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서 현실로 돌아온 이어도]

▲ ‘KOREA’글씨가 선명한 ‘대한민국 해양영토’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김철웅 기자
'이어도'가 외롭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rta)호에 의해 이어도가 발견된지 110여년이나 흘렀지만 이어도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이상향'이라는 막연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간혹 영토분쟁적 이슈로 부각됐다가도 곧 잊혀지기 일쑤다. 과연 이어도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이며, 제주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 현재의 이어도를 지키고 활용하기 위해 어떤 프로세스와 노력이 필요한가 짚어 본다.

# 제주인의 기억 속 '이어도'

"이여도 하라/이여도 하라/이여 이여 이여도 하라/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이엿말랑 말앙은 가라/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이여도가 반이옝 한다"

조천리의 '고동지 설화'중 이어도에 표류한 고동지가 고향을 그리며 불렀다고 전해지는 구슬픈 민요다. 중국의 강남으로 가는 길 절반쯤에 이어도가 있으니 나를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다. 이어도는 모슬포, 동김녕리 등지에서 채록된 설화와 영등신화, 남선비 이야기 등 전설, 맷돌·방아노래' '해녀노래' 등 민요에서도 때로는 저승세계로, 어떤 때는 과부들만 사는 여인국, 연꽃 은은한 낙토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구비문학 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이어도가 실체로 드러난 것은 불과 110여년 전이지만, 역사 이전부터 제주인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어도의 해저지형도
'이어도'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을까. 궁핍한 외딴 섬에서 생존을 위해 목숨걸고 거친 바다와 싸워왔던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안식처이자 이상향이었으며,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는 삶의 터전이었다. 또한 '이어도에 들어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처럼 배 10척중 3척은 난파시킨다는 암초인 이어도를 조심하라는 제주인의 내재된 집단기억이 담긴 장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도에 대한 관심만큼 현재 '이어도'라고 부르는 위치에 대한 논란도 적잖다.

누구나 이어도는 '있다'고 말하지만, 혹자는 그 대상을 '이상향' 또는 '환상의 섬'으로 접근하는 반면 '암초'라는 실체가 있었기에 '이어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양쪽 주장 모두에 '이어도'가 있다는 점이다. 이어도가 전설과 환상의 섬으로서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점을 우선하는 입장과  고·량·부 삼성신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실체적 존재인 '삼성혈'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의 차이일 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어도'가 그만큼 제주에 있어 중요하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 이어도의 실체와 해양영토로서 가치

4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대륙 끝자락 '외딴 섬'이었던 제주는 이어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해양으로 나아가는 '관문도시'로 지위가 바뀐다.

우리나라의 마라도에서 149㎞, 중국 서산다오에서 287㎞ 떨어진 위치에 있는 이어도는 바다 밑으로 4.6m 아래에 있어 파도가 높게 칠 때 외에는 모습을 보기 힘든 수중암초에 불과하지만 이어도 해역 면적이 현재 제주도 관할해역의 20배가 넘는다. 특히 이어도가 태평양으로 오가는 바다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연간 25만척의 선박이 드나들고 우리나라 무역선의 90% 이상이 이 곳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해상교통로 확보라는 절대명제도 주어진다.

이어도 인근 해역은 자원적으로도 최대 1000억 배럴의 원유와 72억t에 이르는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해양의 보고이자 조기, 민어, 갈치, 고등어, 오징어, 꽃게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황금어장이기도 하다. 2003년 6월에는 이어도 정상부분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설치돼 다양한 관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가치로 인해 중국의 이어도 해역에 대한 관심과 영토욕심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어도는 섬이 아닌 암초에 불과하므로 영토분쟁 대상이 아니며, 양국간 해상경계 획정을 통해 관할권을 정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현재까지 16차례에 걸치 한·중 EEZ 협상에선 아무런 합의점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분쟁이 장기화되거나 격화될 경우, 자칫 중국의 의도에 휘말려 분쟁지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과의 외교마찰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분쟁 고착화도 경계되는 부분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중 중화권 관광객 비중이 60%를 넘어서고 있는 제주는 더욱 그렇다. 지난달말까지 수차례에 걸친 '이어도의 날' 조례제정 관련 간담회에서 "중국의 제주관광시장 기여도 등을 감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도의 입장만 확인하는데 그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제주도서관의 역사-아시아 카테고리의 책들. 독도 관련 서적은 수십권에 이르지만 이어도와 관련해서는 '이어도 연구 창간호' 단 한 권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새로운 패러다임 접근 필요

이런 흐름들 속에서 이어도를 '평화의 아이콘'으로 선정하고 이어도와 제주의 연관관계를 분명히 할 객관적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어도가 이슈화 되고 있지만 정작 이어도를 증명해줄 객관적 자료는 일부 노래나 설화 등에만 의지하고 있고, 관심 또한 학계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선 이어도가 제주인과 역사적으로 이어져왔음을, 또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어도를 경비함과 학자들에게만 맡겨선 안되는 이유다.

여기서 이어도 연구회가 제시한 해법이 주목할 만 하다. 연구회는 최근 출간한 <이어도 바로알기>에서 제3섹터 방식의 민관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공식 워킹그룹이나 자문단을 구성을 통해 △동아시아 해양기후변화 연구센터 △동아시아 해양경제자원 및 기술 공동개발 프로젝트 △동아시아 해양 인간안보 교육센터 등 국제협력모델을 구축, 국가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계획을 지탱할 지역·학문적 뒷받침이다. 제주인의 도전과 모험, 개척, 관용을 강조한 '해민정신'과 더불어 '이어도'에 대한 관심은 제주인의 자긍심, 정체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정이다.

"기억속 이어도 제주바다 분명"
<인터뷰>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고충석 (사)이어도연구회 이사장
"이어도, 평화 위한 디딤돌 돼야"

"이어도는 국제해양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제주의 '해양영토'임이 분명합니다. '해양주권 수호'라는 원칙론에 입각해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해야 합니다"

고충석(62·전 제주대 총장)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은 "이어도는 제주인의 정신적 고향이자 제주의 신화, 구전문학, 노동요 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예술의 보고"라며 "제주인들의 역사적 체험 속에 녹아 있는 이어도에 대한 기억과 여러 문헌들을 검토해 보면 이어도가 제주의 바다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에 대해 "중국측이 근거 희박한 '산해경'을 내세워 자국해역임을 주장하는 것은 EEZ 확장을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며 "심지어 '쑤옌자오(이어도의 중국명)가 뻗어나간 화하(중국문명)…'로 시작하는 '중국해(中國海)'라는 선전가요를 동원, 공세를 펼치며 그들의 제국주의·중화주의적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활동반경이 좁아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 강대국들의 특성상, 앞으로 이어질 17차 EEZ 경계획정 협상도 타결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 평가하면서도 "이어도연구회를 통한 연구·교육사업과 이어도포럼을 통한 해양주권 확산 국민운동을 동시에 전개하는 등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갈등 해결 방안에 대해 "대결구도보다는 비정치적 이슈를 중심으로 개인-단체-지자체-국가-국제기구로 이어지는 순차적, 다각적 접근이 펼요하다"며 "동중국해를 둘러싼 나라들과 이어도과학기지의 관측 정보를 공유해 황사를 비롯한 양쯔강 담수로 인한 저염분화, 태풍 등의 공통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EEZ 경계획정이 동북아 평화의 디딤돌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실천 가능한 국제협력프로그램과 함께 행정과 학계, 민간 차원에서도 이어도의 가치를 인식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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