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열대 기후 근접
21세기 말 겨울 '0일' 예측
생업 직결 1차산업·관광 영향
감귤 북상 경쟁력 저하 우려
수온 상승 어장도 '지각변동'
뚜렷했던 사계절이 희미해지고 있다. 기후 변화는 당연시 여기던 삶과 생태계를 바꿔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단 제주가 최일선으로 온난화에 잠식되고 있다. 1차 산업 비중이 큰 제주지역에서는 생업과도 직결된 문제다. 농·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농작물 수급 불안에 가격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달라진 현장들을 살펴보고, 새로운 환경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본다.
△겨울 사라질 섬
기후 온난화로 21세기 끝자락에는 제주가 '여름이 떠나지 않는 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상청이 공개한 '제주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가 지금처럼 배출될 경우 21세기 후반기(2081~2100년) 제주에서 겨울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겨울의 실종은 더운 날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전망보고서엔 같은 기간 여름이 1년의 60% 정도인 211일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열대야도 평균 103.3일로, 일년이 365일임을 감안하면 연중 3분의 1 이상의 날에 폭염이나 열대야를 겪는 셈이다.
실제 과거 10년(1924~1950년)과 최근 30년(1991~2020년)의 여름 길이를 비교해도 105일에서 128일로 23일 늘었다.
현재에도 제주지역은 역대급 연평균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실제 지난해 제주 연평균기온은 평년(16.1도)보다 무려 1.7도 높은 17.8도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年)로 기록됐다.
연강수량은 더 많아지고 강수의 강도도 강해졌다. 지난해 연강수량은 1928.9㎜로 평년 대비 106% 많았다. 연중 비가 가장 적은 2월에는 이례적으로 192.4㎜ 눈·비가 내려 8월보다 2배 많았다.
△머지않아 달라질 수 있는 풍경들
이상 기후는 제주의 생태환경과 관광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안에 조성된 탐방로가 해수면 상승 폭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면서 '한국의 기후변화 1번지'로 불리는 용머리 해안이 대표적이다. 탐방로 조성 이후 인근 해수면은 22.7㎝ 이상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1987년 처음 조성 당시에는 물에 잠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전해지나,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자 2008년 서귀포시는 탐방로 위에 한 층을 높여 석재 다리를 놓았다.
하지만 최근에 이 다리마저 물에 잠기는 날이 잦다. 안전을 위해 바닷물에 수몰될 때마다 탐방로를 통제하다 보니 연중 '종일 관람'이 가능한 날도 많지 않다. 2021년에는 단 6일, 2022년에는 9일이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추가적인 다리 설치도 쉽지 않아 해수면 상승이 지속되면,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관광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라산 고산지대도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 영향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고지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메말라 가는 반면, 비교적 지대가 낮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참나무겨우살이 서식지는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0년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는 절반 가까이 자취를 감췄다. 1918년 1168.4㏊ 면적이던 구상나무 숲은 2021년 606㏊로 48% 감소했다. 구상나무 감소 원인은 목재 이용과 방목지 활용 등 인위적인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나 온도 상승이라는 자연적인 요인이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바뀐 어장·재배지도
멀지 않은 미래에는 온난화 영향으로 제주의 어장·재배지도 또한 바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높은 제주지역은 도민들의 생업과도 직결된 문제다.
대표적으로 제주가 주산지인 감귤은 수년 새 기후변화로 남해안과 강원도 해안지역에서 재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따뜻해진 기후로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주에서만 재배됐던 황금향도 태안 등 남해안에서 자라게 된다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주는 육지부 운송을 위해 배 또는 항공기 이동이 불가피해 운송비와 배송시간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다른 제주 대표 작목인 월동채소도 피해를 입고 있다.
제주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월과 가을철 이례적으로 강수량이 많았던 지난해 무·양파·마늘·당근·양배추·브로콜리 모두 생육 단계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연초 폭설과 한파로 월동무에는 언피해가 발생했고, 잦은 강우와 이상 고온으로 조생양파는 분구율이 늘었다. 마늘은 벌마늘(2차 생장)이 증가했으며, 당근·브로콜리·양배추 등은 병해충 발생이 많았다.
강태완 제주농업기술원 채소연구팀장은 "이상 기온과 많은 비로 병충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추세"라며 "지난해의 경우 장마가 끝남과 동시에 가뭄으로 치달으면서 재배·수확시기가 달라지고, 가격 불확실성이 컸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밀한 환경제어를 위한 스마트팜 등 첨단 재배기술 확대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닷속 어장 지도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더워진 바다에 어종이 전체적으로 북상하는 가운데, 제주 바다에 아열대 어종이 늘어나면서 상어와 노무리입깃해파리 등 위험 어종의 출몰이 잦아졌고, 갯녹음 현상의 주범인 석회조류를 포함한 홍조류는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아열대 어종인 태평양 참다랑어는 2021년 제주에 등장한 이후 동해안까지 어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감태·미역 등 갈조류는 줄어드는 추세다. 어장 내 주요 먹이원인 갈조류의 감소는 오분자기와 전복 등 수산자원 고갈로 이어질 수 있어, 제주 해녀와 어민들의 근심도 늘고 있다.
고수온 여파는 양식장까지 번졌다. 고수온 발생일수가 71일로 최장 기간을 기록한 지난해 양식 광어는 221만마리가 폐사했으며, 넙치 역시 수백만 마리가 폐사했다.
양병규 제주해양수산연구원 연구사는 "기존 제주 바다에 살던 생물들이 수온 상승으로 멸종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전통적인 어장에서 조업을 하던 어민들도 환경 변화에 어장 이동을 새롭게 파악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양 연구사는 "기후와 해수면 온도가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면서 갈수록 어획량과 자원량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지난해와 올해만 봐도 자원량의 차이가 크다. 생태조사를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은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