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자치분권, 미래를 보다 <7> 자치분권 선진국가, 일본 홋카이도를 가다

'일본형 자치분권, 도주제특구 홋카이도에서 자치분권의 새로운 미래를 보다.'

대한민국 자치분권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4개 특별자치시도의 4개 대표신문으로 구성된 공동취재단(강원도민일보, 제민일보, 충청투데이, 전북도민일보)은 국내 취재에 이어 첫 해외 취재로 지난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홋카이도를 현지 취재했다. 

홋카이도는 1993년부터 일본 지방분권개혁에 앞장서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지방분권을 위해 도주제를 검토해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도주제란, 일본의 현보다 더 큰 광역자치단체를 만드는 행정체제 개편안을 말한다. 

2006년 도주제특별구역추진법이 일본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홋카이도는 2007년부터 도주제특별구역으로서 정부로부터 행정, 치안, 교육 등의 자율성과 권한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공동취재단은 와인특구로 지정된 요이치정을 비롯해 홋카이도 도시재생의 상징 오타루관광협회, 지역자원을 활용한 6차산업 대표사례 '팜토미타' 등 홋카이도 분권 모델을 심층 취재했다.

공동취재단은 또 홋카이도청을 방문해 도주제 추진 상황과 도주제특구 지정 후 현재까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은 권한과 규제 해소 사례를 살펴봤다.

'4개 특별자치시도에서 新자치분권 미래를 보다'를 주제로 국내 첫 기획취재를 진행하고 있는 공동취재단은 8월 29일 요이치정 와인특구 현장을 찾았다.

△인구 감소해도 생산력 증가 
일본의 가장 북쪽 섬 홋카이도는 현지에서도 매우 추운 지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비교적 따뜻하다고 꼽히는 곳이 있었으니, 삿포로시에서 서쪽 약 60㎞ 거리에 위치한 요이치정이다. 

요이치정은 북쪽은 동해에 나머지 삼면은 완만한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둘러싸인 해안선과 하천 유역은 관광 가치가 높아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요이치정의 60~70%는 산지이며, 주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농경지나 과수원이다. 

요이치정은 지형 특성상 홋카이도 과수 생산의 거점으로 불린다. 기후가 온난한 만큼 포도, 사과, 배의 생산량에서는 도내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이치정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14년 2만명이 넘어가던 인구는 지난 10년간 3000명 가까이 감소해 올해 7월 기준 1만7088명만 남았다. 

요이치정은 '특별구역'에서 해답을 찾았다. 농업이 발달된 현지 특성을 살려 농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강화하고, 인구 유입을 위한 각종 규제를 해소하는 한편 홍보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노무라 카즈키 요이치정사무소 특구담당팀장은 "특별구역 운영 이후 농업을 위해 요이치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전체적인 농업 인구는 줄었지만, 30대와 40대 농업 인구는 오히려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요이치정 농업 인구조사에 따르면 1995년 1351명, 2005년 1046명, 2015년 818명, 2020년 808명으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30대 및 40대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0대 농업 인구는 1995년 132명에서 2005년 66명으로 급락했다 2015년 70명으로 늘었다. 2020년 기준 30대 농업 인구는 85명이다.

40대 농업 인구의 경우 1995년 283명, 2005년 124명, 2015년 82명으로 감소 추세였다가 2020년 101명으로 반등했다.

△북쪽의 과일 왕국 탄생하다
노무라 팀장은 "요이치정의 젊은 농업 인구가 늘어나게 된 1등공신은 '와인특구'"라고 설명했다. 요이치정에 새롭게 유입되고 있는 농업 인구 절반 가까이가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요이치정에서는 포도 재배가 활발했다. 무엇보다 요이치정에서 생산된 양조용 포도는 품질이 좋았다. 이 포도를 이용해 만든 와인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요이치정에는 포도 뿐 아니라 과실주, 위스키 제조시설이 잇따라 들어섰다.

문제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포도 재배 뿐 아니라 주류 제조까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에 탄생한 것이 2011년 구조개혁특별구역법에 따른 '와인특구 특례'다. 현지 주민들이 특구를 원했고, 정부가 받아들였다. 일본 정부는 요이치정을 '북쪽의 과일 왕국'이라고 표현했다.

노무라 팀장은 "와인특구가 특별한 것은 주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라며 "주민들이 원한 특구인 만큼 참여도가 높고, 신규 유입도 활발하며,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도 뛰어나다"고 전했다. 

와인특구 특례로 인해 와인 양조 신규 참여자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규제 완화로 인해 소규모 시설의 주류 제조가 가능해졌다.

와인특구 특례에 따라 요이치정 포도를 원료로 한 와인을 제조하는 경우 주세법의 최저 제조 수량 기준이 대폭 완화된다. 일본 주세법은 연간 6㎘ 이상 제작해야 주류제조자로 인정하지만, 요이치정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2㎘만 제작해도 주류제조자가 된다.

특히 직접 생산한 포도로 과실주를 제조하는 경우에는 제작 기준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원하는 만큼만 만들어도 주류제조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에 요이치정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꾸준히늘고 있다. 올해 현재 기준 19개 와이너리가 활동하고 있다. 1년만에 3곳의 와이너리가 늘어나는 등 요이치정이 일본 와인의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와인특구 특례에 따른 재정적인 지원도 눈길을 끈다. 요이치정은 와인특구 대상 농가에게 원료 생산력 강화 사업, 6차산업화 체제 정비, 웹사이트 정비, 각종 이벤트 개최 등에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원 규모는 보조율 50% 기준 최대 100만엔까지다. 

요이치정은 앞으로 '요이치 와인 투어리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활용, 마을활성화 사업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부담없이 와이너리 도전 가능"
"우연히 와인특구를 알게됐고, 갈수록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제는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요이치정 와인특구 내 농장에서 포도농사와 와인제조를 하고 있는 와이너리 야마나카 아츠오씨를 만났다. 

야마나카씨는 자신을 "농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라고 소개했다. 수도권 출신인 그는 취미생활인 스노우보드를 위해 홋카이도를 자주 찾았다. 그는 결국 스노우보드 강사로 진출, 홋카이도에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스노우보드 강사 생활도 잠시, 그는 '여름에는 할 일이 없다'라는 현실과 직면했다. 

그는 여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사하고, 공부했다. 그러다 2016년 '와인특구'를 알게 됐고, 포도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야마나카씨는 "막막해보였던 농사도 다양한 지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마냥 쉬운 농사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훨씬 수월하게 이뤄낼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특구에 따른 완화된 자격 조건이 농장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포도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포도밭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면 와인저장고에 들어가 숙성 상태를 확인한다. 

포도를 수확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와인 제작에 나선다. 고가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연구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얻어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 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한다.

그는 "와인특구에서는 처음 진입하는 사람들에게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부담 없이 와이너리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다른 지역보다, 다른 품목보다 접근하기가 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인특구에 따라 유입된 농민들에게는 땅을 빌려주기도 하며, 시설 경비가 필요하면 융자도 적극 지원된다고 한다. 

야마나카씨는 이제 1만6500㎡(약 5000평) 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연간 6t에 달하는 포도를 수확하고, 1만5000병의 와인을 납품하는 중견 와이너리가 됐다. 6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포도밭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와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가족들과 건강하게 와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야마나카씨는 "앞으로 와이너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와인을 만들기 좋은 환경인데다 부족함 없는 지원이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며 "후배 와이너리들을 적극 도와 와인특구를 세계 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홋카이도 공동취재단 = 제민일보 윤승빈·강원도민일보 이정호·충청투데이 조사무엘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box . 홋카이도는?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북해도'라고도 불린다. 8만3453㎢의 거대한 면적 대비 인구는 520만여명으로 인구밀도는 일본에서 가장 낮다. 하지만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홋카이도는 3차산업 비중이 77.8%로 가장 높고, 2차산업 17.4%, 1차산업 3.9% 순이다. 일본 전역과 비교하면 1차 산업 비중이 전국 대비 4배 가까이 높은 수준으로, 식량 자급이 뛰어나다.
홋카이도는 2006년 제정된 '도주제 특별구역법'에 근거해 중앙정부로부터 권한 이양과 주요 업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북해도 도주제 특별구역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계획 과정에서 도민과 기초단체로부터 제안된 460여개의 내용 중 30여건이 채택돼 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권한 이양은 매년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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