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화재단 2018년부터 준비3차례 심사 거쳐 7년만에 성공정부 탄압·은폐에 굴하지 않아전환기 정의 실천 세계적 모델유네스코도 가치·중요성 호평소장 기관으로서 세계화 주력△세계기록유산 추진 계기와 등재 과정은.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2012년부터 4·3기록물도 논의가 제기됐지만 본격적인 준비는 4·3 70주년인 2018년 시작됐다.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18년부터 기록물 수집, 정리 등의 자료 체계화 사업과 신청서 작성 등 차근차근 준비해왔다.하지만 당시 중국 난징학살의 등재에 일본이 반
제주4·3은 반세기 이상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던 어둠의 역사였다. 4·3을 글로 표현해도 범죄가 되던 시대의 한 가운데 제민일보가 있었다. 이념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절조차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제주4·3이었던 것이다.그럼에도 제민일보는 창간과 동시에 '4·3은 말한다'를 연재했다. 역경속에서도 4·3의 진실찾기를 위해 부단히도 애쓰고 있는 제주도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민일보는 1990년 6월 2일 창간호부터 '4·3은 말한다'를 10년간 연재하면서 4·3의 진실을 드러내는 한 축을 담당했다.△4·3을 세상
지난달 애월읍 봉성리서 유해 4구 수습…현재 모두 417구 달해도내 신원확인 143구 나머지 274구 수준…도외서 2구 고향으로채혈 독려 불구 2200여명 참여…"유전자 감식 사업 지속 노력"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의 이름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내·외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 작업을 지속 전개하면서다. 제주4·3 당시 도민들은 도내 곳곳에서 총살돼 암매장됐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 타 지역 형무소로 수감된 이후 연락이 두절된 경우도 상당수다. 실제 제주4·3평화공원 내 설
1950년 3500명 희생 추정…대구형무소 수감 도민 162명 포함총살되거나 기름에 태워지기도…2001년부터 발굴 410구 발견2008년 중단 지난해 가까스로 재개…다만 과제 산적 해결 시급경산시 평산동 코발트 광산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1930년대 채광을 시작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식민 수탈지로 1944년 폐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1950년 6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코발트 광산 지하 갱도 등에서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보도연맹원 1000명과 대구형무소 수감자 2500명 등 3500여명으로 추
대전 골령골 구덩이 8곳 1㎞ 달해…'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불려현재 1400여구 출토 올해도 20구 넘어…제주4·3 300명 수감 총살앞서 고 김한홍 첫 신원 확인…"시신이라도 찾고 싶다" 한목소리대전 골령골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일간 법적 절차 없이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해 암매장된 현장이다. 희생자만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000여명까지 추정된다. 이 가운데 대전형무소로 억울하게 끌려간 제주4·3 희생자는 물론 제주4·3과 관련 있는 여·순사건 희생자들 역시
현재까지 총 5차례 발굴 조사…2019년 대규모 유해 발견전체 262구 이 중 1구 연관…나머지 제주4·3 유전자 대조고 양천종씨 골령골 이어 두 번째…"타 지역 확장 목소리"제주4·3 당시 도민들은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은 뒤 전국 곳곳의 형무소로 끌려갔다. 2000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 2530명의 이름 등이 기재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가 발견되면서 이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제주4·3 희생자는 1948년 3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모두 181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억울한 옥살이
제주4·3 희생자 1만4738명…이 중 25% 3678명 행방불명도내·외 곳곳 암매장 추정…2006년~현재까지 414구 수습골령골·광주형무소 등 중점 추진…"채혈 참여 적극 강조"제주4·3 당시 초토화 작전 등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은 불타 없어졌으며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 도민들은 토벌대의 진압 작전 또는 무장대와의 충돌, 한국전쟁 이후 이뤄진 예비검속 등으로 인해 도내 곳곳에서 총살돼 암매장됐다. 게다가 전국 곳곳 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면서 현재까지도 유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