馟(도)·栖(서)·關(관)프로젝트 / 도서관, 마을 삶의 중심이 되다 <4>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②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희망 파장
'일상생활의 거점으로 공공도서관'가능성 확인해
지역 기억·경험 축적까지 '마을'생태계 접목 눈길

서울은 10여년 전 '뉴타운'홍역을 앓았다. 도시및주거환경촉진법을 적용한 도시 재정비 촉진지구는 여러 개 재개발구역과 기반시설 등을 묶은 신시가지 개념을 접목했지만 투기 등 각종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고 서울 살이를 포기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곳 중 하나가 은평구 구산동 일대였다. 그들이 "이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를 말한다. 도서관이 만든 희망 파장이다.

△모두가 바라는 신나고 행복한

구산동 도서관 마을의 힘은 기존 도서관과는 낯선 기운에서 읽을 수 있다. 도심 주거지의 평범한 주택들을 주민들의 다양한 삶이 담긴, 일상적 공간으로 쓸모를 줬다. '일상생활의 거점으로 공공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은 '코흘리개 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마을사람들이 모두 도서관 마을에서 만나고 함께하며,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어도 눈치 보지 않고, 엄마들이 도서관에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깔깔거리며 만화책도 보고, 악기도 연주하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신나고 행복한 도서관'이라는 안내문에서 찾을 수 있다.

뭔가 장황하게 보이는 내용은 반대로 지역 주민의 의견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원하는 것 모두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마을에 사는 자부심이 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10개 필지 중 3개 건물을 살려 만든 도서관에는 기존 집들이 가지고 있는 55개 방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일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로 쓰인다. 원래 방이었던 까닭에 아늑하고 편한 느낌이 '도서관'이란 단어가 주는 위화감을 덜어낸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분방한 것도 아닌 것이 휴대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작고 빨간 부스가 있고, 이용객들은 알아서 발소리를 낮춘다. 공간 어디에도 '정숙'같은 규칙이나 하면 안 되는 금지 사항을 찾을 수 없다. 

1층은 누구나 쓴다. 소규모 행사나 문화행사가 가능한 작은 홀과 음악감상이나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가 있다. 2층은 '어린이'에 맞췄다. 바닥에 눕고 뒹굴 수 있다. 3층은 '청소년'에게 내줬다. 그룹 활동을 하거나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4층은 소규모 공간구획을 활용한 열람실로 누구나에게 개방한다. 5층은 도서관 운영과 관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보통의 도서관과 청소년의 집 같은 문화공간을 접목한 듯 보이지만 이 것 역시 주민들의 발품을 팔아 조립했다. 도서관 조성을 위한 주민참여예산으로 '만화도서관'과 '청소년 힐링캠프'를 확보했다. 2~4층 공간 일부는 만화자료실인 '만화의 숲'으로 꾸려졌다. 층별로 어린이와 일반, 순정만화로 구분해 원하는 대로 찾아 볼 수 있게 했다. 3층 공간과 연결된 다목적 공간(청소년 힐링 캠프)도 유용하게 쓰인다.

△생활권 내 활용도 극대화

'심장' 역할을 하는 공간도 있다. 4층 '마을자료실'이다. 개발 바람에 밀려 잊히는 것들, 잃어버리는 것들을 하나 둘 모아두는 공간이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속내를 꺼내 기억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발굴해 유통한다면'이란 질문에 '마을이 살아 난다'는 답을 준다. 아직 채워야 할 것이 더 많지만 연대하며 스스로 쓸모와 필요를 찾아온 도서관 마을의 존재의 이유를 이보다 더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는 없다.

'마을의 기억이 쌓이는 것'은 진행형이다. 기존 마을의 골목에서 책을 고르고, 누군가 휴식을 취했던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한다. 그렇게 축적된 것들이 마을의 역사가 된다.

생활권 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도 흥미롭다. 응답자의 81%가 주 1회 이상 도서관을 찾았다. 2번 이상 찾는 경우도 59%나 된다. 10명 중 8명(87%)은 걸어왔다. 평균 이동 시간 11분, 마을 안 그리고 골목도서관에서 타 도서관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50%)를 만끽했다. 시설과 공간을 보다 확충해 달라(43%)는 주문에서 도서관마을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았다. 2002년부터 마을도서관이라는 희망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지만 진행과정에서 공사 소음이나 청소년 관련 민원이 잇따랐다. 위탁 운영을 위해 협동조합에서 다시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공공재' 시스템화 고민

이수진 은평도서관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도서관만 놓고 보면 하드웨어지만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에 참여하면서 생명을 갖게 됐다"며 "살아있으니 숨을 쉬어야 하지 않냐. 책 읽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미 멈출 수 없을 만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얻기 까지 20여년의 시간 동안 꾸준한 훈련을 통해 익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접목하는 방법'은 견학 몇 번으로는 따라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이 이사장은 "은평구 도움으로 부지 매입을 했는데 원하는 것을 하려다 보니 건축비가 더 많이 드는 상황이 됐다"며 "공공건축상을 받은 부분을 조명받고 있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더 의미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마을'"이라는 귀띔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도서관으로 한정하기에는 부족했다. 도서관과 사람의 의미를 더해 도서관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층 다목적 공간에서 부르면 2층에 있던 막내가 대답을 한다. 3층에서 만화책을 보던 사춘기 둘째도 고개를 내민다. 4층에서는 할아버지가 오래된 앨범의 먼지를 털어내 그 안의 추억을 꺼낸다.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일을 주민이 맡았다. 일자리 창출까지 못한 것이 없다.

이르면 올해 여기에 오기까지, 앞으로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담은 백서를 만들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누구의 것이 아닌 공공재로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며 "자발적으로 움직인 모든 것들을 매뉴얼로 만들고, 전반적인 시스템화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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