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비가 내리는 날씨가 거의 두달째 지속되고 있지만 탐사팀으로서는 날씨를 고르며 탐사 날짜를 잡는 등의 호사(?)를 부릴 여유가 없다.

민오름과 큰지그리오름 주변의 곶자왈 지대를 탐사하기 위해 나선 게 벌써 네번째.

특이하게도 위로부터 민오름과 큰지그리·작은지그리오름, 북동쪽의 바농오름까지 네 개의 오름은 아주 가까이 직선상으로 늘어서 있지만 말굽형으로 벌어진 분화구의 방향은 모두 제각각이다. 민오름이 북동향이고 큰지그리오름과 작은지그리오름은 각각 남서·남동향으로 정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또 바농오름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용암 분출 당시의 화구 위치와 경사에 따라 분화구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게 송시태 박사의 설명이다.

이들 오름 끝자락마다 마을 공동목장으로 운영돼온 것으로 짐작되는 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하나로 연결돼 있던 곶자왈지대가 지금은 하나씩 따로 떨어져 조그만 섬처럼 고립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번 민오름 정상에서 보았을 때 불그스름하게 파헤쳐진 듯한 지점을 가늠하며 가다 보니 의외로 쉽게 개간한 지역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해 1월 30일자로 개간사업 시행인가가 났다는 팻말이 하나 있지만, ‘산채 재배’라는 용도와는 달리 거의 1만㎡에 달하는 부지에 작물을 심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아직 개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곶자왈 지대로 들어서자마자 의외의 나무가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오색딱다구리 같은 새가 붙어살기도 한다는 참빗살나무.

한라수목원 김철수 소장은 “원래 3m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관목인데, 높이가 5m는 족히 되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수령이 100년 이상은 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약간의 경사를 내려가자 넓게 펼쳐지는 곶자왈 용암들이 짙은 초록색의 이끼를 입은 채 탐사팀을 반긴다. 보슬비에다 안개까지 낀 날씨 탓일까. 물기 때문에 더욱 푸른 기운을 발하는 이끼와 고사리들이 뒤섞여 곶자왈 용암의 흐름을 따라 굽이치는 모습이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한다.

양치식물들로는 관중, 일색고사리, 큰톱지네고사리 외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주걱일엽이 암반 틈으로 조그만 손을 내밀고 있다. 또 해발 700∼1500m 일대에 자라는 고산성 식물인 좀고사리가 눈에 띈다.

바위 틈을 살피며 걷다 보니 괭이눈과 개구리발톱 같은 정겨운 이름의 야생초들이 탐사팀의 발길을 멎게 한다. 곶자왈 지역처럼 공중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곧 봄 소식을 전하려는 듯 저마다 자그마한 꽃망울을 달고 있다.

입춘이 지났지만 앞으로 있을 꽃샘추위가 두려워 꽃을 피울 시기를 조금씩 늦추고 있는 걸까. 지금은 온통 초록 일색이지만, 이들이 꽃을 피울 때면 이 일대는 온통 형형색색의 꽃들로 뒤덮일 것이다.

곶자왈이 발달한 지대에는 어김없이 마을의 삶과 역사가 숨쉰다. 민오름 곶자왈 지대도 4·3 광풍이 불어제낄 당시 제주시 회천동 주민들의 은거지로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을 살리고 있다. 48년 겨울, 주민들과 함께 민오름 곶으로 피신해 40여일간을 갇혀 지냈다는 이 마을 김병령씨(83·회천동)는 “이 곶에선 나무가 울창해서 숨어지내기에 좋았다. 천막을 쳐 살았고, 눈도 팡팡 오는데 감자로 끼니를 연명했다. 특히 아이들과 여자들 고생이 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 이 곶 역시 마을 주민들의 삶터 역할을 했다. 종낭같은 나무들이 많아 나무를 해다 팔거나 ‘지들 것’으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특별취재반>

◈곶자왈 특별취재반
△반장=허영선 편집부국장
△김효철(정치부)·홍석준(제2사회부)·조성익(사진부)·변경혜·강호진(제2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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