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쿠폰 받은 기념으로 물회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흐뭇하고 여유로웠다. 지인네 밭에 들러 호박잎도 얻고 깻잎, 부추도 얻은 터라 더욱 그럴 것이다. 식사 중에 "이 더위에 누가 가장 힘들까?"라는 주제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뜨거운 불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야외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아스콘 작업하는 이들…, 등이 나열되다가 동석한 이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가는 길에 들러보자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따라가는 길은 익숙했다. 서귀포로 가기 위해서 늘 지나는 길이다. 30㎞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이 붙어 있어서 늘 불안했던 곳인데, 그곳에서 우회전을 하니 목적지의 집이 보였다. 덩굴식물이 집의 벽을 온통 둘러쌌고, 텃밭은 마른 풀밭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 놓인 빨래대는 녹슨 흔적이 있고, 야외화장실 지붕에는 정화조가 놓여 있어 사람 사는 집이 맞나 싶다. 

방충망 사이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정미야"라고 부르니 집안에서 한 여성이 나온다. "들어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약간 톤이 떠 있고 늦가을 바람소리가 났다. 웃니 아랫니 빠진 잇몸 사이로 발음이 새는 것이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는 선풍기가 있다며 해맑게 웃는다. 화장실이 불편했는데 주인이 안에다 만들어줬다며 들뜬 목소리로 대답한다. "집세는 연 180에 산다"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보탠다. 마침 옆집 할머니가 놀러 와 있어 긴 이야기는 못하고 나오는 길이 조금은 무거웠다. 고양이 한 마리라도 데려다 함께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데 고양이는 무슨'에서 초록불이 켜졌다.

나는 한 여자, 고양이 넷과 함께 살아
어느 날은 우리 모두 잘
지내.

어느 날 나는
한 고양이와
투닥투닥해.

어느 날은
두 고양이와
투닥투닥.

어느 날은
셋과 그래.

어느 날은 네 고양이 모두와
투닥투닥

여자와도 
투닥투닥

그럴 땐 눈 다섯 쌍이 
개 보듯 나를 쳐다봐.
(찰스 부코스키 시 「목사리를 차고」)

키득키득 웃으며 읽었던 시다. 다시 읽으니 참말로 슬픈 시다. "여자와도/투닥투닥/그럴 땐 눈 다섯 쌍이/개 보듯 나를 쳐다봐"에서 무너진다. 고양이와 투닥투닥하는 것은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과의 싸움은 이겨도 져도 상처받는 건 결국 자신이다. 그래도 그것이 생존의 방법이라면 피 흘리기를 불사해야 할 것이다. 대개는 내면의 성장을 위한 절차적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선택과 감정, 전후 맥락이 현재의 나를 말해주는 증거로 채택된다. 현재의 나와 연루된 과거는 모두 특정된 별건 범죄의 증거물임을 아무리 변론해봤자 속수무책이다. 나를 평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적 시선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 여성의 시신이 겨울 들판을 지나 개울가에 웅크려 누워 있다. 자살을 의심해볼 여지는 없다. 낮은 언덕에서 미끄러져 골절된 상태로 얼어 죽었거나 배곯아 죽었을 것이다. 그녀의 과거를 아는 모든 이들이 소환된다. 여러 밤을 같이 지낸 이도 있고, 낮은 보수로 부려먹다 내쫓다시피 한 이도 있고, 그녀에게 식수를 제공해준 이도 있고, 가죽 부츠를 탐내던 이도 있다. 그 중에는 함께 일하자며 동료애 이상의 정을 보여준 이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건 방랑의 삶이었다. 이 영화의 프랑스판 원제는 '집(지붕)도 없이, 법도 없이'다. 누군가는 '겁도 없이'라고 읽을 게 뻔하다. 

이 영화는 세 번 정도 본 것 같다. 보고 다시 또 봐도 내가 보지 못한 슬픔이 만져진다. 처음에는 미친 여자로, 두 번째는 안타까운 삶으로, 세 번째는 '자유인 모나'로 읽히는 게 신기하다.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세 번째 보고 나서이다. 철저하게 자기감정에 충실한 삶을 산 여성의 최후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으니 그런 결과는 당연한 거야'라고 읽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의 규정에 물음을 던져야 한다. 집이 없으면 죽는가? 라고. '법 없이도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하고 말이다. 모나의 죽음은 어쩌면 여성이기에 좀 더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과 노동, 즐거움과 생존 사이에서 그녀는 여성이기에 수없이 겁탈당했고 농락당했다. 일부는 그녀의 책임이고 다수는 '집도 없고 법도 없는 자'를 아무렇게 해도 되는 자로 읽은 오독과 오만의 폭력이다. 푹푹 찌는 여름, 집도 없고 길도 없는 삶의 그림자를 지나친다는 것은 연대책임에서 빗겨 가려는 수작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무통의 계절은 기후위기 만큼이나 위협적이다. 아프니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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