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37. 가파도 <5> 왕돌에 대한 숭배 

바람의 불안과 공포 무의식의 터부 만들어
믿음과 의례 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신봉돼 
화강암에 나타나는 구상풍화와 타포니 신기

△바람은 불안과 공포의 원인

바람이 가장 먼저 쓸고 지나가는 최남단 마라도 뒷섬 가파도는 바람을 가장 무서워하는 섬이다. 환경이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파도의 지리학적인 조건이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그 불안은 곧 공포의 관념으로 변한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커져서 섬을 집어삼킬 듯하고 바다를 본업으로 삼는 가파도 사람들은, 바로 공포의 바람이 되는 것이다. 바람이야말로 모든 불행이 시작이었다. 인간의 정서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나오며, 그것의 상황과 큰 관련을 갖는다.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현실에 처한 상태에 즉각 반응하므로 현실적인 위협의 대상에게 공포감과 더불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바람의 공포는 단단한 돌을 만나게 되더라도 끄떡하지 않으므로 곧 신봉의 대상이 되었다. 무겁고 단단한 돌이야말로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파도가 쳐도 안전한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소위 왕돌은 신성한 것으로 숭배된다. 그러므로 왕돌에는 바람의 터부가 있다. 

뒤르켐은 모든 종교적인 믿음에는 그것이 단순하건 복잡하건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으로 분류하며, 성과 속의 관계로 표상된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성스러운 사물들, 즉 구별되고 금지된 사물들과 관련된 믿음과 의례가 결합된 체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종교적인 "믿음과 의례는 한 사회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신봉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통합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는 현실적 상황의 산물이다. 미쳐 자연의 원리나 현상을 모른 채 살아가던 전근대 사회에는 무속에 애니미즘 사상이 스며있다. 종교의 원초적인 개념이 영혼에서 비롯되므로, 모든 자연 사물에 이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숭배 관념이 생기고 마침내 그 사물은 한 사회의 터부로 변한다. 가파도의 까마귀돌, 고냉이(고양이)돌, 개염주리(개미)왕돌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돌의 형상에는 미미하지만 토템적인 요소도 결합해 있다. 토템은 한 집단의 자긍심을 주는 신성함의 상징이 된다.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한 사회에 이롭다면 거룩한 존재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파도의 터부는 가장 위협적인 요소인 바람이 중심이다.      

가파도는 섬 전체가 해발고도가 20m 미만이므로 태풍이 부는 날이면 섬을 덮칠 것 같아서 단지 농사를 위해서만 쌓은 것이 아니라, 생존의 울림이기도 한 공포의 무의식이 섬 둘레에 개경담을 쌓게 하고, 큰돌을 숭배케 한 것이다. 기후 환경이 직접적으로 심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가파도 왕돌의 터부

터부는 폴리네시아어이다. 라틴어 '거룩하다'라는 뜻의 사케르(sacer)와 같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터부의 의미는 상반되는 두 방향을 지향한다고 한다. 즉 한편으로는 '신성한(heilig)' '성스러워 다른(geweiht)'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 나쁜(unheimlich), 위험한, 금지된(vervoten), 부정한(unrein)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터부의 반대말은 노아(noa)인데, 이 말은 '보통의',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한'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터부라는 말에는 '범접하기 어렵다'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고, 실제로 이것이 바로 금제(禁制)와 제한이라는 의미가 드러나고 있다. 터부에 의한 심리적인 제한은 종교적, 혹은 도덕적 금제와는 다르고, 터부에 의한 제한은 신의 계율에 바탕을 둔 금제라기보다는 자기 기준에 따라 스스로 가한 금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터부를 범하면 범한 자가 터부가 된다. 그러나 터부를 범함으로써 발생하는 갖가지 위험은 속죄나 재계(齋戒) 의식을 통해서 다시 돌이갈 수 있다. 이 터부의 원천은 사람이나 정령에 내림하는 특별한 주술적  힘인데, 이 주술의 힘은 생명이 없는 대상을 매개물로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프로이트, 2017).

터부에는 영구적인 터부와 일시적인 터부 두 가지가 있는데 죽은 자나 이 죽은 자에 딸린 모든 것이 영구적인 터부이고, 또 일시적인 터부는 어떤 상태, 생리, 분만, 원정을 앞둔 전사의 심리상태, 고기잡이나 사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터부라는 말은 사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이나 장소, 혹은 사물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일시적인 어떤 상황일 수도 있다. 

모슬포에서는 개미를 '개염지'라고 하고, 가파도에서는 개엄이, 개엄주리라고 한다. 가파도 상동에 있는 포구의 해안의 개엄주리 코지에 개미를 닮은 큰 돌이 있어서 '개엄주리왕돌'이라고 부른다. 왕돌은 큰돌을 말하는 제주식 표현이다. 사람들은 형태를 구분할 때 자연의 형상이나 사건의 장소, 개인의 특별한 행위가 있는 장소 등으로 구분한다. 이를 테면, 넓은 곳 위를 말하는 '넙게우치(티)', 홀로 서 있는 바위섬인 '독개', 감태가 많이 자라 바위가 붉게 보인다고 하여 '홍암여', 바닷가 바위가 병풍쳐진 것 같다는 '펭풍덕', 볼락이 많이 잡힌다는 곶이라고 하여 '볼락코지', 소라가 많이 나는 곳인 '구제기 여'라는 곳이 있다. 말을 잡기 위해 말을 몰아넣은 목을 일러 'ᄆᆞᆯ잡은 목'이 있다. 

△까마귀돌

가파도에는 신성시하는 돌이 두 개가 있는데 이 까마귀돌과 ᄇᆞᄅᆞᆷ바위, 일명 큰 왕돌이 그것이다. 이 바위를 함부로 대하면 즉시 큰 바람이 불어 섬이 위험에 처한다고 한다. 까마귀돌은 가파도 하동 포구 앞 해안에 있는 돌로 까마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돌은 신성하므로 이 돌 위에 함부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돌의 금기를 위반했던 사례도 있었다. 1974년 8월 제주 해운국 직원들이 가파도에 와서 해안에 표시를 하기 위하여 사방 몇 곳에다가 흰색 페인트로 칠한 일이 있었고, 이때 해운국 직원들이 까마귀돌 위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해운국 직원들은 가파도를 떠나버린 후였지만 그후 3일 만에 태풍이 불어 어선이 뒤집히고, 농작물이 말라 죽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ᄇᆞᄅᆞᆷ바위

가파도 서북쪽 해안가 '아끈여'라는 바닷가에 왕돌이라고 부르는 큰돌이 있는데 이 돌 역시 돌 위에 사람이 올라가게 되면 큰 바람이 불어 닐씨가 나빠진다고 한다. 이가(李家) 소유의 해안가에 있는 돌이라고도 하여 '이개덕의 왕돌'이라고도 부른다. 4·3사건 때에도 이 돌에 올라가면 태풍이 분다고 했었다. 또 모슬포에서 놀러온 학생들이 이 왕돌 위에 올라가는 바람에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고 큰 파도가 일어나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가파도에서 바람이 불고 바다가 거칠어지면 누가 까마귀돌이나 이 왕돌에 누가 올라간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가파도 서북쪽 해안의 암석은 산방산 조면암이나 상효조면암의 산상과 유사하다. 산방산조면암은 약 80~90만년이라는 연대치를 갖고 있는 제주도 최고기의 용암으로써 산방산, 서귀포일대의 문섬, 범섬, 섶섬, 각시바위, 제지기 오름, 예촌망 등 소위 남부해안지질구조상에서 분출한 용암이다(제주문화예술재단문화재연구소, 2004). 가파도에서 쉽게 볼 수 특별한 풍화지형로는 구상풍화, 심층풍화, 핵석, 토르, 타포니, 역빈 등이다. 특히 구상풍화와 벌집 타포니는 화강암 지대에서나 볼 수 풍화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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