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의 섬 공식 지정 20주년
2005년 1월 19일 지정 및 선포
4·3평화공원 조성 사업 등 성과
대립·분열로 제주공동체 위협
새해 희망 발걸음 뗄 수 있어야

뼈아픈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제주에는 희망과 좌절,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제주는 생명과 화해 그리고 상생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신년 기획=전예린 기자.
뼈아픈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제주에는 희망과 좌절,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제주는 생명과 화해 그리고 상생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신년 기획=전예린 기자.

2025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한 지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2005년 세계평화의 섬 지정 이후 제주 사회는 평화 담론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에 담긴 평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는 '세계평화의 섬'이 과연 무엇인가를 둘러싼 상반된 논의가 공존하고 있다. 70여년 전 제주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냉전체제가 빚어낸 세계적인 사건 4·3을 경험했다. 뼈아픈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제주에는 희망과 좌절,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제주는 생명과 화해 그리고 상생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

△제주에서 평화의 의미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유네스코 헌장 서문의 첫 문장이다.

유네스코 헌장은 이렇게 평화의 시작과 끝을 '인간'에게서 찾고 있다. 

정부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이유는 이렇게 지방 수준에 국한된 도민들만의 독자적인 평화가 아닌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의미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세기 넘게 제주도민들을 빨간색으로 덧칠하며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던 '4·3'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 국가 원수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4·3에 대한 정부의 보고서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고, 국가를 대표해 제주도민과 유족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후 2005년 1월 19일 제주4·3의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계승, 제주를 세계평화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 선포했다.

△평화의 섬 지정과 성과

제주도는 지정 이후 세계평화의 섬 범도민실천협의회 구성과 운영 조례의 제정, 평화실천사업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평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제주평화연구원 개원, 제주국제평화센터 개관, 4·3평화공원 조성사업, 4·3유적지 복원사업, 제주포럼 정례화, 북한 감귤 보내기 운동 등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는 대부분 평화의 섬 지정 이후 2~3년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현재 일부 사업들은 중단되거나 추진 속도가 더디고, 활성화되지 않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이후 세계 평화의 섬 조성에 대한 정부 의지가 크게 줄어들고 남북관계 등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외부적인 요인과 함께 제주도의 추진 의지와 역량 부족 등 내부적인 요인도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갈등과 불통의 연속

지난해 제주도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선거 공약으로 내건 평화인권헌장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평화인권헌장 제정은 민선8기 제주도정 주요 공약 사업으로 4·3과 평화, 참여와 소통, 건강과 안전, 문화와 예술, 자연과 환경 등 도민 생활과 밀접한 보편적 기준과 권리, 이행 원칙 등을 담고 있다.

문제로 제기된 것은 2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다. 이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기독교 단체와 학부모단체는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부분 등을 문제 삼으며 연일 제주도청 앞에서 집회와 피켓 시위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 8년 전부터 시작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지지부진했던 제주시 동부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제주도는 2014년 월정리의 동부하수처리장 처리용량을 한 차례 증설하고 2017년 하루 1만2000㎥에서 2만4000㎥로 또다시 처리용량을 증설하기로 고시했다. 

해녀들은 하수처리장이 만들어지고 증설을 거듭하면서 바다가 죽어가고 채취되는 해산물도 급격하게 줄어들어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2022년 10월 일부 주민이 고시의 절차적 위법성 등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소송의 항소심 진행 도중 지난해 4월 집행정지가 인용되면서 공사가 재차 중단됐다.

이후 제주도가 항소심 본안에서 승소해 최근 공사가 재개됐다가 이번에 3번째 공사중지 사태를 맞게 됐다.

지난해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은 제주 환경보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공생과 상생의 상징, 제주

제주섬은 생명체든, 생태계든, 인간사회든, 모든 살아있는 체계들은 각각의 구성요소들끼리, 그리고 안팎의 또 다른 살아있는 체계들과 공생하고 상생하면서 살아간다.

뼈아픈 역사 제주4·3을 경험했고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수눌음과 계(契) 등의 공생과 상생의 문화를 전승해왔다. 그러기에 제주섬은 희망과 좌절, 가능성과 위험성이 상존한다.

제주는 '새 평화'의 이름을 걸고 빈곤, 차별, 억압, 오염 등과 같은 사회·경제·생태적 폐해들을 줄여가며 생명과 화해, 상생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 이익을 공통분모로 대립과 분열보다 대화로 타협하는 도민사회의 의식이 시급하다. 

제주 전통사회를 떠받치는 평화정신은 너와 내가 똑같음이 아니라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의 생각과 행동이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가 평화롭지 않으면 나도 평화로울 수 없다는 화해, 상생의 충만함을 담고 있다.

전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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