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던 지난 18일, 오전 8시에 시작하는 해안가 플로깅에 참여하기 위해 동이 트기 전, 버스를 타고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어영공원을 찾았다. 플로깅은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꽤 쌀쌀한 날씨에도 스무 명 가까운 시민들이 모였다. 1365 봉사 사이트나 SNS를 통해 신청한 시민들이었다. 봉사점수가 필요한 중학생들, 친구와 체험하러 온 청년들, 아들 데려다 주려고 왔다가 얼떨결에 함께 하는 아버지, 여행 온 가족들, 제주 거주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다.
절반 이상의 참여자들이 플로깅은 처음이라 했다. 플로깅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다.
제주 바닷가는 바위가 험한 곳이 많다. 어영공원 옆 해안가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안전을 위한 사전 안내에 임하는 시민들의 얼굴이 진지했다. 쓰레기를 담을 마대를 받아들고 각자가 준비해온 장갑을 끼고 아직 덜 깬 몸을 풀기 위해 공원 안에서 짧은 산책을 하고 바닷가로 내려가자 언덕에 위치한 어영공원에서는 보이지 않던 쓰레기 무더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은 바위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부서진 스티로폼 조각들이었다. 돌멩이,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물과 함께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과 뒤섞인 스티로폼 무더기는 줍기도 무척 힘들었다. 신발, 밥그릇, 생수병, 다양한 포장 용기와 생활용품들, 어업에 쓰이는 부표와 밧줄, 작고 귀여운 부표들까지. 종류도 양도 많다. 가이드가 사전 안내했던 대로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마대에 담고 부표처럼 부피가 큰 쓰레기는 마대 사용을 줄이기 위해 그대로 옮긴다.
바위틈 사이사이와 여기저기 가장 흔하게 보이는 생수병들은 속에 든 물은 따라내고 부피를 줄여 마대에 담고 안에 든 액체가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대로 담는다는 등의 사전 안내에 따라 한 곳 한 곳 쓰레기들을 주워 나갔다.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거친 현무암 바위틈 사이에 모인 페트병들을 밀어내기 위해 평소 안쓰던 근육들을 써가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더워지고 마대는 가득찼다. 수거한 쓰레기는 민간 수거 차량이 실어가기 좋은 위치까지 옮겨야한다. 보통은 차가 지나가는 도롯가에 쌓아놓는데 이날은 험한 바위들을 지나 언덕 위 어영공원까지 계단을 올라야 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때쯤 한 번 후회했을지 모른다. 주말 아침은 이불속이 안전해 라고. 하지만 초등학생 자매가 상당히 무거운 긴 플라스틱 파이프를 함께 들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해 속이 상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수거한 쓰레기들은 주변 풍경을 망가뜨리지 않게 가지런히 쌓고 부표들은 굴러다니지 않도록 잘 모았다. 참여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고 주워보니 확실히 느끼는 바가 다르다며 소감을 밝히는 청년도 있었다.
겨울이면 북서계절풍과 함께 밀려오는 해양 쓰레기로 제주 해안가 여기저기는 쓰레기 몸살을 앓는다. 지난해 제주시에서 수거된 약 5000t 규모의 해양폐기물의 절반이 겨울철에 수거되었다 할 만큼 쓰레기가 집중되는 때가 겨울이다. 늘어가는 해양 쓰레기로부터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름답지만 거친 제주 해안선을 돌보는 위해 시민사회의 협력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겨보자. 멀리 보이는 눈 쌓인 한라산과 탁트인 하늘, 넘실대는 푸른 바닷가에서 수렵채취 본능을 깨우는 겨울 플로깅은 평소 안쓰던 근육을 사용하며 몸과 지구를 돌보는 건강한 겨울 레포츠로 만들어가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함께 보고 실천함으로써 건강한 세계 시민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