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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할머니에게서 바람소리가 난다. 뜻밖의 방문에 당황하던 모습은 잠시. 누군가 자신을 찾아줬다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신명이 비친다. 바다와 부대꼈던 오랜 시간은 고스란히 할머니에게 남았다. 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입은 잊혀지지 않는 어제를 풀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한창 때처럼 '쫙'하고 펴지지 않는 손가락 마디마디는 굳은살처럼 두꺼워졌다. 세월이 착색된 듯 갈그랑거리는 목소리가 귀지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해녀
고 미 기자
2010.07.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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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시간은 잠시 더딘 걸음을 한다. '너는 늙지 마라'. 이제는 많은 시간 자리에 누워서 또 자주 병원을 오가면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그녀는 눈으로 몇 번이고 이야기한다. 어느 시에서처럼 '나만 늙고 말 테니 너는 늙지 마라'한다.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무기력하고 초라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당당히 한 시대를 거쳐왔기에 아름다운 모습의 그녀는 늙지 않는 바다색 기억을 풀어낸다.
해녀
고 미 기자
2010.06.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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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6세까지 헛물레 물질…올해는 한번도 바다에 나서지 않아풍선으로 우도 근처까지 이동, 난바르 작업 등으로 ‘힘있는 소리’“닻 스무발 아래까지 내려서 작업도” 대상군 기억 이제는 희미해져볕 좋은 오후, 김도원 할머니는 바다 대신 동네로 마실을 간다. 올해 우리 나이로 87살. 아직은 정정한 걸음걸
해녀
고 미 기자
2010.06.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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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군 어머니 밑에서 바다 배워…아기상군·고래상군 등 ‘머정 좋다’꼬리표어머니 빈자리 채우기 위해 소리 시작, 지금은 딸까지 3대에 걸쳐 이어져‘대상군’인 어머니는 어렵지 않은 생활에도 딸을 바다로 보냈다. 딸은 그런 어머니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바다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다.소리를
해녀
고 미 기자
2010.04.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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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 같은 물질 실력으로 전국 팔도 다 돌아…죽을 고비도 여러 번어머니로부터 배운 소리 실력 ‘제주민요 김태매류’ 인정 아쉬움 많아노 잠녀의 목소리는 기운을 많이 잃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장단에 맞춰 노래를 뽑아낼 듯 했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행여 주저앉을까 노심초사다.불과 한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
해녀
고 미 기자
2010.04.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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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물질 10년에 평생할 고생을 다했다”넋두리사고로 ‘바다’ 떠난 뒤에도 결혼 후 다시 바다로귀동냥 공부·소리 아쉬움에 정식 과정 밟는 의지파 고사리를 꺾으러 간 길,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던 할미꽃 하나가 눈에 밟힌다. ‘곱다’ 한 마디에 그냥 가도 될 것을 오랜
해녀
고 미 기자
2010.03.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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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솜씨 좋아 '아기상군'으로 불리기도생활고 바다작업 고단함 '소리'로 풀어"바다 옆 지키다 올라오는 생복이나 잡을까" 날이 좋으면 멀리 수평선 넘어 이어도가 보인다는 안덕면 대평리 잠녀들은 올 들어 설 전까지 바다에 들지 못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작업에 참가했던 노 잠녀가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면서 작업을 할 엄
해녀
고 미 기자
2010.03.0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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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단순한 특별함에서 문화·역사적 가치 재평가로살아있는 무형유산…지속가능한 보존 장치 마련 시급 1987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남성중심의 한국 속의 양성평등의 섬 제주’에 관심을 보였다. 한국이란 이름도, ‘양성평등’이란 말도 낯선 상황에서 파란 눈의 서양인들이
해녀
고 미 기자
2010.02.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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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픔 풀어낸 가락에 세월을 묻고가파도서 한산도 비진·홍도로 바깥물질 ‘노젓는 소리’배워“힘들어도 내 저어 먼 바다까지 나가 물질”…억척스런 삶 감내 “이어사나 이어도사나/요내 저성 어딜 가리(이 노 저어 어디로 가리)…요 물 아래 은과 금은 깔렸건만/높은 낭(나무)
해녀
고 미 기자
2010.02.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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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을 훌쩍 넘긴 노잠녀의 작고 둥그스름한 어깨에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고달팠을 지난날을 무거운 짐처럼 내려놓지 못한 그 어깨다. 그저 가만히 감싸 안고 싶은 어깨지만 좀처럼 손이 나가지 않는다.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과 아쉬움때문이리라. 4·3이 휩쓸고 난 뒤 ‘여자 마을&
해녀
고 미 기자
2010.01.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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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잠녀인 '어머니'는 손을 쉴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추슬러 바다에 몸을 던졌지만 이내 코피가 터지고 눈앞이 어른거린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다. 귀에 감기는 아기 울음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물건을 찾아 물속을 헤집는다. "다들 더하면 더했지…" 노잠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세
해녀
고 미 기자
2010.01.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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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바람 탓일까. 아침 일찍 바다에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이 생각보다 편했다. 흠뻑 바닷물을 먹은 고무옷 차림 그대로 만난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편안한 마음에 덥석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연세만큼 굵어진 손가락 가득 소금기가 배어난다. 몇 번이고 씻어낸들, 고운 화장수로 닦아낸들 그대로일 터다. 그 것이 할머니, 제주 잠녀들의 삶이기
해녀
고 미 기자
2009.12.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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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잠녀의 눈이 반짝인다. 다른 잠녀들에 앞서 좋은 물건을 찾아낸 듯한 생기다. "제주 잠녀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억울한 주장에 맞서 주먹을 쥐었던 여장부의 기개를 세월은 쉽게 뛰어넘을 수 없었다. 용수를 대표하는 김두식 할머니(85)의 이야기다. # 용수리 잠녀의 '대장' 제주에서 바다를 낀 마을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과장을 조금
해녀
고 미 기자
2009.12.0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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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물질의 고단함 담아 '개척'으로까지 비유되는 잠녀들의 바깥물질을 억척스러웠던 만큼 고단했다.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 옆을 떠나는 것이라면 결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바깥물질은 며칠씩 배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고 길게는 반년 가까이 외지 생활을 견뎌야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배 위에서 목숨이 오가는 위기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타향 생활의 고달픔도
해녀
고 미 기자
2009.11.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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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초부터 독도 출가 물질…10년 가까이 샛굴에서 배고픔 이기며 작업양식미역 나오면서 발길 줄어, 1970년대 이후 머구리 작업 위한 독도행 계속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 기록 확인 ‘독토 영토의 실효적 지배에 큰 공헌’ 가치 노래 가사 속 독도는 외로운 섬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억척스런 의지로 삶을 일군 제주 잠녀들
해녀
고 미 기자
2009.11.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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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옆에 있어야 잠녀지…. 험한 일 마다 않고 바다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그걸 인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어”급히 방 한 켠으로 치운 수북한 약 봉지는 순탄치 않았던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독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칠순을 넘긴 노(老)잠녀의 목소리는 이내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서랍 구석에 간직하던
해녀
고 미 기자
2009.10.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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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내 '아마' 무형문화유산 등재 움직임 활발단순한 전통 문화 아닌 지역 경제 연계 등 고민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일본내 아마(해녀)의 교류를 깊게 하고, 그 범위를 확대해 ‘해녀 문화’의 전통을 계속해 지켜나가는 것은 물론 수산업의 중요성을 계속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제주도 잠녀와의 연대도 돈독히 해 유네스
해녀
고 미 기자
2009.10.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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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를 지키고 해녀문화를 보존·계승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어떻게 실행에 옮기느냐다”제주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 조례안(이하 해녀조례안)을 발의한 오옥만 제주도의회 의원은 “그런 사정을 아는 집행부가 조례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두루 뭉수리 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
해녀
고 미 기자
2009.09.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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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수렴 등 3년여 작업 불구 ‘책임 소재’ 등 밀려 심의 보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발판…부서간 협력 대신 ‘거점’구축 방안도 제주 잠녀 문화의 가치에 대해 내부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지적이다. '잠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보다는 과거 생계를 위해 바다와 치열하게 싸웠던 직업군에 대한 이미지를
해녀
고 미 기자
2009.09.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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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울음 소리가 그렁그렁 귀에 와 맺힌다. 오래 잊었던 곳이건만 '독도'라는 단어는 잘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홍순화 할머니(89)의 기억의 물꼬를 텄다. 그동안 물질이 어땠는지, 사는 것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에 연신 딴소리를 하며 취재가 제대로 될까 의구심까지 들게 했던 것도 잠시. "내 독도"라는 홍 할머니의 말에 이
해녀
고 미 기자
2009.09.15 15:44