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행불인 유해는 어디에] 3. 대전 골령골

 

대전 골령골 구덩이 8곳 1㎞ 달해…'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불려
현재 1400여구 출토 올해도 20구 넘어…제주4·3 300명 수감 총살
앞서 고 김한홍 첫 신원 확인…"시신이라도 찾고 싶다" 한목소리

대전 골령골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일간 법적 절차 없이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해 암매장된 현장이다. 희생자만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000여명까지 추정된다. 이 가운데 대전형무소로 억울하게 끌려간 제주4·3 희생자는 물론 제주4·3과 관련 있는 여·순사건 희생자들 역시 이곳에서 총살됐다. 인근 지역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골령골 암매장지는 모두 8곳 구덩이다. 이를 모으면 약 1000m에 달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도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작업이 지속 추진되면서 제주4·3 행불인 신원 확인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잇따른 유해 참혹

진실화해위원회와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대전 골령골 학살지 2지점에서 지난달 개토제를 시작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기준 발견된 유해만 20구가 넘는다.

당시 구덩이 속 유해는 수십구가 한데 뒤엉켜 있는데다 각종 유류품까지 발견되면서 학살의 참혹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앞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유해 발굴 조사 결과 최소 1441구의 유해가 확인되기도 했다. 1지점과 2지점, 3지점, 5지점에서 유해가 출토됐다.

세부적으로 1지점에서 출토된 유골은 1307구다. 이어 2지점 80구, 3지점 29구, 5지점 5구 등이다. 2지점의 경우 개간과 물의 흐름 등에 의해 유해가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이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7년 34구를 시작으로 2015년 20구, 2020년 234구, 2021년 962구, 2022년 191구 등 지속 발견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발견된 유류품은 주로 단추류와 신발류, 총탄류 등이다. 이를 토대로 학살 시기와 학살 주체, 희생자 등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발굴단은 유해와 유류품 등을 모두 수습하고 인류학적 분석을 통한 정확한 감식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도외 첫 사례

이 가운데 대전 골령골에서 제주4·3 행불인 희생자 신원이 74년 만에 확인됐다. 지난해 제주4·3평화재단 등이 발굴 유해 '제주4·3 희생자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한 것으로 도외 지역에서 제주4·3 희생자 신원이 확인된 첫 사례다.

당시 신원이 확인된 제주4·3 희생자 유해는 고 김한홍씨다. 고 김한홍씨는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으로 제주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밭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혀 1949년 주정 공장수용소에 수용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영문도 모른 채 타지에서 70여년간 잠들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대전 골령골에서의 제주4·3 희생자 학살은 사실로 드러났다. 현재 1949년 2차 군법회의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제주4·3 희생자는 300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전원 징역 7년이 언도됐으며 언도일로부터 1년 뒤인 1950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 동안 골령골에서 총살됐다.

실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고 김한홍씨 역시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사실이 등재돼 있다.

 

△과제는 산적

반면 과제도 산적하다. 정부가 한국전쟁 직후 학살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인 산내 평화공원 사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대전 골령골에 2020년까지 전국 희생자 추모시설 등을 갖춘 산내 평화공원을 준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준공 시기가 올해까지로 늦춰졌다.

이마저도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가 늦어지면서 지금까지도 첫 삽을 뜨지도 못한 채 착공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1400여구의 유해가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봉안돼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4·3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300명의 희생자 유족은 제주4·3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유해 발굴'을 꼽았다.

제주4·3도민연대(대표 양동윤)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희생자 300명의 유족 등 26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인 실태 조사'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태 조사 결과 '제주4·3 해결 과정에서 시급히 수행해야 할 과제'에 대해 응답자 중 14.6%가 '제주4·3 유해 발굴 사업'을 꼽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한 결과에서도 "아버지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 등의 사연이 이어졌다.

이렇다 보니 제주4·3 행불인 유해 발굴에 대한 도내는 물론 도외 지역의 지속적인 사업과 함께 정부 등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양경익·김수환 기자

"유해 발굴 감식은 진실규명을 위한 토대"

 

인터뷰/박선주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객원 책임연구원(전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겸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

"제주4·3 등 과거사를 바로 알고 진실규명을 위한 토대는 발굴된 유해의 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가능하다"

박선주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객원 책임연구원(전 충북대학교 명예교수 겸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은 유해 발굴 사업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박선주 교수는 "유해는 찾고 발굴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 희생자들의 체질적인 특성을 찾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해 발굴의 목적은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인권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성별과 나이대, 유류품 등 인류학적 조사를 거쳐 사망원인과 가해자를 특정하고 밝혀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현대사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명예를 회복해 나가는 순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유해 발굴지의 경우 증언에 의존하다 보니 장소와 희생자의 수 등이 불명확하다"며 "실제 대전 골령골의 경우 영국 기자의 주장과 미국 보고서,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명확히 해야 유해 발굴 사업이 정확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발굴된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항온 항습시설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예산과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국내 관련 전문가도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익·김수환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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