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적당한 시월의 주말, 표선해수욕장을 찾았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따라나선 여행객들 한 무리가 제주 나들이를 했단다. 4·3의 흔적이라곤 표지석 하나뿐인 한모살 유적지를 둘러보고 사람들은 해수욕장 팔각정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소설책을 꺼내며 여기가 거긴가 살피는 모습들이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썰미다. 표선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설명하는 한 시인의 격앙된 목소리 너머로 흰 새 두 마리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지금부터는 자신들의 시간이라 여겼던 새들이 갑작스레 몰려든 인파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내가 가진 게 구부러진 꿈밖에 없구나
깨진 몸엔 흙먼지가 수북이 덮이고
슬픔이 깊으면 구덩이도 깊구나
쓸려간 흰 뼈를 끌어당길 손발도 없이
돌로 쪼개져 매장된 빛의 조각들
죽음은 등 뒤에 있어도 서늘하구나
혈관을 타고 흐르다 핏줄로 휘어진 이름
사납게 우는 짐승의 허기가 흙색으로 짙어지고
울음을 발라낸 그 어떤 문장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쌓이고 쌓여 살빛거죽 꽃잎들도
여기선 하늘이 가장 멀구나.
-고영숙 시, 「다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학살터의 기록」 전문
남은 거라곤 흰 뼈들의 웅성거림 같은 파도의 움직임, 쓸고 또 쓸며 바위를 어루만지는 듯한 물살의 흐름은 지켜보는 이들을 사소곳 하게 만든다. 시간이 갈수록 더 넓어지는 모래사장은 "쓸려간 흰 뼈를 끌어당길 손발도 없이 돌로 쪼개져 매장된 빛의 조각들"처럼 반짝인다. 그날의 발자국들이 산산조각 모래알이 된 것처럼, 그 죽음이 저 바다 위에서 흘러가다 다시 되돌아오는 것만 같아 등짝이 서늘하다. 이대로 오래 서 있는다면, "울음을 발라낸 그 어떤 문장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소설 한 권이 주는 영향력과 그 이름에 걸맞는 발걸음들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물론 아무 글이나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섣부른 말은 너무 이르다. "선생님, 그럼 여기가 그 학살터예요?" 라는 질문이 물결을 따라 떠돌던 나의 의식을 흩어 놓는다. "아닙니다. 소설은 소설이구요. 다만 하나의 은유로서 바라볼 수는 있겠지요."라고 답하는 시인의 입가가 조금은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에서 조금은 갸우뚱하기도 하겠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더 많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학의 일인 것이다.
한림 작은 영화관에서 다양성 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김승환 감독의 단편영화 '중섭'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영화 '중섭'은 1951년 1월 제주에 온 이중섭의 삶을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중섭이 제주에 왔을 때 만난 소달구지 끄는 노인, 이웃집에서 전해 들은 4·3 공포,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동네 삼춘의 간절한 눈빛, 갓 태어난 아기의 칭얼거림…. 영화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1951년 서귀포의 자구리 바다를 상상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이중섭은 소달구지를 끌어 자신의 가족을 서귀포로 데려다 준 노인들 위해 담뱃대를 만들고, 동네 여인이 부탁한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전쟁이 가져다 준 이별과 가난을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듯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11개월여의 서귀포 생활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높고 또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의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씨가 전한 이중섭의 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립고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던 그에게 힘이 되었던 바다였을까 그림이었을까?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 줄 능력도 없으면서 언제나 편지에는 희망을 얘기하던 그의 편지는 가난과 불안에 휩싸인 현실을 상상 속에서나마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부러 고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자유와 유머와 행복이 철철 넘친다. "삶의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지만 바다와 달을 향해 가슴을 헤치며 먼 곳에 흩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었을 것이다.
이렇듯 바다가 하나의 은유로 누군가의 삶을 더듬게 한다. 어쩌면 바다가 문학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도 언어의 그물을 헤치고 더 넓은 문학의 세계를 꿈꾸는 나는 좀 더 가난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전쟁과 가난,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면서도 오늘 어쩌면 나는 무언가 더 많이 가지려 움켜쥐는 하루는 아니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