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이제는 기록유산으로 4. 함께 가야 할 여순10·19
'진압 명령 거부' 봉기 발발…이 과정서 다수 민간인 희생
이후 '국가보안법' 제정도…특별법 마련 과거사 해결 속도
후대 전승 노력 다각도…"기록으로 남겨 공감대 형성해야"
제주4·3과 여순10·19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역사다. 여순10·19는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키면서 시작됐으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하지만 제주4·3과 마찬가지로 여순10·19 역시 70여년 전의 기록물 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면서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한계를 갖고 있다. 여순10·19가 과거사 해결을 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연구 등 제주4·3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해 규모 추산 '불투명'
여순10·19는 제주4·3 당시인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지면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단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3' 진압 명령에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 등의 명분으로 출동 명령을 거부하면서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군들은 이튿날인 20일 여수 읍내 진입을 시작한데 이어 주력부대가 순천으로 출발했다. 특히 이념 갈등 속에서 다수의 군인 등이 봉기군에 합류하면서 참여한 인원만 1000~2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후 봉기군들은 주변 지역으로 공격을 속행했으며 그 결과 22일에는 전남 동부 지역 6개 군이 모두 장악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광주에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여순 지역에 계엄령을 발효했다.
수 차례 교전과 미군의 협조로 진압에는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하지만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확인된 사망자만 3400여명에 달했으며 행방불명자는 800여명 수준으로 추정 사망자는 1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했으며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무제한적인 탄압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이제부터 시작
여순10·19의 과거사 해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제주4·3 역시 특별법 제정과 개정을 반복하면서 무수한 성과를 거뒀으며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첫걸음도 내디뎠다.
지난 6월 '여순10·19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제정되면서 희생자 유가족들의 한을 풀 계기가 마련됐다.
해당 특별법에는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명예 회복 방안 마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행은 내년 1월 21일이다.
이에 따라 제주4·3 단체들이 잇따라 환영하고 나섰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지난 6월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던 여순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됐다"며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고 희생자와 유족이 오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등 진정한 명예 회복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제도 산적한 실정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조사를 위해 위원회의 상임 위원이나 조사 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사 기간 역시 2년으로 정해지면서 70여년이 흐른 지금 생존자 증언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픈 역사로 뭉쳐
이처럼 여순10·19가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70여년 만에 진상규명의 물꼬를 텄다. 특히 제주4·3과 함께 기록물 전시 등 후대 전승을 위한 노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여수시는 여순사건 관련 각종 문헌과 사료, 사진, 영상 등을 모아 '여순사건 아카이브' 구축 절차에 들어갔다.
또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기념해 '여순사건 기념관'을 조성했으며 이와 연계한 다크투어리즘 시티투어 상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제주도교육청도 올해 전라남도교육청과 함께 '제주4·3-여순10·19 평화·인권교육 및 교류'를 확대했다.
제주와 여순이 아픈 역사로 뭉쳐있는 만큼 교육과 협력, 교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관련 연구 교류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작업 등도 요구되고 있다. 양경익 기자
[인터뷰] 주철희 역사 연구자(역사공간벗 대표연구원)
"기록유산 등재를 비롯 제주4·3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철희 역사 연구자(역사공간벗 대표연구원)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비롯한 제주4·3의 발전을 위해 이 같이 제안했다.
주 역사 연구자는 "현재 4·3과 여순 모두 '사건'이라는 모호한 명칭에 얽매여 있다"며 "제주4·3이라는 역사의 주된 성격이 학살에 있는지, 항쟁인지, 운동인지 등 그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성격을 규명해야 전국화, 세계화에 보다 자연스럽게 힘을 실어줄 수 있고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함에 있어서도 주춧돌이 돼 줄 것"이라며 "4·3의 역사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진중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관련한 연구를 병행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핵심적인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료'들이 있을지를 가늠하고 해당 기관에 정확하게 요청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진상규명위원회 등 산하에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꾸려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사료들을 확보한 다음에는 공기관에서 간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간에 풀어 나누길 권한다"면서 "발굴한 자료를 나누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한 연구에 힘을 쏟을 때 기대 이상으로 많은 자료들을 찾아내고 집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경익·김수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