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36. 가파도 <4>

악풍과 싸워야 하는 민초
작은 섬 용천수 신기해
종교 든든한 믿는 구석

△누가 엘리트를 만드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는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다. 극히 정상적인 일상이었던 우리 삶 한가운데에 이상한 악풍이 덩어리로 일어나는 뭉뚱놀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자본주의 파시즘 무리가 뭉뚱놀이 돼 말 그대로 파도를 뭉쳐 조용한 섬에 연속적으로 달려드는 모양새다. 가파도처럼 해발고도가 20m 밖에 안 되는 변방의 구석진 섬이, 사람으로 말하면 돈도, 빽도 없고, 몸도 작은 체구여서 큰 바람이 불면 금방 파도에 쓸려버릴 것 같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끝까지 우리 공동체를 지켜낸 것이  잘난 엘리트들이 아니라 해맑은 민초들의 굳센 의지였으며,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노력은 놀랍게도 바람보다 빨리 누웠다가 일어서고, 또 강한 것들을 부드러움으로 받아 넘겨버리는 것이 어떤 회오리 바람도 아침 내내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파도 주위의 암초

이미 앞에서 가파도의 개경은 1842년 이원조 목사에 의해서 비롯됐다고 했다. 가파도에 방목한 흑우들이 모동장으로 옮겨지자 대정읍 상모리에 살던 고부 이씨, 하모리의 경주 김씨, 김해 김씨, 진주 강씨, 나주 나씨 등 40여 호가 처음 가파도에 들어가 개간을 시작했다. 이들은 가파도에서 안정적인 정착 환경을 갖추려고, 20년 동안 모슬포를 오가며 개경담을 쌓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1885년 일본 나가사키의 어민들이 가파도에 살면서 해산물을 잡아서  나가사키로 전복을 수송하기도 했다. 이때 일본인들에 의해 가파도와 우도, 비양도에 고구마가 처음 보급됐다. 

1923년 일본인 구로치타는 가파도에 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가파도는 본도에서 서남쪽으로 약 2해리(1해리:1850m)에 위치하는 편평한 작은 섬으로 섬 주위는 약 4㎞이며, 주민은 1백호이고, 해산물이나 고구마의 산지이다. 이 섬 부근에는 암초가 많고, 조류가 급해 예로 부터 많은 선박이 조난 당한 일이 있었다. 1895년(메이지 28)의 남양환 침몰, 1910년 영국 기함 베트폴드호(9500t) 침몰 등으로 항해자들을 떨게 하고 있다" 

가파도 주위에는 크고 작은 암초들이 많은데 가파도 서쪽에 과부탄(이 홀어미 섬 북단에 부딪혀 베트폴드호가 침몰했다)이 있고, 인근에 광포탄(수심 3.16m), 옹포탄(수심 2.7m), 남양탄(수심 1.2m), 도농탄 등이 남북으로 연달아 물속에 숨어 있다. 

가파도의 기후는 해양성기후로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봄에는 동남풍이 불며 짙은 안개가 끼어 바다 이용에 불리하다. 여름에는 동남풍이 불며 태풍이 5, 6개씩 불어 어로작업이 부진하다. 가을에는 북풍이 불며 바다 이용에 제일 좋은 계절이다. 겨울에는 서북풍이 불어 해상 작업에 전적으로 불리해 휴업에 들어간다(우락기, 1965). 

△가파도의 물과 포구

가파도는 매우 특이한 섬임에 틀림이 없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인데도 용천수로 식수를 썼으니 매우 신기한 일이다. 빗물을 받아서 쓰는 우도나 비양도와 달리 ᄃᆞᆫ물이 나오는 것이다. 용천수로는 하동 포구에 있는 동항개물이 있어, 하루에 다섯 드럼통 정도 솟아나 1980년경까지 상동 사람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큰 응징물'은 가파도 해안에 있는 물로 '응징이'는 조그만 바가지를 뜻하는 제주어이며, 해안가에 바가지 모양으로 팬 곳에서 솟아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선물'도 용천수인데 '살아있는 물'을 뜻하는 산물의 변음된 이름이며, 신성시 여겨 어부나 잠녀들의 작업이 잘되도록 천제를 지낼 때 사용했다고 한다. '냇골챙이물'은 비가 오면 밭고랑처럼 골이 패에서 흐르는 물을 빗댄 말이다. '물앞의 물' 이라는 용천도 있다. 'ᄃᆞᆫ물깍'은 해수처럼 짠물에 반대되는 샘을 일컫는 말로 하동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했으며, 제일 동쪽에 있는 물이라는 말이다. 또 '큰물깍', '가운데 물통' 등 거리, 위치에 따라 부르는 물들이 있다. 

가파도의 포구는 2개인데 계절의 바람과 물때에 따라 이용된다. 가파도 북쪽 상동에 자리 잡은 'ᄆᆞ시리' 포구와 가파도 정남 쪽에 자리잡은 항개 포구가 그것이다. ᄆᆞ시리는 가파도 최초의 포구이며, 모슬포와 가장 가까운 포구지만 지금은 하동의 항개가 주요 관문이 되고 있다. 
 
△가파도의 당

어떤 감각 대상을 믿는다는 것은 공포에 대한 생존 전략의 하나이다. 섬인 가파도에서 가장 큰 공포는 바람, 파도, 바깥에서 오는 궂은 것들(표착자, 시신, 이양선, 상어)이다. 그래서 개경 초기에 우선 당을 세우는 것이다. 당은 가파도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며, 이로써 어떤 환경에서라도 의지할 주체가 생겨서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종교적 행위란 그 근원이 비슷하며, 소위 '믿는 구석'에 대한 의례를 통해 위험한 터부를 이길 수 있게 한다. 

가파도당은 가지 갈라온 당이다. 어느 곳의 근원이 되는 같은 신을 모셨다는 말이다. 새로운 장소에 당을 설립하려면 당본초(당신본풀이)가 있어야 하는데 신앙 단골들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물질적이고 정신적, 육체적 업적으로서의 내력이 있어야 한다. 일종의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원래 본향당에서 나누어 온 물품일 수 있는데 돌(신석)이나 물색지전(천, 지전), 아니면 당의 스타일을 가지고 와야 한다. 또 정신적인 것으로는 분당하는 내력의 본풀이가 있어야 하며 본당의 신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기도 한다. 육체적인 요소로서는 신의 사건 내력이나 무구(연물)를 당신(堂神)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진성기, 2004).

상동할망당은 '매부리당'이라고 하며 모슬포 방향으로 '마시리 포구' 좌측에 봉긋한 투물러스 위에다가 먹돌 겹담으로 당 우잣을 쌓았다. 먹돌로 만든 궤 안에 삼색물색 지전과 멩씰(명실) 등을 신체로 모시고 있다. 상동 어부와 잠녀들을 지켜주는 해신당이며, 당신은 모슬포 하모리 문수물당에서 가지 갈라와서 모시고 있는 돈지하르방과 돈지할망이다. 이 당에 갈 때는 메3기, 돼지고기, 멩씰 등을 준비해, 정월과 6월에, 그리고 8월에 택일해 간다. 제일은 매달 7일이며, 2년마다 하동 당과 함께 영등굿을 한다. 메부리당 본풀이는 제주도 무속 분야 최고 권위자인 진성기 선생이 채록을 했다. 

삼천백매 문수물 신도본향/독산이물(동산이물:송악산 마을:필자주) 개당할망 일뤠중저/섯산이물(동일리 앞바르의 물:필자주) 서낭당 일뤠중저/가파리 매부리 신도본향/토지관이 좌정하기는 올해가 일백이십년/사해용왕 몸받은 신도본향 일뤠중저(상동 메부리당 본풀이).

가파도 하동포구 비스듬한 바위 언덕에 '황개당'이 있는데 이 당이 바로 뒷성 서낭당이다. 신체는 바윗돌이며 먹돌을 겹담으로 우잣을 두르고 물색과 지전을 걸었다. 상동에서 가지갈라간 당으로 당신은 같으며 어부와 잠녀를 지켜준다. 제일은 자손이 생기 맞은 날이다. 

뒷성할망 선앙당/상선 중선도 휘여받고/상ᄌᆞᆷ수 하ᄌᆞᆷ수도 휘여받고/용왕 하강/수 십개 몸 받은/어진 본도 조상/설연지후 구십육년/선앙허고 할망허고/ᄀᆞᇀ이 놀아서/일처 점서호야/만사대길허는 조상(하동 뒷성 서낭당 본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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