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제주특별자치도 공동기획축산악취 갈등 넘어 ‘상생의 길’을 찾다 7. 고착 슬러지 제거 지원

돈사 바닥 분뇨 고형화, 암모니아 발생 핵심 원인

악취 심한 농가 우선 슬러지 제거 연화제 등 지원

단순 시설 지원 넘어 문제의 ‘뿌리’ 해결 총력

제주도가 축산악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나섰다. 최신 악취저감시설을 설치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던 냄새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고착 슬러지’를 농가와 함께 직접 제거하는 사업을 확대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 시설 지원을 넘어, 악취가 발생하는 물리적 ‘뿌리’를 뽑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현장의 가장 어려운 문제에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하며, 주민과 상생하는 축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 악취의 숨은 주범, ‘고착 슬러지’

양돈농가의 슬러리 피트(분뇨 저장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뇨의 고형물이 바닥에 쌓여 단단하게 굳어지는 ‘고착 슬러지’ 현상이 발생한다. 사료 찌꺼기, 먼지, 돼지털 등이 뒤섞여 수년간 압축된 슬러지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일반적인 장비로는 제거가 매우 어렵다. 이는 피트의 유효 용량을 줄여 분뇨를 더 자주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가중시키고, 농가의 정상적인 분뇨 관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 고착 슬러지는 악취를 유발하는 숨은 주범이다. 두껍게 쌓인 슬러지 층은 분뇨의 정상적인 발효를 막고, 내부를 산소가 없는 혐기성 상태로 만들어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 고농도 악취 가스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아무리 고가의 악취저감시설을 돈사 외부에 설치해도, 발생원인 돈사 내부에 고착 슬러지가 존재하는 한 악취를 완전히 제어하기 어려운 이유다. 많은 전문가와 농장주들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핵심 악취 발생원이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농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고착 슬러지 제거는 전문적인 기술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며, 작업을 위해 돈사를 비워야 하는 등 생산 활동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환경저해 요인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농가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 문제 근원 직접 제거…맞춤형 지원책

제주도는 이처럼 농가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고착 슬러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축분뇨 고착 슬러지 제거’ 지원사업을 올해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곳의 농가에 지원했던 이 사업은 올해 10곳 내외로 대상 농가를 더욱 확대했다.

이 사업은 획일적인 장비 지원이 아니라 굳어진 슬러지를 분해하는 데 필요한 연화제나 미생물제제 등 경비를 직접 지원하는 맞춤형 방식이다.이는 농장별 슬러지의 상태와 돈사 구조에 맞는 최적의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적인 접근이다. 올해 약 10곳의 농가에 총 1억67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특히 악취관리 컨설팅 결과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된 농가에 우선적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지원 대상을 컨설팅 결과와 연계한 것은 한정된 예산을 가장 필요한 곳에 집중하겠다는 행정의 의지다.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문제가 확인된 농가에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지원 조건 또한 주목할 만하다. 돈사 외부 저장조의 슬러지만 제거하는 경우는 지원에서 제외하고, 반드시 돈사 내부 슬러지 제거 물량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이는 가장 작업이 어렵고 악취 발생이 심각하며 주민 민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돈사 내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 성과 측정으로 실효성 검증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책임성’과 ‘실효성 검증’이다. 제주도는 지원 농가를 대상으로 사업 시작 전과 진행 중, 그리고 완료 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악취 변화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이는 ‘냄새가 줄었다’는 막연한 기대효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이 투입된 만큼 실제로 악취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하라는 의미다. 만약 사업 효과 증빙이 어렵거나 미비할 경우 보조금 지급이 불가하거나 환수될 수 있다.

이러한 성과 측정은 ‘냄새가 난다’는 주민의 주관적 감각과 ‘관리하고 있다’는 농가의 입장 사이에서 발생했던 불신과 갈등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해소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악취 개선 효과를 수치로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농가는 스스로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고 주민들은 행정과 농가의 노력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제주도의 고착 슬러지 제거 사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용적인 접근과, 성과 측정을 통한 정책의 책임성 확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는 행정과 농가가 힘을 합쳐 악취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상생’의 중요한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고기욱 기자

※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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