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17. 형상적 인식

매가 자주 앉았던 매부리여
애기 업은 돌 비양도 호니토
구좌읍 벌러진여 등 눈길

자연은 형태를 창조한다. 자연은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사물들과 그 사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힘으로 형상과 균제미(均齊美·균형이 잡히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를 새겨 넣는다. -앙리 포시용 

△언어적 인간

우리의 생각은 마지막에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가 없다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은 혼돈 속에 그대로 있게 된다. 이럴 경우 세상에 없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하나의 이름들은 곧 언어가 표현한 것들이다. 우리는 그 이름을 가지고, 의미, 장소, 사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것이 일어난다. 언어가 없었다면 어떤 수많은 사실이 있어도 알지 못하고 지식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를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물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모든 사물은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그 사물들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사물들은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사물들은 멈추어 있거나, 변하거나, 흐르거나, 사라지거나, 나타나거나, 굳거나, 부서지거나, 분해된다. 이런 작용들은 유독 인간의 감각 작용을 통해 알 수 있고 언어를 통해서 분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우리는 대상에 대해 늘 형태적인 사유를 한다. 무엇일까? 왜 이런 모습이지? 어떻게 부를까? 그래서 그 대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그 표현은 매우 구체적이며, 사실적이며, 형상적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유체(流體)에 대해서도 어느 한순간의 형태를 고정해 그것의 실체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표현들이 때로는 사실이지만 때로는 착오를 일으킨다. 이런 과정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성적 판단이다. 지식을 축적하고, 사실들을 밝힘으로써 세계는 비로소 사실들의 총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발명한 이야기꾼이다. 인간이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 처음에는 소리를 단어로 만들었고, 단어는 문장으로, 다시 문장은 스토리가 됐다. 우리 세계는 온통 대상에 대한 사실들과 상상들의 이야기 집합체가 됐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행동이 기념비성이다. 인간은 기념하기를 좋아하고, 기념되기를 바란다. 인간이 유한적 존재임을 아는 까닭일까? 명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 인간의 사회적 영향에 의한 행동일 것이다.

인간은 기념하거나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형태를 자연과 예술에서 찾았다. 특히 자연에서 찾은 형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상징이나 비장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형태는 인간과 깊은 관련이 있음으로써 다시 태어난다. 때로는 과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무엇인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창조된다. 

△형태로 이루어진 세상

사람들은 이미 2500년 전부터 아무것도 무(無)로부터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크레티우스 말처럼, "자연은 각각의 것들을 다시금 그 자신의 알갱이로 해체한다는 것, 그래서 사물들은 결코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든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다시 만들며, 다른 것의 죽음을 통해서만 어떤 것이 다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단 생겨난 것은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형태는 입자로 이루어졌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아도 형태가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자연은 보이지 않는 알갱이로 일들을 처리한다."라고 해, 자연의 사물들이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원자론의 창시자는 기원전 440~430년전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두 사람이었다. 데모크리토스가 레우키포스의 철학사상 일부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창시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점은 놀랍게도 근대 과학의 관점과 흡사했으며, 그리스 사상의 과오를 피할 수가 있었다(B.러셀, 2009:116). 

지구는 크게 보아 하나의 둥근 형태이다. 강은 핏줄처럼 보일 것이고, 바다는 큰 연못이 된다. 산맥은 뼈대처럼 구조를 이룬다. 그 범위를 점점 축소하면 지역마다 각각의 형상들이 무수히 많다. 확대기를 제주에 맞출 때 화산섬이라는 사실로 인해 온통 거무스름한 현무암이 해안을 이룬다. 섬은 용암이 굳으면서 형성된 관계로 다른 사물들과 닮을 것들이 곳곳에 많다. 용암이 굳으면서 생긴 현무암 지대에서는 재미있는 돌의 형상이 많다. 

사람들은 곳곳의 형상들을 보면서, 이름을 짓는다. 흔히 지명 유래가 이름의 기원이 된다.  그것의 이름들은 시기가 매우 다양해 기록되지 않을 때 전승되는 이야기로 남는다. 

돌로 된 형상들의 이름에는 인간관계에서 유추한 것, 어떤 형상과 비슷한 것, 사람의 사연이 깃든 것, 역사적 장소, 생산의 터, 사건이 일어난 곳, 기물(器物)을 닮은 것, 자연 현상, 모양에 따라 붙여진 것 등이다. 

△자연적 형상들  

형상은 크게는 형태이며 구체적인 모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 형상, 동물 형상, 기물 형상, 장소, 생김새, 공간의 대소(大小), 위치, 모양 자체, 역사, 추상 형상 등이 있고, 다시 상징적인 형태로 유추된 형상, 의미가 부여된 형상 등이 있다. 또 지형에 따른 형태를 말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 형상으로는 형제들이 나란히 있다고 해 '성제(형제)섬'이라는 이름이 있고, 마치 아기를 업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애기업은 돌'이 있으며, 매부리처럼 생겼다고 하거나 매가 자주 와서 앉았던 돌을 '매부리여'나 '매바위'라고 한다, 가마우지가 잘 앉는 여라는 의미의 '옺앉인여', 어떤 사연이 있는 '정순이어멍 빌레', 조롱박처럼 생긴 용천을 '조랑물'이라 하고, 용이 나아간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 용머리 혹은 용진굴이라고 하거나, 오찬이라는 산적이 숨었다고 해 '오찬이 궤(굴)'라고 한다. 

형상은 사실과는 다르게 겉모양을 보고 이름이 명명된다. 사람들은 추상(抽象)의 인식보다 구상(具象)을 인식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구상과 추상은 한 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상은 추상으로 구성돼 있고, 추상 또한 구체적인 모양들로 구조화돼 있다. 추상이 구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위의 실체에서 보듯 작은 각형의 입자들이 커다란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탐라순력도」 '비양방록(飛揚放鹿)'은 매우 독특한 장면이다. 1702년 11월 11일 사슴을 생포해, 1703년 4월 28일 사슴을 비양도에 가서 방사(放飼)하는 장면이다. 비양도에 있는 오름 분화구에 붉은색으로 칠한 것은 그곳의 지질이 붉은 황살(스코리아)이라는 것을 말한다. 비양도는 「고려사」의 기록상 고려 목종 5년(1002), 목종 10년(1007)에 두 번 걸쳐 제주에 화산 폭발이 있어서 처음 비양도 설이 있었으나, 군산 설, 송악산 설의 이견이 제기되고, 또 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면서 화산 폭발 장소에 대해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 

비양도는 마치 야외 화산 박물관처럼 호니토(hornito)와 화산탄, 검은색과 붉은색 스코리아, 거대한 화산탄, 스패터(spatter)층이 곳곳에 있으며, 인근에 씨아치(sea arch)도 형성됐다. 특히 호니토가 만든 '애기업은 돌'은 마치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처럼 보여 민간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호니토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나오는 통로를 말한다. 땅속에서 올라오던 용암이 물을 만나 수증기성 폭발이 일어나면서 땅속에서 올라오며 촛농과도 같이 서서히 뱉어내듯이 쌓이면서 기둥처럼 만들어진 구조인데 사람들은 '아기 밴 돌'이라고도 부른다. 그 주변으로 30여 개의 호니토가 있다(제주연구원, 2020).  

도두동에 있는 '매부리여'는 말 그대로 모양이 매부리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여(礖) 이름이다. 일종의 투물러스(tumulus)로서 잠녀들의 물질 장소가 되기도 한다. 구좌읍의 '벌러진여' 또한 생긴 모양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물체가 그대로 온전치 못하고 속이 터져버린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이 세상에 있음으로써,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실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형상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므로 형태의 삶은 늘 인간의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