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도 44. 페이거니즘 <2>
종교의 기원 자연현상
실재에서 관념이 탄생
조각, 리얼리티를 구현
△영적 존재인 형상
오래된 신앙은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삼는 종교적 행위에서 비롯됐다. 과학이 미처 발달하지 못했던 원시시대는 자연현상들의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관념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니까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있는 하늘의 태양, 달, 별들과 자연 작용인 바람, 비, 번개, 천둥까지, 그리고 숲, 나무, 바위, 동물, 식물 등 땅에 있는 사물까지의 자연을 숭배했다. 또 한편에서는 살아있는 것과 죽음에 관련 있는 영적인 힘을 믿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영혼, 동물의 영(靈), 악마, 망령, 그리고 여러 신들을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자연현상과 인간보다는 더 우월하다고 느끼는 존재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애니미즘이라고 부른다.
이 애니미즘은 다신교에 많은 정령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종교의 기원에 있어서는 자연숭배에서 애니미즘이 나왔건, 아니면 애니미즘에서 자연숭배로 이어졌건 현대의 종교에서도 이들의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이런 애니미즘 그림자가 무속, 혹은 도교적 민간신앙, 불교에서도 발견된다. 무속의 해, 달, 암석, 물, 궤(동굴), 나무 숭배 등과 민간신앙에서의 뱀, 사슴, 남극성, 한라산신, 북두칠성, 용왕, 선왕, 희생제물, 인신 공양 등의 신화들이 전해온다.
토착 종교에서는 다신이 특징이다. 민간사회의 취향이 기댈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믿는 것처럼 신의 숫자도 그처럼 많다. 더욱이 생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공포에 매우 약하다.
△자연물로부터 나온 형상
인간이 형태를 발견한 것은 자연을 통해서였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1472)는 자연의 이미지와 유사성을 창조하려고 시도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어떻게 유례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마도 종종 나무 몸통이나 흙덩어리, 그리고 다른 비슷한 생명 없는 물체들에서 어떤 윤곽을 관찰했다. 약간의 수정과 더불어, 자연의 실제 모습과 아주 흡사한 무언가가 이 윤곽에서 드러나고 그래서 선과 평면을, 그들이 모방하고자 하는 특정의 물체와 일치하도록 수정하고 정교하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고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서 즐거움을 경험했다. 유사성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예상대로 결국 다음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즉 그들이 다루는 물체에서 절반의 이미지도 구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들이 원하는 유사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만약에 그들이 올바르고 잘 알려진 방법을 통해 이것을 객관적으로 찾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그들은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그들의 작품은 완벽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조각 단계인 자연물
허버트 리드는 형태가 사상보다 선행한다고 인식했다. "우리는 인체에 대한 감각의 반응을 형태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경험의 출발로 하는 것을 보고 있다.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입체성은 이미 하나의 조각적인 감각이다. 예술이 역사나 개인의 감각적 경험에서 점차 진보됨에 따라 인간은 형태를 사상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즉 형태를 정신으로 채우기 시작해 마침내 인간은 사상을 특별한 형태로 구체화하려고 시도했을 뿐 아니라 불확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을 창조해냈다. 즉 현실 세계를 예술적인 형태에서 인식하려 했다."
필자는 조각 이전의 단계인 자연물을 전조각단계로, 구체적인 표현단계를 조각의 단계로 구분한다. 전조각단계는 말 그대로 하나의 자연물을 이용해 어떤 믿음의 정신을 투사함으로써 신성(神性)을 강조한 상징물이 될 수 있었다. 포이에르바하의 말대로 종교는 그 자체로 극적임과 동시에 인격적이다. 곧 형상이 그 자체로 사실이 된다. 즉 숭배되는 자연석은 인간 정신으로 자신이 생긴 형태로 인해서 단순한 돌이 아니라 신비롭고 성스러운 지위를 얻게 된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그 돌이 무슨 의미로 어떻게 그 성스러운 장소의 주인공이 됐는지가 생겨난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신화가 만들어진다. 상징은 어떤 의미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정신세계이다. 그 상징에는 형태라는 형상, 즉 조각의 감각적인 인식이 배어있으며, 보이는 형태로써 모든 사물이 실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형태는 존재를 가르는 본질이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과거 또한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과거는 오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신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확정된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역사가라도, 현존했던 그 시간에서 일어난 그의 생각의 총체이다. 혹은 우리 선조라고 할 수 있는 과거 "원시 부족들이 행하던 수많은 주술적 의례들도 내 정신 속에서는 현재 드라마의 일부로서 자리한다."라고 베네데토 크로체는 말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역사는 지금 내 안에 살아 숨 쉰다. 그런 의미에서 늘 역사는 현재사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모든 개개인에게 각각의 색채로 남아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자기의 생각을 머금은 채 잠재돼 있으며, 그것을 언제라도 어떤 관점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현실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근원이 된다. 사람들의 아비투스와 세계관이 역사를 바라보는 판단의 기초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각단계
구체적인 형상을 목적에 맞게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조각단계에서는 상상적 신화를 눈앞 현실의 상태가 되도록 할 수 있다. 믿는 어떤 대상을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할 수 있으며, 이의 능력이 탁월할수록 신화는 현실처럼 다가온다. 상징이 실재가 되고, 신화적 의미가 깊은 공감으로 다가온다. 예술이 종교에서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숭고함과 장엄함, 기쁨과 슬픔을 아우를 수 있는 거룩한 감정을 유발하게 된다. 조각은 장소의 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 단순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 있음으로써 공간의 의미가 바뀌게 된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유명한 성소(聖所)들에는 조각, 회화예술의 뛰어난 공간 장식의 힘이 있다.
세계적인 걸작들이 유럽중심주의를 강화하는 이념에 이바지했다. 조각가, 화가, 작곡가, 서사가들의 작품이 하늘의 장엄을 파노라마처럼 보게 하고,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예술의 발달에 탁월한 후원자였다.
예술의 발달은 사회적 토대와 상부구조의 상호작용에 있다. 허버트 리드의 견해대로, 만들어진 것은,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능력 속에서 다시 새롭게 만들 관념이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도상(형상)이 사상(이념)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확실한 실재를 보여주는 구체적 조각단계와 달리, 상징적인 추상으로 보여주는 전조각단계 자연석에서 느끼는 감정은 매우 아리송한데, 이때의 감정은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신념을 갖게 하지 못한다. 대개의 원시종교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성물(聖物)들을 보더라도 미발달사회에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 현대의 변화된 사회로 이행함으로써 당대에 이르러서는 점점 실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어딘가 미숙한 아마추어리즘으로 전락함으로써 신자들을 재생산하지 못함으로써 소위 고등종교로 흡수된다. 종교도 폼생폼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