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유적지를 찾아서] 제주여성들의 수다방 빨랫터
| 여성문화공동체를 엿볼 수 있는 각 마을 빨래터를 찾았다. 제주여성사회가 일하면서 문화를 창출하는, 고유한 역사를 이어왔다고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각 마을의 빨래터다. 빨래터는 여성들에게 노동에 절은 몸을 달래주는 사랑방이자 여성들이 이야기하고 놀고 즐기는 수다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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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제주군 남원의 공천포바닷가 근처에 있는 설코지와 할매개. 물은 설코지물 또는 고망물이라 해서 식수와 빨래하는 데 쓰였다. | ||
옛날 제주에는 물이 귀했지만 해안가에는 마을마다 용천수가 흘렀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제주시 구시가지 한복판을 흐르는 산지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부드러워 빨래터로 각광받았다.
제주의 하천은 평상시에는 바짝 마른 건천이었다가 비가 내려야만 물이 흐르는 특성을 지녔으나, 산지천의 빨래터는 한라산에서 발원한 시내로 늘 맑은 물이 흘렀다. 그것도 시가지 한복판을 가로질러 바다까지 닿았기 때문에 그 하류에는 포구가 발달했다.
일제강점초기부터는 빨래터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빨래도 삶고 염색도 했다. 이 산지천은 한동안 매립되었다가 얼마전 복원됐지만, 빨래터는 되살리지 못했다.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 중동네 포구 옆에 위치한 열운이갯물도 빨래뿐만 아니라 채소를 씻는 샘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그만큼 샘의 규모가 컸다. 열운이갯물은 탐라국 개국신화에 등장하는 벽랑국 세공주가 들어온 바닷가 옆에 있어 여성유적지로도 제격이다.
이 갯물은 긴 돌담으로 나누어져 북쪽은 남성전용, 남쪽은 여성전용이었다. 지금은 해안도로를 개설하면서 거의 묻혀버렸다.
서귀포시 자구리포구 입구에 자리잡은 자구리새미도 풍광이 빼어난 빨래터다. 예전에는 ‘금남의 샘’이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지금도 날이 맑으면 한아름씩 빨래를 하면서 포구의 풍광에 젖어들고는 한다. 자구리새미는 제주의 전통적인 빨래터 중에서 공새미 빨래터와 함께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그 옆에는 ‘관청할망당’이 있어 여성유적으로 존재가치 또한 높다.
□ ‘금남의 샘’에서 여성공동체문화 꽃피우다
변변한 자원이 없던 제주에서 여성에 의해 이룩된 해양산업과 농업 등 생존산업은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발달했고 고유한 문화를 낳았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서는 일하는 여성 대다수인 제주여성사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잠수의 어로행위를 미풍양속의 유교 윤리를 어기는 풍기문란한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편견을 뛰어 넘어 제주여성사회가 일하면서 문화를 창출하는 고유한 역사를 이어왔다는 점은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여가를 적절하게 여성공동체 단위로 즐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각 마을의 빨래터는 빨래터겸 멱을 감는 샘이면서 여성공동체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수다방,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각 마을의 빨래터(샘)가 여성공동체문화터가 된 것은 바닷가 마을마다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운용한 잠수회라는 결사조직이 앞장선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잠수회원을 필두로 마을 여성들은 백중절에 검은모래로 찜질을 하고 물맞이를 하며 휴식을 취하려고 공천포바닷가(일명 공새미빨래터) 검은모살밭으로 몰려들었다. 공새미빨래터는 검은 화산모래가 삠질하기에 알맞아 밭일이며, 물질로 삭신이 쑤시는 제주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한국여성개발원이 발간한 자료집「여성문화유산의 현황과 지역문화자원으로의 활용화 방안」의 제주편을 맡은 소설가 한림화씨는 “1980년대 초까지만해도 백중절이면 여성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먹을거리와 빨래거리를 한 짐씩 지고 가서 며칠씩 묵으며 물맞이도 하고 놀고 즐기면서 힘들고 피곤한 일상을 잠시 잊었다”고 설명했다.
□참고자료
·한국여성개발원 「여성문화유산의 현황과 지역문화자원으로의 활용화 방안」(제주편 한림화)
·제주여민회 자료집「2004년 가부장제문화를 뒤집는 여성들의 반란기행」
사진설명.
1. 여름 한 낮. 산지내에서 빨래와 멱감는 터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거의 벗은 모습이다. 산지내에 복개가 이뤄지고 재개발이 되었다. 사진제공「제주100년」.
2. 남제주군 남원의 공천포바닷가 근처에 있는 설코지와 할매개. 물은 설코지물 또는 고망물이라 해서 식수와 빨래하는 데 쓰였다.
| 사진으로 보는 제주여성사-요람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렀네 | ||||||||||||
| 대로 짠 애기구덕은 제주의 육아용 요람으로 통의 중심에 그물을 엮고 그 위에 짚을 깐 다음 기저귀를 깔고 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이 요람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렀다. 애기구덕은 밭은 물론 어디나 지고 다니기도 했다. 해녀들도 아기를 애기구덕에 눕히고 물질하러 간다. 해녀와 아기에 얽힌 속담도 생겨났으니, ‘좀녀 애기 나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또는 ‘좀녀 애긴 사을이민 골체에 눅저뒁 물에 든다’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즉, ‘해녀는 아기 낳아서 사흘이 되면 바다에 들어간다’혹은‘해녀가 낳은 아기는 사흘이 되면 삼태기에 눕혀 두고 바다에 들어간다’라는 뜻이다. 이 속담은 해녀의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해산물을 채취하는 시기가 있어서 그때 반드시 일해야 함을 뜻한다.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마음놓고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뜻한다. 이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육체적으로 고달픈 물질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산모가 일을 할 수밖에 없현실에서 갓난아기라고 해서 안정된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기들도 자신의 처지를 파악해서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것이었을까. 물질만이 아니라 밭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밭에서 아기를 낳는 경우도 있고, 낳자마자 밭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자료제공 「제주여성문화」문순덕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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