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42. 제주 해안에 표착한 열강의 배 <3>

바빠지는 대정현 봉수군과 연군
공업용 연료 일본 석탄을 운반  
증기기관 등장 사라지는 수공 

△석탄을 운반선 러시아 상선

아시아의 근대는 청나라와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이 마치 늙은 사자를 향해서 달려드는 하이에나와 같았다. 조선의 최남단에 있는 섬 제주에도 서서히 세계 체제속으로 젖는 줄 모르게 잠기고 있었다. 19세기에 유독 화순포 해안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이양선을 감시하느라 긴장감이 돌았다. 용머리 언덕에 있는 저별봉수의 봉수군과 산방연대의 연군들은 연일 계속되는 근무로 인해 피로가 극에 달했지만 쉴 틈이 없었다. 1882년 3월 18일 오후 2시에 동남쪽 한 바다로부터 미변선이 아득하게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상사들은 망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며 불안한 마음에서 더욱 엄하게 다그쳤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고 그 미변선은 화순포 연안으로부터 3마장 거리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대정현감은 군사를 거느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해안으로 달려갔다. 6시가 되자 봄 저녁이어서 이미 바다는 어스름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결소리만 해변을 가고 오고, 그 배의 형체만 검은색으로 보일뿐 배의 구조나 사람의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배에 탓던 통역사의 보고서를 보니, 배의 구조는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으며, 돛대를 둘 꽂았는데 배 중앙에 연통이 있어서 화륜선 이라는 것을 알았고, 배 위의 사람의 모습은 변발에 검은 옷을 입거나, 독발에 모피옷을 입은 두 종류 사람들이 있었다. 

통역사가 배에 들어가 그 중 6명의 표도인들을 해안에 내리게 해 화순포에 표도한 이유를 물었다. "너희들은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사람이냐? "우리들은 대청국 영파부 영현사람 24명과 아라사(俄羅斯·러시아)국 사람 26명이다"라고 표도인이 말했다. 

그 배에는 모두 50명이 타고는 1882년 1월 14일 텐진포에서 출항해 일본 나가사키 섬에 가서 석탄을 사서 배에 싣고 3월 16일 텐진포로 돌아가는 길에 17일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나 18일 화순포에 표도했다. 이 배는 사선으로 러시아 사람 백나부의 상선이었고, 청나라와 러시아가 서로 교역하고 있어서 두 국가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텐진항은 두 나라가 교역하는 항구였다. 배에는 오로지 불을 피우는 석탄 밖에 없었다. 

표도한 러시아 상선의 크기는 길이 25파, 너비 1파반으로 칸막이는 12군데, 판옥이 두 곳에 있고, 바깥의 4면을 옻칠한 후 구리로 장식을 했다. 이들은 바람이 자면 즉시 따나기를 희망했는데, 이에 대정현감이 양식 40말, 생닭 50마리, 미역 10뭇을 주니 감사를 표시하고는 빠르게 서남항으로 사라졌다. 

△석탄은 증기기관의 연료 

화순포에 정박한 러시아 상선은 나가사키에서 석탄을 사고 오는 운반선이었다. 일본은 금·은·철·구리·유황·만호(曼瑚·석영의 한 가지)가 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를 중시하면서 농업과 어업도 살리고 은과 석탄을 캐는 광업과 방직 산업의 경제구조도 성장시키고 있었다. 20세기초 일본의 광업과 방적업은 철강, 석탄, 면직물 등의 산업을 일으켜 1, 2차세계대전의 전쟁물자 공급기반을 닦았다.  

사전에 의하며, 석탄은 천연자원으로 태고 때부터 식물질이 땅속 깊이 묻히어 오랫동안 지압과 지열을 받아 차츰 분해해 생긴, 타기 쉬운 퇴적암이다. 검은색 또는 검은 갈색을 띠며 탄소·산소·수소를 주성분으로 하는데 약간의 유황과 많은 양의 회분과 수분이 들어있다. 탄화 정도에 따라 토탄, 갈탄, 역청탄, 무연탄 따위로 나뉘며 연료 또는 화학공업 재료로 널리 쓰인다. 

석탄은 증기기관의 연료였다. 영국은 면직물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많은 산업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돼 늘어나는 노동력에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등장한 기술이 석탄과 증기기관의 만남이었다. 로버트 B. 마르크스의 말대로, 수많은 노동력을 공급하며 발전한 면직물 산업과 달리 석탄을 연료로해서 증기기관을 발전시킨 과정은 오로지 영국에서만 일어난 고유한 현상이었다. 석탄과 증기기관이 환상의 조합이 가능했던 이유는 런던 가까운 곳에 석탄광맥이 있었기 때문이다. 1800년대 영국은 세계 석탄 생산량의 90퍼센트에 달하는 1000만t의 석탄을 생산했고, 이 어마어마한 물량은 런던의 가정과 공장에서 모두 소비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석탄 소비가 증가하면서 마침내 석탄이 고갈되기에 이르렀는데 궁여지책이라고 했던가. 석탄을 찾으려고 더욱 땅을 깊이 팔수록 나오는 것은 석탄 채굴을 막는 지하수였다. 영국의 광산업자들은 마침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알아냈고, 증기로 피스톤을 움직이는 장비를 개발한 것이다. 증기기관은 1712년 토마스 뉴커먼이 최초로 발명했으나 1760년 경에 제임스 와트에 의해 새롭게 개선됐지만 연료 소비량이 많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만일 이 장비가 석탄이 풍부하다면 사용이 가능했고, 탄광이 적격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1712년부터 1800년대까지 2500대가 생산돼 광산을 중심으로 배치돼 사용됐다. 양의 반복은 새로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 무렵 증기기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등장으로 증기기관을 도로에 적용해 전동차를 움직인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철도가 건설됐고, 기관차가 등장할 수 있었다. 1830년 영국의 철로는 불과 수십 마일에 불과했던 것이 1840년에 4500마일을 넘어섰고, 1850년에는 2만마일로 증가했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듯이 석탄광산과 철도는 콤비가 돼 더 많은 석탄이 생산되면, 더 많은 광산과 철도를 필요로 하는 필요충분조건을 유지했다. 이 시기 철도 부설이 증각해 영국의 강철 생산량은 1830년에 68만t에서 1850년에는 225만t으로 늘어났고, 석탄 생산량은 1830년대 1500만t에서 1850년에 4억9000만t으로 증가했다.

이제는 증기기관의 효과가 면직물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1790년 새무얼 크림프턴이 발명한 '물정방기'는 증기기관을 활용한 장치로서 수작업 생산보다 무려 100배나 많은 실을 생산해냈다. 그간 실은 늘 물량공급이 블안정해서 인도와 중국의 수공업에 의존했었는데 그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면서 1820년대가 되면 영국에서는 물레작업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영국 광목은 매우 질이 좋아서 일본이 영국의 방직을 수익 모방해 일본산 광목을 만들었고, 후에 식민지 조선에 그 광목을 유통시켜 삼베와 무명, 모시 산업을 일거에 몰살시켰다. 

△19세기 아라사 

아라사(俄羅斯)는 러시아이다. 다름 이름으로 노국(露國)이라고 한다. 본래 서북쪽에 흩어져 있던 부족인데, 당나라(610~907)말에 류리크라는 사람이 처음 나라를 세웠으나 원나라(1271~1368) 태조가 멸망시켰고, 명나라(1368~1644) 초에 류리크 후손이 국가를 회복시켰다. 청나라 강희연간(1661~1722)에 이르러 크게 일어날 수 있어서 나라가 날로 강성해졌다. 러시아는 땅이 매우 넓어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이른다. 북위선 40터부터 70도까지이고, 동경선 20도부터 60도까지이며, 남북이 6000리이고, 동서가 4000리이며, 사방 10리 되는 곳이 12만5000개나 된다. 그 경계의 북쪽은 북방해이고, 동쪽은 아시아와 카스피 호수이며, 남쪽은 아시아와 오스트리아이고, 서쪽은 독일과 스웨덴이다. 러시아는 대부분 평원과 광야인데, 동남쪽은 많은 산이 에워싸고 있어, 큰 것은 우랄 산맥이고, 코카서스라고 하며, 또 큰 강이 셋이 있는데 볼가강, 오데사포, 드레프르 강이다(백남규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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