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뒤편에서 검은 구름이 희미하게 밀려오고 갈매기들이 간간이 날아 들었다. 비양도로 향하는 뱃머리엔 적잖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검표원에게 물었다. "갈매기들은 언제 많이 볼 수 있어요?", "날 궂은 날요" 검표원의 대답은 짧았고, 오늘이 날 좋은 날인지 날 궂은 날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는 걸 보면 날이 궂어질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일정만 없더라면 이참에 비양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침에 영화를 보고 GV를 한다는 것은 몸의 감각 등을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선택이다. 하지만 별 뜻 없이 받아들인 나도 잘못이니 정해진 약속은 지켜야 한다. 행운을 얻을 수도 있으니 미리 걱정하며 기분을 부정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곳 한림항 먼저 들렀는지 모르겠다. 

   섬에서 멀어진다는 건
   다시 섬에 가까워진다는 것

   비양호에서 내려
   섬햇살과 만나 섬언어로
   섬이야기 두런두런 전하고
   섬바람과 만나 섬언어로
   섬이야기 귀담아 듣고

   오름 위 등대에 오를까, 하다 관두고
   해안길 걸을까, 하다 그마저 관두고

   세 명의 어린 섬들이 까르르 뛰노는
   키 작은 운동장 기웃대다가
   호돌이식당 보말죽으로 허기 채우고
   펄랑못에 앉아 몇 자 끄적이는데

   섬에서 멀어진다는 건
   다시 섬에 가까워진다는 것
   섬을 떠났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온다는 것
 -김수열 시 「비양도에서 한나절」 전문

"섬에서 멀어진 다는 건 다시 섬에 가까워진다는 것"에 한 번 쿵하고 내려 앉고, "섬을 떠났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온다는 것"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시와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될 줄이야. 우연치고는 크나큰 행운이다. 박이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박이웅 감독의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섬을 바다를 떠나고 싶어 바다를 떠났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 다시 돌아왔지만 바다에 들지 못하고 섬 언저리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는 사람, 바다를 지키겠다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나 왠지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치 한림항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처럼 영화의 서사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고, 제목은 시처럼 아름다워서 슬프다. 박이웅 감독에게 제목이 왜 '아침바다 갈매기는' 인가를 물었을 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바다'라는 동요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는 것이다. 동요 '바다'의 가사는 이렇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저녁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문명호 작사, 권길상 작곡의 노래 '바다'

동요 '바다'의 가사는 1951년 '소년세계'에 실린 동시다. 작사가인 문명호 씨는 당시 송림초등학교 5학년이었다고 한다. 어린아이 시선으로 인천 앞바다 갯벌을 바라보며 쓴 시가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은 것 같아 기억을 떠올려보니 김방옥 작곡가가 진행하는 '누가누가 잘하나' 프로그램에서였던 것 같다. 여름날 부모님 따라 간 밭에서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라디오에서는 "김방옥의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꽃밭에서'와 같은 노래를 부르면 흑밭에 알지도 못하는 음계를 그리며 피아노 치는 상상을 했었다. 

'아침바다 갈매기'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주인공 영국(윤주상 역)과 의사의 대화다. 의사는 영국의 상처를 꿰매주며 "나도 보험을 들어야겠네"라고 말한다. 배에서 사라진 용수(박종환 역) 가족이 거액의 보험금을 받게 된 사연을 알고서 하는 의사의 말이다. 그때 영국은 말한다. "그 돈 타서 뭐 할래?"라고. 

한 마을에서 의좋게 살던 이들이 하루가 멀게 악다구니를 쏟아붓고 피 터지게 싸우는 이유는 모두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마을을 떠나고, 돈 때문에 돌아오고, 돈 때문에 미워하고 돈 때문에 의심하고…. 마을 사람 형락(박원상 역)의 말처럼 마을이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영국은 홀로 바다를 노 저어간다. 후일이 어떻게 될지 알수는 없으나 그는 모든 문제로부터 놓여난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끼며 힘차게 배를 몬다. 배는 파도를 거스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로 끝나는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문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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