다. 이 필수 다량 원소라고 부르는 11종의 원소는 우리 몸의 약 99.8%를 구성하고 있다. 거기에 0.2%를 추가하여 철, 불소, 규소, 구리, 망간, 아연, 루비듐, 스트론튬, 납 등 9종의 미량원소와 또 초 미량원소인 알루미늄, 카드뮴, 주석, 바륨, 수은, 셀레늄, 요오딘, 몰리브덴, 니켈, 붕소, 크롬, 비소, 코발트, 바나듐 등 14종이 우리의 생명 유지와 생체 리듬, 정상적인 생리기능을 도와주고 있다.
△혼백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섬
제주는 예로부터 바다의 경계를 살펴야 하는 해방지역(海防地域)으로써 황당선(荒唐船:불분명한 배, 異樣船이라고도 함)이 자주 출몰하므로 변방의 안보를 중요시하는 섬이다. 출항은 안에서 나가건 밖에서 오건 통제된다. 섬 제주에서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역이나 어로 활동을 위해서 바다로 자주 나가야 하고, 꼭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배의 크기나 동력이 바람에 의지하거나 열악한 기관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다를 건너는 속도가 느리고 관측 장비가 없어서 당장 내일의 일기(日氣) 예보조차 알 수가 없었고, 그날의 기후 조건에 따라 날씨를 판단해야 했으므로, 비록 날이 좋은 날 출항한다고 해도 수일에 걸쳐 바다 한복판에 있어야 하므로 그만큼 해난의 우려가 컸다.
내도동에 반혼대라는 특이한 이름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무역이나 조업차 어떤 해역에 이르러서 큰바람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를 당해 세워진 가슴 아픈 비석이다. 망자의 가족들은 슬프고 애통하여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언젠가는 고향을 떠난 사람의 영혼이라도 돌아오라는 표식을 세웠다.
반혼(返魂)이란 객지에서 표몰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망자의 영혼이라도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의미이며, 혹시라도 타지에서 영혼이 떠돌지 않게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招魂) 의식에 대한 표현이다. 제주도에서는 시신을 못 찾았을 때 무속 의례로 반혼 하는 혼을 부르고, 망자의 속옷이나 신발 같은 물품으로, 헛묘를 만들거나 비석 바로 뒤에 묻는다. 헛묘는 망자의 사망 장소에 따라 바다에서 돌아가면 바닷가에 묻기도 한다. 또는 슬픈 사연의 죽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애도를 표하는 마음에서 마을 가까이에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내도동 반혼대는 해당 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고인이 사망한 마을 명당터인 거북이 바위에 바다를 향해서 비석을 세운 것이다. 유교에서는 반장(返葬)이라고 하여, 타지(他地)에서 벼슬을 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경우, 해당 고을 관청이 경비를 조달해서 돌아가신 망자의 관구(棺柩)를 고향까지 운반해주어, 자신의 동네에서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또한 가족이 반장을 하는 일도 있다.
△반혼대(返魂臺)라는 이름의 비석
학생 양환생 반혼대(學生梁還生返魂臺)는 바다에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내도동 출신으로 내도동 동남쪽 언덕에 있는 곳에 일명 거북이 바위 좌측에 서 있다. 마을 원로에 의하면 이 반혼대는 앙아짓개 남쪽 엉덕에 거북이 바위가 있고, 거북이 바위 아래에는 용천수가 나오는데 거북이가 물 먹는 형국이라고 하여 전제주도지사 김창희 집안의 무덤을 거기에 쓰기도 했다. 그 앙아짓개를 감싸고 있는 도(아래아)리코지 동쪽에 구시물이라는 용천(湧泉)이 임수(臨水)의 상징이고, 한라산이 배산(背山)이 된다.
이 반혼대 또한 거북이 바위 지경에 있는 비석이다. 원로의 말이 양환생은 고기 잡으러 먼바다에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반혼대의 비문은 이렇다.
"학생 양환생은 통정대부 양명운(梁明雲)의 장손(長孫)으로 1915년(隆熙 乙酉) 11월 23일에 태어나 감찰 강승관(姜承官)의 큰딸인 강여옥(姜如玉)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창남, 창산, 딸 연화, 연선을 낳았다. 1938년(昭和戊寅) 10월 3일에 돌아가셨다. 오호라 애통하구나. 사업을 하기 위해(고기를 잡으러) 경상도 북쪽 바다(동해)에 이르렀는데 출항할 때는 날이 좋았으나 큰바람이 일어나서 갑자기 물에 빠지는 재난을 당하여,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부끄러움으로 슬픔이 복받쳐서 한을 달래고자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세웠다. 1940년 8월 5일 아들 창남이 삼가 빗돌을 세우다.
비석은 3단의 현무암 층계 위 시멘트로 마감한 좌대 위에 세워졌고, 비석의 크기는 높이 90×너비 34×두께 10㎝로 비양의 글씨는 보기 드물게 양각으로 새겼다. 석질은 조면암으로 만들었고, 비석 머리는 꽃 모양이며, 방향은 파도치는 북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 반혼대는 해난사고를 겪은 지 2년 뒤 아들이 세운 추모 비석으로, 아버지가 동해에 원양 조업(사업을 쫓아서)하러 갔다는 사실을 마을 원로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비석의 이름이 반혼대로 보아, 죽은 자를 기리는 기념비이며, 사람들은 이런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살아남은 자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안도감 아래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슬픔을 반감시키고,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희망이 환영(幻影, Illusion)을 심어줌으로써 현실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한다.
제주도민들은 바다를 온몸에 안고 살면서 어로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 아픈 사연들이 마을마다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평생을 희로애락과 같이 살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것을 비껴갈 수 없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다. 쉼보르스카는 말한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소유할 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