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제주특별자치도 공동 기획
축산악취 갈등 넘어 ‘상생의 길’을 찾다 1. 프롤로그
연간 90만t 이상 분뇨 쏟아져…갈등 심화 양상
설비·재정 투입 등 행정·농가 노력 불구 한계도
실제 작년 민원 최고치…해결 방안 양방향으로
제주 경제의 한 축인 양돈산업이 축산악취 문제로 중대한 기로에 섰다. 최근까지도 막대한 예산과 신기술이 투입됐지만 갈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술적 해법을 넘어 농가와 주민, 행정이 신뢰를 바탕으로 공존하는 ‘사회적 상생’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제민일보는 ‘상생’을 바탕으로 축산악취 해결에 구체적인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기술적 해법, 효과는 글쎄
제주 양돈산업은 지역경제를 이끄는 주축이지만 고질적인 악취 문제는 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 지 오래다.
이를 해결하고자 제주도는 기술적 해법을 도입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악취 저감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제주지역에는 지난해 말 기준 258개 양돈농가에서 51만9209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면서 하루 2600t 이상, 연간 90만t이 넘는 막대한 양의 분뇨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6.8%가 액비와 퇴비로 자원화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부숙 액비 살포와 특정 지역 집중 처리는 오히려 악취를 유발하고 지하수 오염 우려를 낳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물론 행정과 농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2018년 전국 최초로 59곳의 양돈장을 ‘악취관리 지역’으로 지정했고, 2019년 44곳, 2020년 28곳을 추가 지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 왔다.
또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악취 관제시스템 도입, 무창돈사 등 시설현대화 지원과 함께 가축분뇨 공공 처리시설 확충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올해도 제주도는 ‘가축분뇨 처리 및 냄새 저감’ 분야에만 287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총력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취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제주의 난제로 남아있다.
△신뢰 잃은 양돈산업
이처럼 문제 해결이 더딘 사이, 도민사회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축산악취 관련 민원이 잇따르면서다.
앞서 2017년 722건이던 축산악취 민원은 2018년 1500건, 2019년 1932건으로 폭증했다. 이후 2020년 1535건으로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2023년 1998건으로 다시 늘었고 지난해 10월에는 2208건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2018년 71건이었던 가축분뇨 및 악취 관련 행정처분 역시 2020년 189건으로 2.5배 이상 늘었으며, 이 중에는 폐쇄 명령 33건, 사용 중지 22건 등 강력한 처분도 포함됐다.
이처럼 일부 농가들의 관리 부실과 안일한 인식은 여전하면서 양돈산업이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는 도민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제민일보가 지난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원장 문만석)에 의뢰해 도민 성인 남녀 2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민 인식조사 결과 ‘제주 환경오염의 원인’에 대해 34.0%가 ‘가축분뇨’를 꼽았다.
그러면서 절반에 가까운 48.3%가 ‘가장 주요한 축산악취 발생원인’에 대해 ‘양돈장’을 지목하기도 했다.
△‘사회적 상생’ 모델을 향해
이에 따라 지역사회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행정과 농가 중심의 악취 해결 방식이 한계에 직면한 만큼 이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과거 한림읍 발전협의회가 ‘양돈분뇨악취 해결을 위한 지역공동체 사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내 양돈농가의 절반 가까이(47%)가 밀집해 매년 300건이 넘는 악취 민원이 발생했던 한림 지역에서, 주민들이 직접 나서 농가·행정과 소통하며 해결책을 모색한 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주민 주도형 상생 모델의 필요성은 제주도의 정책 방향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축산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양돈산업 지역주민 상생협력’ 사업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단순한 시설 지원을 넘어 농가와 주민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한 근본적인 갈등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술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뿌리 깊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행정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농가의 책임감 있는 투자, 주민의 신뢰와 참여라는 사회적 자본이 결합될 때 비로소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고기욱 기자
※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