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38. 거욱

까마귀는 염라대왕의 심부름꾼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비보풍수
변하는 세상 사상의 영원 없어

△거욱이란
거욱은 거오기, 가마귀, 걱대, 거욱대, 탑, 답, 액답, 하르방, 메조제기(강영봉외, 2023:220) 육지에서 거리탑, 거리제탑, 가리제 잡숫는 탑(이필영,1994:303)이라고도 한다. 액을 막는 비보풍수나 복을 부르는 탑의 일종이다. 거욱에 대한 정의를 보면, 마을 변두리의 미곤방이 빈 곳에 쌓은 축조물로서 마을의 빈곤을 막기 위한 것(박용후, 1988:81), 거욱대는 돌이나 나무 따위를 사람 형상으로 깎아 세운 것(제주어사전,1995:29)이다. 

제주도의 까마귀는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으로 즉 신의 사자가 된다. 신화에 의하면 까마귀는 정기적으로 이승에 날라가 저승으로 데려올 사람들을 적은 적패지를 까옥 까옥 읽는다. 신화의 배경에는 제주 곳곳에 까마귀가 많기도 하고, 우는 소리가 어두워 생사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까마귀는 가냐귀, 가마귀가메(매)귀 라고 한다. 

제액초복(除厄招福), 즉 나쁜 것을 막고, 경제적인 이익이 모이기를 바라는 머들 형태의 돌무지를 제주인들은 탑, 또는 답이라고 불렀다. 인류의 여명기부터 인간의 마음은 자연현상의 공포를 하늘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면서 나쁜 것은 막고, 좋은 것을 바라는 종교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제액초복을 향한 바람은 공동체의 민간신앙으로 나타나서 마을의 안녕을 위한 비보풍수의 목적이 된다. 한편 이런 돌탑은 몽골에도 있는데 '어워', 또는 '오보'라고도 해, 제주의 '거욱'처럼 마을 경계에 돌탑을 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에 돌을 하나씩 던지고 세 번 돌면서 마음속으로 소망을 빈다. 

형태의 원리로 살펴보면, 인류 문명에 있어 탑의 원시적인 형태는 다시 말해 머들과 잣벡이며, 입석과 칠성눌, 거욱 또한 이 원시적인 자연사상의 결과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돌 무더기가 보이면 그 돌 위에 작은 돌을 올려 쌓는 습관이 있다. 암묵적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전이된 것이다.  

△돌탑, 흔해서 사랑받아   

머들은 밭 한가운데 경작지에서 돌이 나올 때마다 빌레 암반이 있는 곳에 돌을 쌓아두어 마치 돌탑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돌을 저장해두는 한 방법이다. 잣벡은 돌담 한쪽을 의지해 밭을 일굴 때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자갈들을 가지고서 무너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쌓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작은 성벽처럼 쌓여서 우람한 돌무더기가 된다. 오랜 시간과 노동력이 결합한 결과이다. 다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그 위에 길을 내면 비로소 잣질이 된다. 잣질은 바깥의 길에서 도(입구) 없는 안쪽 여러 곳의 밭을 농작물의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나오고, 자연의 사물들을 이용하면 자연적인 것처럼 이루어진다.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또 돌탑 모양으로 쌓은 칠성눌도 소망을 실은 탑의 모양이다. 칠성눌은 뱀신앙의 조형물로 집안의 부를 가져다주고 가족의 번성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물이다. 칠성눌은 오래된 제주 사람들의 민간신앙으로 여성이 바라는 중요한 것으로 안녕과 풍요이며, 그것이 인사의 목표가 된다. 인사는 처음에 '나'라는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가족, 마을, 국가적 의미로 확대되고 재난재해시 최종 방패가 돼 준다. 즉 닥치는 공포의 제거를 위해 집단무의식이 된 것이다.

비보풍수(裨補風水)란 풍수지리의 한 방편으로 읍성이나 마을, 또는 개인의 액을 막으려고 어떤 지술(지형을 이용한 처세)을 이용해 다가올 징후를 미리 대비하는 주술적인 방법이다. 민속학자 진성기 선생에 의하면, 비보 탑을 세울 때는 거기에 반드시 우금티나 헌 솥을 묻어놓고 그 위에 돌담을 사람 키 이상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 우금은 솥에 밥을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긁어모으라는 뜻이며, 솥을 묻는 것은 무서운 불에도 끄떡없이 이겨내어 재난을 처방해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처럼 거욱은 비보와 마을 풍수를 목적으로 세워진 돌탑이다. 풍수의 기본요소가 산, 물, 방위에 있고, 이것을 통해 하늘과 땅의 살아있는 기운을 개인이나 공동체가 받아서 안녕과 행복을 누리려는 것이 풍수의 본질이며, 비보풍수는 그 풍수의 본질이 어떤 이유로 흔들렸을 때 보조 수단을 이용해 마을 공동체의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방사의 술수이다. 진성기 선생에 의하면, 이 방사를 다시 두 가지로 말하는데 하나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경우의 '방사'의 의미와 이미 내 안에 들어온 새를 내치는 방쉬로서의 '방사'가 그것이다. 또 방쉬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악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음식과 물건에 붙은 사(邪)를 밖으로 내버리는 행위인 방쉬, 둘째, 신에 의지해 나쁜 것을 내쳐서 소원을 이루려는 방사로 말할 수 있다. 결국 방쉬의 의미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과 이미 내(우리) 안(몸·집·마을)에 자리잡은 나쁜 신 등 바깥과 내 안에 깃든 사악한 것을 막거나 내치는 이중적 행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욱의 한 기능을 빌린 '방사탑'이라는 신조어는 '외부로부터 나쁜 것이 오는, 비어 있어서 위험한' 방위를 비보하는 한 측면만을 형상화 시킨 용어로, 현대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전통'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전통적인 용어인 것 같지만 새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곶과 자왈의 독립적인 장소의 의미를 왜곡시켜 발음상 부르기 쉽게 구성한 곶자왈이라는 용어의 경우와 같다. 왜곡의 변형은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는 집행하는 권력의 다른 형태이기도 한데 어떤 목적이 있을 때 사업적 기획으로 왜곡된다. 마치 어떤 대상을 오래된 전통으로 둔갑시켜 근원의 의미를 무시해서라도 목적을 향해서만 질주하는 엘리트의 조작 행동에서 나온다. 

△거욱, 집단무의식의 소망  

거욱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인데 액을 막는 것,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것, 재산의 이득을 얻으려는 공동체 관념이다. 특히 전염병과 기아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개인의 염원은 공동체의 집단무의식으로 나타난다. 마을 공동체가 개인들의 심리적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저장고로 여길 때 신앙이 커지는데, 개인의 안녕과 더불어 마을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바로 돌탑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대표적인 거욱으로 몰래물 거욱이 있다. 몰래물은 제주시 구사수동(舊沙水洞)이다. 1978년 제주공항이 국제공항 승격으로 확장되면서 사수동 마을이 이주를 했다. 모래의 제주어가 몰래이다. 거욱 근처에 공항 철조망이 세워져 있고, 식당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부지와 가까이 붙어 있다. 몰래물 거욱은 현재 2기가 있는데 모두 북쪽을 향해 서 있다. 형태로 볼 때 높이는 약 4m 남짓, 탑은 북향으로 바라보고 있다. 남쪽(공항)에 마을이 있었다. 오방위로 바라보면, 두 개인 경우 동탑·서탑이 되겠다. 북쪽 바다를 바라보는 몰래물탑인 경우, 좌탑과 우탑으로 말할 수 있다. 좌탑은 상단에 새를 상징하는 돌이 없었으며(지금은 있다.), 우탑에는 두 개의 돌을 마주한 형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좌탑은 여자의 해당하는 음이고, 우탑은 남자에 해당하는 양으로, 음양의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남좌여우는 아니다. 거욱대 위에 세우는 새가 있으면 신의 사자인 까마귀로 관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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