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제주특별자치도 공동기획축산악취 갈등 넘어 ‘상생의 길’을 찾다 8. 자원 재순환

자료사진.
자료사진.

액비 살포 한계 직면…정화·재이용 정책 확대

농장 청소·조경 용수 활용, 지하수 오염 방지

엄격한 수질 기준 적용, 미이행시 보조금 환수

제주도가 가축분뇨 처리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악취 민원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액비 살포’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분뇨를 고도로 정화해 깨끗한 물로 만들어 농장에서 다시 사용하는 ‘자원 재순환’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분뇨를 더 이상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닌 재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전환하는 시도로, 악취 문제와 지하수 오염 우려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액비 살포의 한계, 새로운 대안 필요

가축분뇨를 발효시켜 만든 액비(액상 비료)는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중요한 유기농 자원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액비 살포가 집중되면서 악취를 유발하고, 과다 살포 시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투과성이 높은 화산섬의 지질 특성상, 관리되지 않은 액비가 토양에 과다하게 스며들 경우 질산성 질소 등이 여과 없이 지하로 유입돼 제주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청정 환경이 핵심 가치인 제주에서 액비 살포는 주민들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민감한 문제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제주도는 ‘가축분뇨 정화처리 재이용’ 사업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의 목표는 분뇨를 고도의 정화처리 기술로 처리해 법적 방류수 수질 기준보다 깨끗한 물로 만든 뒤, 이를 농장 청소, 돈사 내 안개분무, 조경 용수 등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액비 살포량을 원천적으로 줄여 악취를 저감하고, 지하수 오염 가능성까지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분뇨’가 ‘물’이 되다…정화·재이용 시스템 지원 확대

제주도는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가축분뇨 정화처리 재이용’ 사업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더욱 확대했다. 지난해 3곳에 약 12억원을 지원했던 이 사업은, 올해 7곳 내외에 약 25억88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규모를 대폭 키웠다.

지원 대상은 가축분뇨 공동자원화시설 운영업체나 재활용업체, 그리고 이미 액비화 시설을 갖추고 있는 전업 규모 이상의 양돈농가 및 젖소농가다. 특히 3000두 이상을 사육하는 대규모 양돈농가를 우선 지원하는데, 이는 가축분뇨 발생량이 많은 곳부터 정책을 적용해 환경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선정된 농가나 업체는 정화처리시설뿐만 아니라, 원활한 운영에 필수적인 관련 부대시설 설치 비용까지 지원받는다.

고용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정화시설을 위한 ‘전기 승압’ 공사, 처리된 물을 저장하는 ‘재이용수 저장조’, 정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형물을 처리하는 ‘콤포스트(퇴비화 장비) 및 감량기’ 등이 모두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단순히 핵심 설비 하나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종합적인 지원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총사업비의 40%는 지방비로 직접 보조하고, 50%는 농어촌진흥기금을 통해 연리 0.7%의 저금리로 융자 지원한다. 농가는 총사업비의 10%만 부담하면 돼,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을 크게 낮췄다.

이는 악취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 농가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어 문턱을 낮춰주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결과로 증명하는 ‘정화처리 재이용’

‘정화처리 재이용’ 사업은 단순히 보조금을 지급하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다. 제주도는 사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사후관리 조건을 내걸었다.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을 완료한 농가는 정화처리된 물이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수질검사 성적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며, 환경부서의 인허가 변경허가서까지 받아야 한다.

만약 정화처리 수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사실이 적발될 경우, 지원된 보조금과 융자금 전액이 환수 조치된다.

이는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성과를 포장할 수 없도록 만든 강력한 책임 조항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가시적인 환경개선 효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정책적 목표가 담겨있다. 이처럼 엄격한 책임 요구는 오히려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고, 농가 스스로가 책임감을 갖고 시설을 운영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가축분뇨를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정책은 악취 저감을 넘어 제주 축산업이 환경과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고기욱 기자

※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