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행불인 유해는 어디에] 2. 옛 광주교도소

 

현재까지 총 5차례 발굴 조사…2019년 대규모 유해 발견
전체 262구 이 중 1구 연관…나머지 제주4·3 유전자 대조
고 양천종씨 골령골 이어 두 번째…"타 지역 확장 목소리"

제주4·3 당시 도민들은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은 뒤 전국 곳곳의 형무소로 끌려갔다. 2000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 2530명의 이름 등이 기재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가 발견되면서 이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제주4·3 희생자는 1948년 3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모두 181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한국전쟁 직후 자행된 집단 학살로 인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대부분 제주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행방불명됐다. 실제 181명의 판결문 등을 분석한 결과 무죄·집행유예·공소기각·면소판결을 받은 46명을 제외한 135명의 제주4·3 희생자가 현재까지도 유해가 수습되지 못한 상황이다.

△5·18기념재단 노력 지속

최근 5·18 희생자에 대한 광주형무소 암매장 추정지 유해 발굴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5·18기념재단을 주축으로 모두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뤄진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5·18기념재단은 5·18 당시 광주에 파견된 제3공수여단 관계자의 기록과 메모, 재소자 증언 등을 토대로 암매장지를 추정해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실제 당시 제3공수여단 본부 대장인 김모 중령이 작성한 진술조서 상 기록에는 "약 2시간에 걸쳐 전남대학교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해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또한 광주교도소에 수용됐던 최모씨는 "모범수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웠다"며 "당시 모범수 사이에서는 시신을 묻는 작업을 목격했다고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5·18기념재단은 2017년부터 제보 현장 조사를 거쳐 발굴 조사 계획을 세운 후 옛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2020년까지 발굴 조사를 추진했다.

현재 5·18민주화운동 단순 실종자는 4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군 발표에 따르면 광주교도소에서 27~28명이 사망했지만 수습된 시신은 11구로 16~17구의 시신이 사라진 상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진실

이러던 중 2019년 12월 옛 광주교도소 부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유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법무부에서 옛 광주교도소 일원에 솔로몬로파크 조성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무연고 이장 등 주변 정비를 실시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을 대규모로 수습한 것이다.

당초 2000년 6월 국과수에서 1차 유골 분류작업을 한 결과 발견된 유골은 261구로 추정한 이후 최종 262구로 결정했다. 해당 유골의 연령대는 어린이부터 60~70대 남녀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5·18 행방불명 신고자 가족의 277명 혈액에서 확보한 유전자와 대조한 결과 1구의 시신이 행방불명자와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5·18 가해자 등은 희생자의 암매장 사실을 부인하고 허위 사실로 왜곡했지만 진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70여년 만에 고향으로

옛 광주형무소에서 발견된 유해 중 제주4·3 행불인 신원도 나왔다.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4·3 행불인 유족과 DNA 감식 사업을 확장 추진한데 따른 것이다.

당시 광주형무소에서 발굴된 262구 중 1구를 제외한 261구에 대해 5·18 행불인으로 추정하고 감식을 진행했지만 관련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신원이 확인된 제주4·3 희생자는 고 양천종씨로 확인됐다. 타 지역에서 제주4·3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대전 골령골에 이어 두 번째다.

고 양천종씨는 양성홍 제주4·3 행방불명인 유족협의회장의 할아버지로 제주4·3 당시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한 이후 1948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귀순했다.

이후 주정 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한 뒤 풀려났지만 그해 7월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같은해 11월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안부 편지와 12월 4일 자로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처럼 광주형무소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으로 제주4·3 행불인 신원이 확인된 만큼 이를 더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광주형무소 재소자 학살 피해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당시 재소자와 간수, 군인 등에 따르면 광주형무소 터 외 산교동 인근 야산, 장구봉, 불공 고개, 도동고개, 한두재 등에서 학살했다는 내용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고 양천종씨 유해는 다음달 16일 광주에서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화장된다. 다음달 17일에는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돌아와 봉환식과 함께 신원 확인 보고회가 예정됐다. 양경익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제주4·3 유해 발굴 DNA 확보 관건"

 

인터뷰/차종수 5·18기념재단 부장
"제주4·3 행불인에 대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유족 등 DNA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부장은 제주4·3 유해 발굴과 관련해 이 같은 과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5·18 행불인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은 차종수 부장을 주축으로 이뤄졌으며 당시 희생자 유족 등 증언 채록은 물론 현재는 진상규명 등 과거사 왜곡 세력에 대응하고 있다.

차종수 부장은 "유해는 발굴되더라도 오래되면 유전자 채취가 어렵다"며 "더욱이 유족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고 일정 기간도 소요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DNA를 확보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5·18 암매장 추정지의 경우 당시 희생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추적할 수밖에 없다"며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부정확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이해 여러 증언에 대한 교차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해외에는 유해 발굴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제보를 토대로 암매장 추정지 등에 대한 좌표 확보 등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유해 발굴지를 좀 더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4·3 역시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역사 왜곡은 물론 유해 발굴 등 진상규명도 방해하고 있다"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제주4·3 관련 기관들이 뭉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익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