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일본 ·조선의 평화적 관계구축 유지 공헌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 위한 준비 시작해야역사의 무대에서 맞수로, 때로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함께해온 한국과 일본이 공동의 목표를 이뤘다. 선린우호의 상징인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17~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통해서다. 외교 분쟁과 문화적·언어적 차이 등 험난한 장애물을 넘어 세계인의 역사가 된 조선통신사 사례를 통해 제주4·3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다.△외교사절단 통신사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은 1607년
정부 아닌 '지역사학' 중심 등재 움직임 공통점인적·물적 인프라 확충 과제...교류 강화 주문도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시대. '빚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국채를 갚고 국권을 지키려는 불길이 전국에서 일어난다.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시민들의 노력은 기록으로 남았고 이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세계인의 역사가 됐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사례를 통해 제주4·3의 미래를 설계한다.△시대적 배경19세기 말부터 제
신군부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섰던 기록 '광주 민주화 운동'민주주의 추구하는 국가들에 민주화 이룩하는데 도움돼야198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서슬 퍼런 신군부의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섰던 광주의 기록이 세계인의 역사가 된지도 어느덧 7년째다. 짧은 시간이지만 광주는 30년 가까운 세월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체험하고 있다. 70년이라는 긴 시간 어둠의 역사로 지내야 했던 제주4.3도 광주의 사례를 통해 '완전한 해결'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등재 과
4·3 발생 70년째...후세에 대물림하기 위한 기록 작업 요구도, 사진·영상 등 2936점 확인...지방공휴일·특별법 후속과제올해로 섬을 붉게 물들였던 제주4·3이 발생한지 70년째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통해 빛을 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누구도 완전한 해결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역경을 딛고 '기억'하는 단계에 이른 제주4·3의 가치를 오롯이 후세에 대물림하기 위해 '기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을 계승하고 '완전한 해결'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